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통로이현아 Jan 16. 2018

“솔직히 이걸 해서 내가 얻는 게 뭐야?”

[덮으면서 다시 시작하는 그림책] 나를 살게 하는 것들, 의미에 관하여

연필과 지우개, 모나미 펜으로만 그린 섬세하고 유려한 그림에 감탄하는 것과는 별개로

풉. 웃음이 나오는 정말 유쾌한 그림책입니다. 
자신의 직업에 투덜거리는 산타의 이야기를 통해 일의 의미와 사명, 그리고 우리가 가진 지나친 자의식에 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를 살게 하는 것들, 의미에 관하여
“솔직히 이걸 해서 내가 얻는 게 뭐야?”



남다른 존재는 없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을 가진 이는 과연 누구일까? 어린이작가 이진혁은 단 하룻밤 만에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배달해야 하는 산타가 그 주인공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산타의 모습은 낯설다. 하룻밤 만에 대량의 선물 박스를 당일배송 해야 하는 산타는 늘 투덜거린다.

“귀찮아, 정말 귀찮아.”
“아……. 내가 진짜 굴뚝에까지 다 들어가고…….”
“솔직히 이걸 해서 내가 얻는 게 뭐야?”

우리를 흠칫하게 하는 익숙한 말들이지만, 산타의 입에서 나오니 낯설다. 자신의 직업을 귀찮게 여기는 산타라니, 우리 범인들이야 매사 투덜대면서 살아간다지만 ‘남다른 존재’인 그는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어린이작가 이진혁은 이런 고정관념을 비튼다. 소방관은 언제나 생명에 대한 사명감으로 불 속에 뛰어들기를 마다하지 않을까? 선생님은 언제나 자라나는 새싹들 곁에서 보람과 기쁨을 느낄까? 대답은 “아니올시다.”






우리는 맡은 일에 사명감으로 불타오르지 않거나 일터에서 보람과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자꾸만 의구심을 가진다. 보람의 부재, 인정의 부재는 자괴감과 죄책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일에 대한 지나친 자의식에 대해 곽아람은 『그림이 그녀에게』에서 “세상의 중심, 그곳에 나는 없다”라며 ‘톡 까놓고’ 편하게 내려놓자고 이야기한다. 직장생활에 대한 착각과 환상이 깨지는 과정에서 그녀는 직장이란 나의 능력을 인정받거나 불타는 사명감을 칭찬받기 위해 다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더 이상 자신이 남들보다 뛰어난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 이카로스처럼 창공을 향해 날아오르는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꿈꾼다. 자신이 결국은 범속한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은 추락을 겪은 다음에야 온다. 브뤼헐의 작품 <이카로스의 추억>에서처럼 ‘하늘을 날던 대단한 존재’였던 내가 땅 위로 떨어지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에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에야.
_ 곽아람, 『그림이 그녀에게』 중에서

‘하늘을 날던 대단한 존재’였던 내가 그저 보통의 존재로 살아갈까봐 전전긍긍하는 두려움. 곽아람은 이것이 바로 ‘우등생 콤플렉스’라고 말한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 아무도 내게 그것을 기대하지도 그것에 관심을 갖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해지고 사는 게 한결 가뿐해진다. 잠잠히 가라앉은 나는 그저 묵묵히 내 길을 걸을 뿐이다. 더 이상 바람에 흩날리는 겨와 같이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나의 작음을 깨닫는 것은 야단법석을 떨 만큼 유난스러운 일도 엄청난 몰락도 아니다. 전 세계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한 몸에 짊어진 산타와 같은 남다른 존재도 굴뚝에 몸을 들이밀면서 싫증을 낸단다. 몸에 먼지 묻히는 것에 짜증을 낸단다.





의미에 관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 의미를 가진 존재로서 살아가기를 갈망한다. 일터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발견하고자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구한다. 알랭 드 보통은 그 이유에 대해 사람이란 “그저 물질만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라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이 의미 있게 느껴지는 건 언제일까?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자아내거나 고통을 줄여줄 때가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 이기적으로 타고났다고 생각하도록 종종 배워왔지만, 일에서 의미를 찾는 방향으로 행동하려는 갈망은 지위나 돈에 대한 욕심만큼이나 완강하게 우리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듯하다. 우리는 합리적인 정신 상태에서도 안전한 출세길을 버리고 말라위 시골 마을에 먹을 물을 공급하는 일을 도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그저 물질만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라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_ 알랭 드 보통, 『일의 기쁨과 슬픔』 중에서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고 발견하는 삶, 교육이 지향하는 궁극의 본질도 ‘삶 속에서의 의미 만들기 과정’과 다름없다. 어떤 삶을 살아가든지 그 안에서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분명히 존재할 때 우리는 진정 살아 있음을 느낀다. 나를 관통해 흘러가는 어떤 의미와 신비를 발견할 때 비로소 삶이 선사하는 새로운 기쁨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나를 살아 숨 쉬게 한다.

“난 끈을 하나 잡고 있었어. 그걸 놓치면 보통사람이 되어버리는 그런 끈이야. 이걸 놓으면 내 의미가 없어지니까 안간힘을 쓰며 끈을 잡고 있는 거야.” 박형동의 성장만화 『바이 바이 베스파』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선 자아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또한 삶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놓으면 삶 속에서 추구해온 나만의 의미를 잃게 하는 ‘끈’, 나를 온전한 나로 살게 하는 ‘끈’을 각자의 자리에서 붙잡고서 우리는 살아간다. 덧없이 흘러가는 일상에서 의미를 추구하는 것은 그 끈을 붙잡고 물살을 버티는 것과 같다. 프랑스의 소설가 폴 발레리가 말했던 것처럼 “생각한 바에 따라 살아가지 않으면 살아온 대로 생각하게 된다.” 일상의 고단함에 치여 나만의 끈을 놓치면 물살을 따라 저만치 떠밀려 내려가고 마는 것이다. 끈을 붙잡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시시때때로 골몰하며 머리 맞대고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다.

끈은 또 다른 끈으로 이어지며 연결된다. 때로 그 연결된 끈은 우리를 예상하지 못한 어떤 삶의 현장으로 인도한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교사인 다니엘 페낙이 붙잡은 끈은 자신을 어릴 적 ‘원죄의 현장’으로 돌아가게 했다. 나약함과 열등함을 처절하게 느꼈던 그 현장,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바로 그곳으로 스스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곳에서 만난 한 사람으로 인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나의 첫번째 구원자가 나타났다. 국어 선생님. 중 4때. 당시의 나를 있는 그대로 알아보았던 분. 즉 명랑하게 자멸해가는 진지한 망상가로 말이다. (중략) 그러니까 다 낡아빠진 기품을 지닌 노선생이 내 안의 이야기꾼 기질을 알아본 것이다.
(…)
아빠, 소박한 선생님 말이에요. 가능하다면 작은 중학교에서요. 내 원죄의 현장으로 돌아가는 거죠. 거기서 지부티의 쓰레기통에 떨어진 애들을 돌보는 일. 과거의 나에 대한 분명한 기억으로 그들을 돌보는 일. 나머지 시간은 문학을 하는 거예요! 소설요! 교육과 소설! 읽고 쓰고 가르치는 일!
_ 다니엘 페낙, 『학교의 슬픔』 중에서




나를 있는 그대로 알아보아 주었던 단 한 사람, 숨겨진 문학적 재능을 인정해준 단 한 사람은 다니엘 페낙에게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했다. 쓰는 기쁨과 사는 기쁨을 알게 했다. 내면의 둑을 무너져 내리게 한 것이다. 다시 돌아온 ‘원죄의 현장’에서 그는 더 이상 죄인도 열등생도 아니었다. 다만 일의 의미와 사명을 그곳에서 발견했다. 그는 교육과 소설이라는 자신만의 끈을 양팔로 단단히 붙잡고 ‘지부티의 쓰레기통’으로 휩쓸려 내려가는 아이들과 함께 물살을 거슬러 올랐다. ‘원죄의 현장’에서 새겨온 분명한 감각과 기억은 그로 하여금 아이들을 온몸으로 끌어안을 수 있게 했다. 

아마도 그는 “솔직히 이걸 해서 얻는 게 무엇이냐”고 묻는 산타의 질문에 그 누구보다도 명쾌한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의미에 초점을 맞춘 삶을 사는 한 사람으로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덮으면서 다시 시작하는 그림책] 의 구입을 문의하셨던 분들, 독자가 되어주시길 원하는 분들께 안내드릴게요.
이 책을 구입하기 원하시는 분들께 '만원의 행복'으로 책을 보내드리려 합니다.
제가 이 책 한 권을 만드는데 (소량인쇄했기에) 1만원 이상의 금액이 들어갔으므로 사실상 인쇄비용보다 적은 금액이에요. 

제가 운영하고 있는 비영리 독립출판사는 교사의 자비 부담으로 운영되며 수익을 추구하지 않아요. [교실 속 그림책]이라는 총서의 창작그림책을 비매품으로 출판등록해오고 있는 것이 그 이유이고요.
이번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책으로 보다 의미있는 일을 꾸준히 이어가기 위해 다문화 어린이들에게 그림책을 만들어주는 일에 수익금을 전액 기부할 예정입니다.

총230권 한정판으로 출간한 책 중에서 현재까지 책을 구매해 주신분들께서 보내주신 금액이 벌써 70만원이 넘었어요.
독자들의 품으로 간 책들을 생각하면서 가슴을 콩닥거리고 있답니다.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링크에 성함과 주소를 남겨주세요.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fsMbxbXrEGb6YKsZ6B2q3dNz-MQq5XvTuizlM42Gv6qo7llg/viewform?usp=sf_link











작가의 이전글 “내가 달게 읽은 글들은 내 삶에 맛을 더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