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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로이현아 Apr 03. 2018

[색과빛과언어]나의 첫기억 추상 표현

당신이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순간, 유년의 첫 기억

                                                                                                                                       

당신이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순간, 유년의 첫 기억을 떠올려 보라. 누구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장면인가? 

올해의 첫 미술 수업은 내게 각인된 가장 처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죽은 앵무새의 축 쳐진 느낌을 떠올리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귀를 뚫었을 때의 날카로운 감각이나 심장이 뛰는 소리를 기억하는 아이가 있다. 세살이 되던 해 바닷가에서 함께 놀던 엄마가 물에 빠져서 가슴이 철렁했던 느낌을 기억하는 아이는 아직도 파도를 무서워한다. 

자신이 더듬어 갈 수 있는 최초의 기억을 하나의 장면으로 또렷이 떠올리되, 그 때 느꼈던 감각이나 심상을 구체적인 형상이 아닌 추상적인 색과 형태로 표현해보는 것이 이번 수업의 핵심이다. 

추상(abstract)은 '뽑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대상의 본질과 핵심만을 추출하여 그 윤곽을 표현하는 것이다. 나의 첫 기억을 떠올릴 때는 그 순간을 촉감, 색깔, 맛, 소리 등을 아주 세밀하고 생생하게 떠올린다. 그러나 이것을 그림으로 옮길 때는 가장 농밀한 한 가지 감각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단순하고 과감하게 표현해본다. 

나의 경우는 라일락 향을 따라 킁킁대던 코 끝의 달큰한 감각과 발바닥 아래로 느꼈던 물컹한 흙의 촉감을 떠올렸다. 비가 갠 봄날, 아빠의 등산을 따라 나섰던 기억이다. 봄비가 내려 말끔해진 산은 생동하는 기운을 내뿜었다. 그 때의 폭신했던 흙과 싱그러운 냄새를 떠올리면 온 몸의 감각에 물이 차올라 다시 촉촉하게 적셔지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이런 감각과 심상을 하나의 구체적인 장면으로 그리다보면 그 아른거리는 느낌이 반감되고만다. 반면 그 윤곽만을 잡아내어 흐드러지게 그리면 미처 표현되지 않는 어떤 것들을 함축하여 담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기억을 표현하는 수업에서 내가 추상의 방법을 취한 이유다.


*구체적인 형상을 그리지 않기 위해 붓을 사용하지 않고 막대와 손가락을 사용하여 아크릴 물감으로 표현했다.

*함축적인 의미를 담기위해 되도록 의성어나 의태어로 제목을 썼고 작가노트에 그림으로 못다한 이야기를 썼다. 

덜컥, 시무룩.
여섯 살 때, 처음 앵무새를 키웠다가 죽은 모습을 보았다. 그 때의 기분을 떠올려서 표현했다. 앵무새가 너무 빨리 죽어서 가슴이 덜컥, 시무룩했다. 똑같은 색깔의 앵무새라도 살아있을 때는 너무 예쁜데 죽어서 축 쳐진 모습은 무서웠다.
슈우우우웅
여섯 살 때, 가족들과 제주도 여행을 가면서 비행기를 처음 탔던 장면을 표현했다. 비행기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으며 슈우우웅 날아오르자 아랫배가 간지러우면서 간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끼룩끼룩
2011년 여름, 가족들과 제주도에서 갈매기를 보았는데 끼룩끼룩 소리를 내었던 장면을 표혔했다. 아무도 안믿지만 나는 분명히 갈매기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갈매기가 나한테 이야기하는 느낌을 살려서 그렸다.
배애애앵
3살이 되던 해 내 생일, 시간은 오후 10시 20분이었다. 어른들이 케잌을 먹으면서 와인을 마셨는데 궁금해서 나도 한번 마셔봤다. 얼굴이 빨개지고 어지러웠다. 와인을 마신 뒤의 정신세계를 표현해 보았다.
푹~
4살때 어느 오후였다. 나는 귀걸이가 너무 예뻐보여서 엄마랑 가게에 가서 귀를 뚫기로 했다. 귀에 바늘같은 뾰족한 것을 넣었는데 푹~하는 느낌과 함께 뭔가 따끔하면서 짜릿했다. 예쁜 귀걸이를 골라서 귀에 꼈다. 그 이후로 거울을 볼 때마다 자꾸 귀를 보게 된다.
우당탕탕
작년에 학교에서 카프라를 했다. 나는 카프라를 잘해서 빌딩을 지었다. 그런데 친구때문에 공든 탑이 무너졌다. 그때 내 마음이 점점 검정색으로 물들었던 장면을 그린 것이다. 공든 탑이 무너졌다고 절망하지는 말자.
찌이익
5살 때, 동생이 내 눈 옆을 할퀴어서 상처가 났던 기억이 있다. 그 때의 손톱자국을 그린 것이다. 찌이익 하는 소리와 거친 촉감을 표현했다.
두근두근
나는 내 심장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걸 색으로 표현하려고 연주황, 노랑, 연두, 민트 등의 밝은 색을 섞어봤다. 6살 때 이사를 갔을 때 새로운 유치원으로 전학을 갔다. 그 때의 마음을 그린 것이다. 요즘에도 나는 긴자하면 이렇게 심장이 쿵쾅거린다. 
꺄악
11살 때 봄이었다. 캠핑장에 가서 장작을 사러갔는데 주인이 키우던 강아지가 나를 보고 쫓아왔다. 임신을 해서 예민해진 강아지였다. 나는 꺄악 소리를 지르면서 도망쳤다. 임신한 개는 각별히 조심하세요. 
둥실둥실
세 살 때, 아빠가 첫 비행기를 태워준 것을 표현했다. 긴장되서 약간은 무서웠지만 둥실둥실 떠오르는 기분이 좋았다. 그때 하늘을 보았을 때의 느낌을 그린 것이다. 파란색 하늘과 함께 노란 빛을 그렸다.
나폴나폴
3살 때 엄마, 아빠와 함께 산에 가서 바람개비를 불면서 놀았던 장면을 그렸다. 속상한 일이 있으면 해바라기 씨를 하늘에 날려보내는 것처럼 안좋은 기억을 없애버렸으면 좋겠다.
토마스, 토마스
어렸을 때 아빠 엄마와 같이 토마스 장난감을 사러간 것이 생각난다. 딱딱한 파란색의 느낌과 사람들 소리가 떠오른다. 역시 어렸을 때가 좋았다.
와그적 휭~
8살때 달팽이를 키웠다. 파란통에 키웠는데 달팽이는 상추를 먹고 살았기 때문에 온통 초록색에 둘러싸여있었다. 열심히 키웠는데도 달팽이는 결국 떠났다.
우당탕탕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다쳤다. 우당탕탕하는 소리가 들렸고 빨강색, 갈색, 청녹색의 느낌이 들었다. 
휘리리익
2010년 7월 15일 오후 1시 30분이다. 어린이집에서 놀고 있는 중이었는데 갈증이 나고 더웠다.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휘리리익 불어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너무 시원했다. 소리는 휘리리릭 , 색깔은 하늘색, 촉감은 나뭇잎이 바람을 타듯이 스쳐지나가는 느낌을 그렸다. 
두근두근 만지작 만지작
8살 때 새 학교에 처음으로 입학했던 날 너무 떨렸던 마음을 표현했다.
철썩철썩
세 살이 되던 해 여름, 가족과 바다에 갔는데 엄마가 바다에 빠지셨다. 아빠가 구해서 나오셨지만 가슴이 철렁했던 그 기분은 아직도 바다를 보면 생생하게 느껴진다. 나는 아직도 파도를 보면 무섭다.
으악
5살 때, 어떤 초밥집에 가서 초밥을 먹었다. 초록색 맛있게 보이는 것이 있어서 한 방에 다 먹었는데, 그건 와사비였다. 코가 뻥 뚫리게 매웠던 끔찍한 순간을 표현했다. 
철렁철렁
다섯살 때, 처음 노을을 보았던 장면을 표현했다. 붉은 하늘과 철렁이는 파도가 만날 때 너무 아름다워서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눈이 부셨던 느낌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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