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과빛과언어]나의 첫기억 추상 표현

당신이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순간, 유년의 첫 기억

by 통로이현아


image_292140841522396833416.jpg?type=w773

당신이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순간, 유년의 첫 기억을 떠올려 보라. 누구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장면인가?

올해의 첫 미술 수업은 내게 각인된 가장 처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죽은 앵무새의 축 쳐진 느낌을 떠올리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귀를 뚫었을 때의 날카로운 감각이나 심장이 뛰는 소리를 기억하는 아이가 있다. 세살이 되던 해 바닷가에서 함께 놀던 엄마가 물에 빠져서 가슴이 철렁했던 느낌을 기억하는 아이는 아직도 파도를 무서워한다.

자신이 더듬어 갈 수 있는 최초의 기억을 하나의 장면으로 또렷이 떠올리되, 그 때 느꼈던 감각이나 심상을 구체적인 형상이 아닌 추상적인 색과 형태로 표현해보는 것이 이번 수업의 핵심이다.

추상(abstract)은 '뽑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대상의 본질과 핵심만을 추출하여 그 윤곽을 표현하는 것이다. 나의 첫 기억을 떠올릴 때는 그 순간을 촉감, 색깔, 맛, 소리 등을 아주 세밀하고 생생하게 떠올린다. 그러나 이것을 그림으로 옮길 때는 가장 농밀한 한 가지 감각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단순하고 과감하게 표현해본다.

나의 경우는 라일락 향을 따라 킁킁대던 코 끝의 달큰한 감각과 발바닥 아래로 느꼈던 물컹한 흙의 촉감을 떠올렸다. 비가 갠 봄날, 아빠의 등산을 따라 나섰던 기억이다. 봄비가 내려 말끔해진 산은 생동하는 기운을 내뿜었다. 그 때의 폭신했던 흙과 싱그러운 냄새를 떠올리면 온 몸의 감각에 물이 차올라 다시 촉촉하게 적셔지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이런 감각과 심상을 하나의 구체적인 장면으로 그리다보면 그 아른거리는 느낌이 반감되고만다. 반면 그 윤곽만을 잡아내어 흐드러지게 그리면 미처 표현되지 않는 어떤 것들을 함축하여 담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기억을 표현하는 수업에서 내가 추상의 방법을 취한 이유다.


*구체적인 형상을 그리지 않기 위해 붓을 사용하지 않고 막대와 손가락을 사용하여 아크릴 물감으로 표현했다.

*함축적인 의미를 담기위해 되도록 의성어나 의태어로 제목을 썼고 작가노트에 그림으로 못다한 이야기를 썼다.

덜컥, 시무룩.
image_6186241031522396763226.jpg?type=w773
여섯 살 때, 처음 앵무새를 키웠다가 죽은 모습을 보았다. 그 때의 기분을 떠올려서 표현했다. 앵무새가 너무 빨리 죽어서 가슴이 덜컥, 시무룩했다. 똑같은 색깔의 앵무새라도 살아있을 때는 너무 예쁜데 죽어서 축 쳐진 모습은 무서웠다.
슈우우우웅
SKMBT_42318031314470_0005.jpg?type=w773
여섯 살 때, 가족들과 제주도 여행을 가면서 비행기를 처음 탔던 장면을 표현했다. 비행기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으며 슈우우웅 날아오르자 아랫배가 간지러우면서 간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끼룩끼룩
SKMBT_42318031314470_0001.jpg?type=w773
SKMBT_42318031314470_0024.jpg?type=w773
2011년 여름, 가족들과 제주도에서 갈매기를 보았는데 끼룩끼룩 소리를 내었던 장면을 표혔했다. 아무도 안믿지만 나는 분명히 갈매기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갈매기가 나한테 이야기하는 느낌을 살려서 그렸다.
배애애앵
SKMBT_42318031315030_0005.jpg?type=w773
3살이 되던 해 내 생일, 시간은 오후 10시 20분이었다. 어른들이 케잌을 먹으면서 와인을 마셨는데 궁금해서 나도 한번 마셔봤다. 얼굴이 빨개지고 어지러웠다. 와인을 마신 뒤의 정신세계를 표현해 보았다.
SKMBT_42318031315030_0006.jpg?type=w773
푹~
SKMBT_42318031315030_0001.jpg?type=w773
4살때 어느 오후였다. 나는 귀걸이가 너무 예뻐보여서 엄마랑 가게에 가서 귀를 뚫기로 했다. 귀에 바늘같은 뾰족한 것을 넣었는데 푹~하는 느낌과 함께 뭔가 따끔하면서 짜릿했다. 예쁜 귀걸이를 골라서 귀에 꼈다. 그 이후로 거울을 볼 때마다 자꾸 귀를 보게 된다.
우당탕탕
SKMBT_42318031314470_0009.jpg?type=w773
작년에 학교에서 카프라를 했다. 나는 카프라를 잘해서 빌딩을 지었다. 그런데 친구때문에 공든 탑이 무너졌다. 그때 내 마음이 점점 검정색으로 물들었던 장면을 그린 것이다. 공든 탑이 무너졌다고 절망하지는 말자.
찌이익
SKMBT_42318031314470_0011.jpg?type=w773
SKMBT_42318031314470_0012.jpg?type=w773
5살 때, 동생이 내 눈 옆을 할퀴어서 상처가 났던 기억이 있다. 그 때의 손톱자국을 그린 것이다. 찌이익 하는 소리와 거친 촉감을 표현했다.
SKMBT_42318031314470_0013.jpg?type=w773
두근두근
SKMBT_42318031314470_0017.jpg?type=w773
SKMBT_42318031314470_0018.jpg?type=w773
나는 내 심장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걸 색으로 표현하려고 연주황, 노랑, 연두, 민트 등의 밝은 색을 섞어봤다. 6살 때 이사를 갔을 때 새로운 유치원으로 전학을 갔다. 그 때의 마음을 그린 것이다. 요즘에도 나는 긴자하면 이렇게 심장이 쿵쾅거린다.
꺄악
SKMBT_42318031314470_0020.jpg?type=w773
11살 때 봄이었다. 캠핑장에 가서 장작을 사러갔는데 주인이 키우던 강아지가 나를 보고 쫓아왔다. 임신을 해서 예민해진 강아지였다. 나는 꺄악 소리를 지르면서 도망쳤다. 임신한 개는 각별히 조심하세요.
둥실둥실
SKMBT_42318031314470_0022.jpg?type=w773
세 살 때, 아빠가 첫 비행기를 태워준 것을 표현했다. 긴장되서 약간은 무서웠지만 둥실둥실 떠오르는 기분이 좋았다. 그때 하늘을 보았을 때의 느낌을 그린 것이다. 파란색 하늘과 함께 노란 빛을 그렸다.
나폴나폴
SKMBT_42318031314470_0026.jpg?type=w773
3살 때 엄마, 아빠와 함께 산에 가서 바람개비를 불면서 놀았던 장면을 그렸다. 속상한 일이 있으면 해바라기 씨를 하늘에 날려보내는 것처럼 안좋은 기억을 없애버렸으면 좋겠다.
토마스, 토마스
SKMBT_42318031314470_0028.jpg?type=w773
어렸을 때 아빠 엄마와 같이 토마스 장난감을 사러간 것이 생각난다. 딱딱한 파란색의 느낌과 사람들 소리가 떠오른다. 역시 어렸을 때가 좋았다.
와그적 휭~
SKMBT_42318031314470_0030.jpg?type=w773
8살때 달팽이를 키웠다. 파란통에 키웠는데 달팽이는 상추를 먹고 살았기 때문에 온통 초록색에 둘러싸여있었다. 열심히 키웠는데도 달팽이는 결국 떠났다.
우당탕탕
SKMBT_42318031314470_0032.jpg?type=w773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다쳤다. 우당탕탕하는 소리가 들렸고 빨강색, 갈색, 청녹색의 느낌이 들었다.
휘리리익
SKMBT_42318031314470_0034.jpg?type=w773
2010년 7월 15일 오후 1시 30분이다. 어린이집에서 놀고 있는 중이었는데 갈증이 나고 더웠다.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휘리리익 불어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너무 시원했다. 소리는 휘리리릭 , 색깔은 하늘색, 촉감은 나뭇잎이 바람을 타듯이 스쳐지나가는 느낌을 그렸다.
두근두근 만지작 만지작
SKMBT_42318031315030_0003.jpg?type=w773
8살 때 새 학교에 처음으로 입학했던 날 너무 떨렸던 마음을 표현했다.
철썩철썩
SKMBT_42318031314470_0007.jpg?type=w773
세 살이 되던 해 여름, 가족과 바다에 갔는데 엄마가 바다에 빠지셨다. 아빠가 구해서 나오셨지만 가슴이 철렁했던 그 기분은 아직도 바다를 보면 생생하게 느껴진다. 나는 아직도 파도를 보면 무섭다.
으악
SKMBT_42318031314470_0014.jpg?type=w773
5살 때, 어떤 초밥집에 가서 초밥을 먹었다. 초록색 맛있게 보이는 것이 있어서 한 방에 다 먹었는데, 그건 와사비였다. 코가 뻥 뚫리게 매웠던 끔찍한 순간을 표현했다.
SKMBT_42318031314470_0016.jpg?type=w773
철렁철렁
SKM_28718031314440.jpg?type=w773
다섯살 때, 처음 노을을 보았던 장면을 표현했다. 붉은 하늘과 철렁이는 파도가 만날 때 너무 아름다워서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눈이 부셨던 느낌을 그렸다.
IMG_9719.JPG?type=w773
IMG_9727.JPG?type=w773
IMG_9724.JPG?type=w773
IMG_9729.JPG?type=w773
IMG_9730.JPG?type=w773
IMG_9732.JPG?type=w7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