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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로이현아 Mar 27. 2018

[좋아서하는 그림책 연구회] 3월 모임

"자유로운 인간으로 그대들을 떠나게 하라"


                     

[좋아서하는 그림책 연구회] 3월모임 "경계와 선택"

전 날 내린 봄눈에도 지지않고 원주, 인천를 비롯한 다양한 곳에서 열정을 가진 분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맹학교에서 아이들과 그림책을 나누시는 분,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시는 분, 어른이 되어 그림책의 매력을 알게 되신 분...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달 모임때 뵙고 다시 뵙는 분들 진심으로 반가웠고요. 그림책이 만들어주는 인연에 감사한 날들이네요.


나누고 싶은 것들이 어찌나 많았던지, 꾹꾹 눌러 담은 시간이었습니다. 19시에서 21시까지로 예상했던 모임이 길어져서 22시를 꽉채우고서 나왔네요. 마감 이후까지 멋진 공간 대여해주신 디어라이프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글과 그림이 서로의 호흡을 주고받는 그림책을 사랑하지만, 사실 저는 책을 펼쳐놓고 도판을 들여다보는 것을 무척 좋아해요. 한 장의 이미지가 직관적으로 말해주는 것들, 그림이 건네는 감각적인 이야기. 그것에 귀를 기울이면 형언(形言) 할 수 없는 어떤 정서가 전해지거든요.

"경계"에 대해 생각하면서 떠올랐던 작가 브로노 반 덴의 작품을 소개해드렸어요. [덮으면서 다시 시작하는 그림책]의 독자분들 중에 제가 그린 엽서를 받은 분들은 아마 눈치채셨을 텐데요, 제가 유독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광경을 그리길 좋아하거든요. 시시각각 변화하는 하늘과 바다의 색과 질감을 두터운 나이프 유화로 표현하는 것이 좋아요.

브루노 반 덴은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광경을 카메라 앵글에 담는 작가에요. 같은 장소, 고정된 위치에서 연속된 사진으로 수평선을 찍으면 달라지는 것은 오직 색과 질감 뿐이지요. 그 색과 질감 만으로 경계를 표현한 작품들입니다. 전 그의 연작이 너무 좋아요.

http://www.newhorizonsahead.nl/kunstwerken

그리고 마르셀 뒤샹의 <문 Door: 11 rue Larrey>(1927)
닫혀있으면서 동시에 열린 문이자 한 쪽이 열리면 한 쪽이 닫히는 문이죠.
책장과 책장 사이의 경계가 바로 이 문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페이지가 닫히면  또 하나의 페이지가 열리는 것이 바로 책이니까요.




경계와 그림책창작 사이를 놓고 고민하면서 이야기 치료의 '외재화'와 연관하여 그림책  창작을 진행했습니다. 외재화를 통해 아이들은 문제와 나 사이에 경계를 두고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나 단점에 자신만의 언어로 이름을 붙이면서 '문제'와 '나'를 분리하는 것이지요.

문제를 경계 밖으로 꺼내어 바라보는 관점을 가질 때 아이들은 자신을 문제 자체로 인식하지 않게 됩니다. 단점을 하나의 캐릭터로 표현하고 그것이 가진 특징과 성질에 대해 나누면서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하는 공감과 이해를 할 수 있어요. 그래서 그림책의 제목도 <너만 그런 건 아냐>입니다. 이 그림책은 올해 제가 담임한 학급의 아이들이 모두 함께 참여하여 창작하였어요.



열아홉 명의 어린이들에게 질문했습니다.
나를 자꾸 성가시게 하는 친구를 소개해주세요.
내 마음에는 누가 살고 있나요?
이름: 까 먹 이(12-year-old)

  _특징: 불안할 때마다 기억이 사라진다.
마른 오징어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납작한 얼굴을 지녔으며 기억을 잃을 때 얼굴도 점점 사라진다.
전체적인 크기는 1cm정도로 아주 작다.

  _자라날 때: 복잡한 생각을 많이 할 때.

  _줄어들 때: 편안하게 푹 잘 때.
이름: 까 칠 이(11-year-old)

  _특징: 엄마한테 잔소리를 한다.
나이는 사춘기라서 11살.

  _자라날 때: 엄마의 어떤 행동.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음)

  _줄어들 때: 엄마가 나를 칭찬할 때.
이름: 이 기 리(80-year-old)

  _특징: 가족 대대로 이어져왔으므로 나이는 80세.
경기 대결을 할 때 승부욕이 넘치며, 지면 게임 판을 엎어버린다.
머리 위에서 새가 둥지를 짓듯이 살고 있기 때문에 다리가 필요 없다.

  _자라날 때: 승리할 때.
   이기는 게 좋으니까 자꾸 또 이기려고 한다.

  _줄어들 때: 경기가 끝나거나 질 때 힘이 빠진다.
이름: 정 싫 이(2-year-old)

  _특징: 정리를 못하고 무엇이든지 쌓아놓는다.

  _자라날 때: 많이 놀 때

_줄어들 때: 주변에 장난감이 없을 때
이름: 욕 쟁 이(3-year-old)

  _특징: 싸우면 욕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기분이 좋을 때 나도 모르게 나오기도 한다.
  (예를 들면 게임에서 대박이 나왔을 때)
아홉 살 때 동네 형에게 욕을 배웠기 때문에
  현재 3살이다.
남에게는 안 보이는 작은 크기다.

  _자라날 때: 싸울 때.

  _줄어들 때: 평소에 평온할 때.
이름: 악폰이(3-year-old)

  _특징: 사람의 시력을 나쁘게 한다.
배터리가 닳는 약점이 있다.
총 게임, 유튜브, 전화, 문자 등을 자주한다.
9살 때 부터 시작하여 현재 3살이다.
액정이 깨져있는 이유는 너무 자주해서 이다.

  _자라날 때: 집에서 쉴 때.

  _줄어들 때: 그림 그리거나 관찰할 때.
이름: 느륌붜(12-year-old)

  _특징: 태어날 때부터 느렸다. 시간을 맞춰서 하지 않고 느리게 한다.
내 시계는 항상 느리게 간다.
색이 여러 가지인 이유는 그냥 취향이다.

  _자라날 때: 할 일이 많으면 더 하기 싫어진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_줄어들 때: 심심할 때, 뭐라도 하고 싶을 때, 할 일이 없을 때.



아이들이 표현할 글과 그림 모두 너무 유쾌해서 입꼬리가 스멀스멀 올라가지요? 자신의 단점을 이렇게 유쾌하게 바라볼 수 있고 서로가 꺼내어놓은 것에 깊이 공감할 수 있다면 어느 누구도 '느린애', '욕하는 애', '싸우는 애'로 한 사람을 단정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것은 문제 자체가 아니라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어떻게 다스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니까요.





내가 선택한 것들이 나를 말해준다

나와 통하는 그림책은 나를 말해주지요. 나의 선택을 보면 나를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요. 저는 이런 그림책을 통(通)그림책이라고 부릅니다.

내가 선택하는 것에서 취향을 발견하고, 나의 고유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림책 감상과 창작의 과정을 통해 나만이 가진 고유한 감각을 발견하고 존중하는 것이지요. 범주화를 넘어 주관화하는 시간, 여러분께서 꺼내주신 그림책으로 소통할 수 있어 가장 귀한 시간입니다. 발제자는 귀를 쫑긋하고서 요리조리 틈을 비집고 다녔지요.




지금 여기, 내가 느낀 것을 오롯이 표현해보는 시간. 아이들에게는 써보라, 그려보라, 표현해보라고 요구하면서 우리 어른들은 입만 조잘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면서 이 시간을 고안했습니다. 많이 듣고 많이 읽기만 하면 머리는 비대해지고 가슴과 손가락은 빈약해지지요. 우리는 손가락에 힘을주고서 오늘 내게 온 것들을 한 장의 종이에 쓰고 그려봅니다.

손가락에 너무나 비장한 힘이 들어간 분이 계셨어요. 붓펜을 꾹 누른 나머지 잉크가 흘러내렸는데요, 각자의 그림을 이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드셨더라구요. 서로의 경계와 경계가 맞닿아서 또 하나의 의미로 연결된 진정한 연대를 보여주는 예술이었답니다. 짧은 시간 경계에 대해 나누고 난 후에 어쩜이렇게 기발한 생각을 해내셨는지 놀라웠어요.

'경계'에 대한 각자의 심상을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해주신 분들이 계신가하면,

자신의 단점을 외재화 하여 표현하신 분들.


그리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각자의 경계선을 맞닿아 사는 삶을 표현한 접은 종이면까지.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고 깨고 꺼내어 나누게 하는 그 어떤 따뜻한 파장을 느낄 수있어 행복했습니다.


어린이들을 경외심으로 맞이하고
사랑으로 가르치며
자유로운 인간으로 그대들을 떠나게 하라.

루돌프 슈타이너의 말이에요. 경외심은 두려움입니다. 상상 이상의 놀라운 표현을 해내는 아이들을 내가 아는 만큼의 좁은 틀에 가두고 선택을 강요할 때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중한 경외심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그림책으로 사랑을 전하며 한 명의 자유로운 인간으로 이 품을 온전히 떠나게 하게 싶습니다. 그리고 나 또한 온전히,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들며 글과 그림, 교육과 철학, 삶과 예술 그 '사이'에 있는 것들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우리, 기준과 경계에 대해 언제나 잠재적 의혹을 품고서 의심하고 뒤집는 삶을 살기로 해요.
여러분과 함께 고민하며 살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좋아서하는 연구회 안과 밖의 만남 4월의 모임은 4/25(수) 저녁 7시입니다.
꼭 참석하고 싶은데 매주 목요일에 일정이 있다고 다른 요일에도 했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있었어요.
그런 분들을 위해 요일을 바꾸어 진행하려 합니다.
4월의 주제는 <존재>입니다.
우리, 조금더 따뜻해진 가슴으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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