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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로이현아 Jul 04. 2016

[말하는 그림] 아이들은 어떻게 추상(抽象) 할까?

추상표현 아크릴화로 보는 비주얼 스토리텔링


[말하는 그림 #1]

아이들은 어떻게 추상(抽象) 할까?

추상표현 아크릴화


아이들과 일년동안 했던 미술 수업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수업, 그러나 가장 기억에남는 소중한 수업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잠시의 고민도없이 단연코 이 '추상표현' 수업을 소개할 것이다.


2학년 아이들과 눈에 보이지않는 '감정'과 '느낌'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를 추상화하여 조형요소를 가지고 표현하는 수업은 단언컨대 '어렵다'. 그러나 또한 확실한건, '우와, 된다, 된다, 된다!!'

                                                    

3월 첫날 우리 교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 (lio kim, 9-year-old) 2016 acrylic on canvas

3월달의 기분을 떠올려 표현했던 친구.

처음 이 교실에 들어왔을 때의 기분을 '쇼킹했고 낯설었지만 엄청 다'고 표현했다. 빳빳하게 펼쳐진 새하얀 도화지, 아직 찬기가 완연한 3월의 교실 공기, 말똥 말똥 나를 쳐다보는 반짝이는 24개의 눈빛, 그래 선생님도 매년 그 기분으로 새 교실에 들어서지! 작가를 닮아 자유롭고 강렬한 이 작품은 내게도 '처음'을 생각나게 한다.


울고나면 슬프지만 시원한 기분 (phillip cho, 9-year-old) 2016 acrylic on canvas

이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울고나면 슬프지만 시원한 기분> 이라 명했다. 아, 어쩌면!!!! 나는 이 작품의 구상이 너무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 기분, 나도 느낌 알거든!! 갈급한 대지를 적시는 빗물처럼, 슬픈 어떤날의 눈물이 때로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씻어주어 한결 말갛게 풀어진 얼굴을 선사하곤 하지 않던가.


busy feeling (kevin yoon, 9-year-old) 2016 acrylic on canvas

그리고 재미있는 이 작품. 한젬마의 <못사람>이나 이응노의 <군상>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처음 이 친구는  흘러내리는 물감처럼 까만 사람떼가 한쪽으로 쏠려 내려와 물에 떠내려가는 듯한 형상을 표현했었고, 정처없이 부유하는 그 느낌이 나는 참 마음에 들었었다. 어쩜 작품명도 도시의 바쁜 사람들(busy feeling)이라니, 그 절묘함과 탁월함에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쏟아주었다.


그러나 작가는 작품에서 손떼기를 어려워했다. 나의 만류에도 까만 사람떼를 화면에 가득 채우더니... 글루건을 쓰는 친구가 그리 부러웠던지 저도 가져다가 커다란 사람 몇을 더 그리고서야 비로소 손을 떼고 사인하였다. "하고싶은대로 해도되요?" , " 네 작품이잖아, why not?".  그렇게 까만 군상이 화면가득 정신없이 떠다니는 새로운 작품이 탄생했다.  작품을 설명하는 작가노트에는 다음과같이 쓰여있다. " If you go in a busy city, you can feel like this." 

작가노트 Artist's comment ( kevin yoon, 9-year-old)



봄의 냄새 (sua choi, 9-year-old) 2016 acrylic on canvas

이 고운 친구는 <봄의 냄새>를 이렇게나 곱게 표현했다. 어디선가 버블껌같은 꽃내음과 민트향같은 풀내음이 바람을 타고 불어오는 듯, 상쾌한 작품이다. '그림은 그리는 사람을 닮는다'는 말을 몸소 실현해주는 것 같은 작품.


봄의 노래 (mason jung, 9-year-old) 2016  acrylic on canvas

이 작품은 <봄의 노래>이다. 해묵은 책꽂이의 베토벤 악보를 찢어 붙이고 꽃잎을 눌러 붙이는 꼴라주로 이처럼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했다.


열 받았을 때 Fire! (james sohn, 9-year-old) 2016 acrylic on canvas

이 친구는 다름아닌 열받았을 때! 를 표현했다. 모닥불의 형상과 느낌을 표현했는데 성에 차지 않았는지 정말 불을 피우는 것처럼 나뭇가지와 솔방울을 주워와서 모닥불 아래 글루건으로 하나씩 붙여서 표현했다.


시험 보기 전 불안하지만 짜릿짜릿한 기분 ( caleb park, 9-year-old) 2016 acrylic on canvas

이 작품은 <시험 보기 전 불안하지만 짜릿짜릿한 기분>. 심장이 벌렁이고 연필 쥔 손이 흥건해지는 그 기분, 느낌 아니까.


산 정상에 올랐을 때 시원한 기분 (kate kang, 9-year-old) 2016 acrylic on canvas


이 작품은 <산 정상에 올랐을 때 시원한 기분>이다.  그 특유의 표정이나 태도에서 '일본'의 느낌이 났던 아이. 내게 그림의 느낌도 그랬다. 왼쪽의 깔끔한 그림도 좋았는데, 더 시원한 느낌을 주고싶다며 산 위에 만년설도 소복히 그렸다. "오호, 후지산이니?" 했더니 '아무렴 보는사람이 느끼는대로' 하는 표정으로 어깨만 한번 으쓱- 하던 아이.


영화를 보기 전 기대되는 기분 (minseo her, 9-year-old) 2016 acrylic on canvas

작품도 멋있지만 작품명은 더 멋있다. <영화를 보기 전 기대되는 기분>.


오빠랑 핑퐁 (sojung lee, 9-year-old) 2016 acrylic on canvas

이 작품은 좀 웃음이 난다. 작가의 오빠는 야구 선수이다. 그래서 중간에 날고 있는 하얀 동그라미는 바로 야구공인데, 왼편이 본인의 분노 게이지이고 오른편은 오빠의 그보다 더 가득 차오른 분노 게이지란다. 오빠랑 엄청 자주 싸우기 때문에 이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아무렴 사연을 듣고보니 그럴듯하게 표현했다.


무슨 일을 시작하기 전에 기대되는 기분 (jiwon yoon, 9-year-old) 2016 acrylic on canvas

이 작품은  <무슨 일을 시작하기 전에 기대되는 기분>이다. 작가는 두근거리고 황홀한 느낌을 표현하고 싶다며 계속해서 'more and more'을 원했고,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겹겹이 표현을 시도한 끝에 색깔 양초를 녹여서 흘러 내리도록 도와주었더니 오호, 꽤 흡족해 했다.


하나같이 시같고 노래같았던 작품명들. 어린이 작가와 작업하면서 한참동안 한 명 한 명 각자의 사연과 그 내면의 이야기를 끌어내어 작품과 연관짓고 의미를 부여한 끝에, 시적 감성을 더하여 공들여 지은 작품명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다. 그렇게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게 된 '말하는 그림'들.


우리 엄마가 호랑이처럼 화났을 때 (seohyeon jang, 9-year-old) 2016 acrylic on canvas
작가노트 Artist's comment (seohyeon jang, 9-year-old)

이 작품의 주황색 호랑이는 과연 누구일까? 하면 아이들은 98% 정답을 맞춘다. 누구일까? 그렇다 다름아닌, 엄마다. 이 친구는 엄마가 호랑이처럼 화내는 말을 쏟아낼 때의 기분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엄마가 보시고 필시 풉, 웃으면서 이 귀여운 아이를 꼬옥 안아주셨을 거라 믿는다.


엄마한테 혼나고 방에 들어가 있을 때 (jay shin, 9-year-old) 2016 acrylic on canvas

마지막 작품은... 그림에 담은 이야기를 듣고 전율했던 작품.


깊고 어두운 통 안에 까만 공 하나가 들어가 있다. 위에서는 공을 향해 하나의 집게가 내려오고 있다. 아이는 과연 무슨 기분을 표현한 것일까?


작가는 이 작품을 <엄마한테 혼나고 방에 들어가 있을 때>의 기분이라고 명했다. 깊고 어두운 통 안에 들어가 있는데 집게가 날 꺼내주기를, 그러니까 엄마가 얼른 화를 누그러뜨리고 내게 손을 내밀어 주기를 기다리면서 방에 들어가서 가만히 앉아있을 때의 느낌이라는 것이다. 아, 정말이지 이런 추상표현이 가능하다니!! 이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고 섬세히 붙잡아 추상의 소재로 삼은것 하며 통안에 든 공과 집게로 비유하여 표현한 것이며... 감탄의 감탄을 거듭하며 칭찬을 마구마구 쏟아부어 주었던 작품이다.  



아이들과의 1년을 마무리하던 지난 2월, 함께하는 마지막 시간의 끝자락에 정말 오랫동안 붙들고 씨름하며 완성했던 작품들이다.'추상'이라는 개념에 접근하기 어려웠지만 한작품 한작품 붙잡고 끌어내다보니 감히 가늠하지 못했던 초월적인 상상력과 탁월함을 보여주었던 아이들.  

어린이 작가들과의 마지막을 불태우며 함께했던 이 멋진 '말하는 그림' 작품들은 오래도록 행복한 사랑의 기억으로 내 마음을 가득 채울 것이다. 매일같이 얼굴을 부비적대었지만 이제는 가깝고도 먼 이전 학교에 두고 떠나온 내 뮤즈, 내 아티스트, 내 사랑스런 제자들. 그들과의 추억과 사랑이 가득한 이 그림을 다시 꺼내어 어루만지는 오늘, 너무도 사랑스러웠던 그 해의 아이들이, 정말 많이 보고싶다.
                                                  


                                                                                                                 

* 글을 쓴 이현아

그림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담백한 시, 두툼한 마티에르가 살아있는 거친 나이프그림. 이 두가지를 사랑하며 살게 된 것을 이십대에 만난 행복 중 큰 것으로 여깁니다.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고 발견하는 삶을 가치롭게 여기며 교육과 예술이 지향하는 궁극의 본질도 ‘삶 속에서의 의미만들기 과정’ 과 다름없다고 믿습니다. 교실에서 의미를 발견한 날부터 아이들에게 스며흘러가는 통로의 삶을 살기로 다짐하고 배워서 남 주는 삶의 기쁨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교육미술관 통로를 운영하면서 어린이작가들과 창작그림책을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으며 [교실 속 그림책]이라는 총서면의 그림책 시리즈를 독립출판하고 있습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교육자이자 연구자(A/R/Tography)의 한 사람으로서 독서교육과 미술교육의 두 맥락에서 그림책에 대한 유의미한 담론을 이끌어내며, 가치로운 교육적 역할을 실천해내기를 소망합니다.                                                    


*홈페이지 교육미술관 통로 http://www.museum-tongro.com

*블로그 http://blog.naver.com/oka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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