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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로이현아 Jan 23. 2017

[교육미술관통로]페르마타하티에서의 그림책수업이야기(2)

[교실속그림책] 통로이현아Voluntravelling프로젝트 서울to우붓

                                

Voluntravelling프로젝트 서울to우붓
[Picture books in the Classroom] 
페르마타 하티에서의 그림책 수업 이야기(2)-교육미술관 통로 (통로 이현아)                                                  


                                                                                        

페르마타 하티에서 아유와의 첫 인사를 마치고 우리 부부는 몽키 포레스트로 이어진 길을 걷기 시작했다. 좁은 인도에서 정신없는 오토바이와 자동차 몇 대를 아슬아슬하게 지나보내고 걸을만한 넓은 길이 나오자 마자, 나는 개인적으로 정말이지 '눈물나도록 가슴 벅차고 행복했던' 아유와의 만남에 대해 흥분하며 신랑에게 몽글몽글한 나의 이 마음을 전해주려 조잘거렸다. 나도 정말이지 학교에서 그런 생각 많이 했었는데, 아유가 그걸 공감해주고 이렇게 말해주어서, 너무 행복했고.......

그런데 왠일인지 우리 신랑은 표정이 무거운 기색이었다. 초록길을 걸으며 신랑은 내게 뭔가 '봉사'를 하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경솔한 일인 것 같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봉사'라는 것은 우리가 무언가 희생을 감수하고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인데, 우리는 지금 여행을 와서 일정 중에 잠시 시간을 내어 이곳에 들른 것 뿐이다. '고아원', '봉사', '기증' 네가 말한 그런 단어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무게감이 있는데, 우리는 너무 가볍다. 부끄럽고 경솔한 일이다. 

그렇다. 나는 너무 흥분했었다. 그것도 직접 아이들과 만든 그림책을 가지고서, 그것도 소중한 이들과 함께 영어로 번역을 해서, 그것도 내가 사랑해마지않는 오소희 작가님과 중빈이 품고 있는 우붓에, 그것도 페르마타 하티에! 내가 가게되다니! 너무나 감격스럽고 가슴이 떨려서 엄마아빠 가족 친구 교수님 언니 지인들에게 나의 이 흥분된 마음을 전했다. 방금전까지도 아유와 대화하면서 나는 눈물나도록 가슴이 벅차올랐고 이 흥분된 마음을 신랑에게 쏟으려 했다. 그런 내게 신랑은 경솔하면 안된다고 찬물을 끼얹었다. 그리고 이 순간, 나는 그의 말에 너무나도 동의가 되었다. 
  
 방방 뛰어오르던 마음이 착 가라앉으며 비로소 정신이 돌아왔다. 신랑이 내게 말했다. 우리 한국에서 봉사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보지도 않았잖아. 그러면서 여기에 와서 봉사하겠다고, 대단한 것을 하는것처럼 착각해서는 안된다. 할거면, 제대로 하자. 한국에도, 네가 있는 학교에도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 많다. 사실상 거기 더 많다. 진짜 진정성과 신념을 가지고 꾸준히, 하지만 조용하게, 본질을 추구하자. 이벤트 같은 이런 봉사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것은 정말 도리가 아닌 것 같다. 봉사라는 말보다 우리 '수업'이라는 말을 쓰자. 네가 지도한 아이들의 책을 영어로 번역해서 다른 나라의 독자들에게 전해주는 것은 한국의 네 아이들에게 분명 좋은 경험과 감동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 있는 아이들이 이야기를 펼치도록 돕고 책으로 만들어주는 것도 좋은 일이다. 책으로 서울과 우붓 서로가 교류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아주 좋은 '수업'이다. 너는 좋은 수업을 해주러 온 것이다. 엄청난 봉사를 하러 온 것 처럼 우리 포장하거나 착각하지 말자. 이런 이야기였다.   

때마침 우붓의 스콜이 내려와 뜨거운 초록 열기를 촤르륵 식혀주었다. 우리는 근처의 식당으로 뛰어들어갔다. 정원이 딸린 널찍한 정자에 앉았다. 마구 흥분했던 마음은 가라앉았지만, 나는 신랑이 했던 모든 이야기에 진심으로 동의했다. 나는 신랑이 했던 이야기에 200% 동의한다고 말하였다. 한동안 우리는 평소답지 않게 침묵했다. 음식은 주문했으나 여지껏 나오지 않았고, 빗소리만 들렸다.

'그래도... 나 기특하잖아 그치?' 분위기를 바꿔보려 나는 눈을 흘기며 샐쭉하게 말하였고, 신랑은 내게 '너 이제... 어른이야.'라고 말했다. 

촤르르... 내리는 빗소리가 나뭇잎을 적시고, 정원의 우물 물에서 툭 툭 다시 튀겨 올랐다. 맞아. 정말이지, 맞다. 나 칭찬을 주어야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칭찬을 받으려 하고 있었네. 가만히, 가만히... 그 자리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반성했다. 

평소답지 않게 오늘은 '잘한다예쁘다' 해주지 않는 신랑이 섭섭하기 보다는 고마웠다. 우붓에 오기 전, 꾸따 지역에서 친구를 만났었다. 서핑을 하며 살기로 마음먹고 부부가 함께 발리에 정착한 멋지고 용기있는 친구였다. 함께 발리 현지교회에 가서 같이 예배도 드리고 너무나 감사하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만난 날 하늘은 뜨거운 햇살과 열기를 내리쬐고 있었다. 친구는 '비가오려나보다, 이렇게 날씨가 쨍쨍하고 뜨거우면 꼭 그다음에 비가 오더라' 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참 후 정말 비가 왔다. 
내게 뜨겁게 타오르는 햇살에 적절한 타이밍에 시원한 비를 촤르르 내려주어서... 그걸 우리 신랑이 해주어서... 나는 정말 감사했다. 

점심을 다 먹고 비가 그치자 우리는 몽키 포레스트를 신나게 돌면서 웃긴 원숭이들을 보면서 깔깔댔다. 그리고 페르마타 하티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다시 촤르르- 또 한번의 빗줄기를 만났고 눈앞에 보이는 카페로 미친듯이 뛰어들어가 물에빠진 생쥐 꼴을 면하였다. 

신랑은 진저향이 물씬 나는 라씨를, 나는 우붓처럼 푸르고 푸른 라임민트주스를 앞에 놓고서 빗소리를 들었다. (사진한장 없는 이 장면이 (의외로) 정말 기억에 짙게 남았다. 여행을 마칠때 까지 계속해서 우리는 서로 Best scene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내게 마지막까지 이 장면이 Best scene이었다. 신선하고 진했던 라임민트의 향 까지도 너무나 완벽했던 장면이었다.) 

그리고 나는 신랑을 페르마타 하티의 학생 삼아 앞에 놓고서 'Hi, everyone. I'm your teacher, Hyeon-a!' 하면서 열심히 수업 예행 연습을 하였고, 신랑은 그런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며 들어주었다. 

                   


* 글을 쓴 이현아

그림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담백한 시, 두툼한 마티에르가 살아있는 거친 나이프그림. 이 두가지를 사랑하며 살게 된 것을 삶의 여정에서 만난 행복 중 큰 것으로 여깁니다.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고 발견하는 삶을 가치롭게 여기며 교육과 예술이 지향하는 궁극의 본질도 ‘삶 속에서의 의미만들기 과정’ 과 다름없다고 믿습니다. 교실에서 의미를 발견한 날부터 아이들에게 스며흘러가는 통로의 삶을 살기로 다짐하고 배워서 남 주는 삶의 기쁨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교육미술관 통로를 운영하면서 어린이작가들과 창작그림책을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으며 [교실 속 그림책]이라는 총서명의 그림책 시리즈를 독립출판하고 있습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교육자이자 연구자(A/R/Tography)의 한 사람으로서 독서교육과 미술교육의 두 맥락에서 그림책에 대한 유의미한 담론을 이끌어내며, 가치로운 교육적 역할을 실천해내기를 소망합니다.     

                                                    


*홈페이지 교육미술관 통로 http://www.museum-tongro.com

*블로그 http://blog.naver.com/oka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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