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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로이현아 Jan 23. 2017

[교육미술관통로]페르마타하티에서의 그림책수업이야기(1)

[교실속그림책] 통로이현아Voluntravelling프로젝트 서울to우붓


Voluntravelling프로젝트 서울to우붓

[Picture books in the Classroom]
페르마타 하티에서의 그림책 수업 이야기(1)-교육미술관 통로 (통로 이현아)


                                                                                                             


우붓은 그야말로 숨막히는 초록, 초록, 초록이었다.
짙은 녹색이 습한 공기에 배어 코 끝에 훅- 훅- 와서 닿는 것만 같은 초록, 또 초록의 향연.

                                                                     

                                                                     

                                                                                                                                                                          

                                                                     

                                                                                                           

우붓과의 첫만남은 '정신없고 시끄러웠다'. 도로의 넓이에 비해 다니는 차가 너무 많아 꽉 막힌 교통체증, 그 사이를 요리조리 잘도 가르며 달리는 오토바이들 소리에 한참을 정신없이 두리번 거리면서 우붓과 만났다. 마을 어귀의 거대한 반얀트리 나무, 도로가 너무 좁아서 차 두대가 겨우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와중에 왼편에는 뜬금없는 닭 세마리가 푸르르 뛰어가고, 앞에 가는 트럭의 뒷칸에 서서 타고 있는 사람들과 잠시 눈을 마주쳤다 씩 웃고 다시 옆을 보면 온 집마다 대문 앞 바닥에 짜낭이 향냄새와 함께 놓여져 있는 풍경들.
과연 사람이 지나가기에 적합한 인도가 맞는가, 의심이 될 정도로 좁은 길을 걷노라면 오토바이와 사람이 양방향으로 뒤섞여 용케 지나가고, 빵빵, 빵빵, 나 지금 지나가니 조심하라는 의미인 것 같은 클락션을 울리며 지나가는 차들을 아슬아슬하게 비켜가면서 혹시 짜낭을 밟을라, 혹시 오토바이와 부딪힐라, 앞뒤좌우를 살피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는 무아지경.
큰 길가의 인도에서는 고요히 잘란잘란(산책)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인듯 했고 '정신없이 아슬아슬하게 걷기'로  우붓과 첫인사를 했다.

숙소로 깊숙히 들어가서야 풀벌레 소리와 나뭇잎사귀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풀벌레 소리- 참 낭만적이었는데, 귀뚜라미인지 개구리인지 무엇인지 모를 처음들어보는 풀벌레(?) 소리가 집 안, 침대 바로 아래에서 밤새 들려와서 신랑과 계속 잠을 깨면서 깔깔 거렸다. 서로 '제발 저 맹꽁이좀 잡아줘 제발' 하면서. 아마도 침대 밑 바닥 아래(?)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것 같은 그 맹꽁이(?) 소리를 우붓을 떠나는 날 까지 자명종소리처럼 간헐적으로 들으면서 자다깨다 웃다 뒤척였다. 밤마다 우리 방에서 함께했던 맹꽁이, 정말 잊지 못할것이다.   

                                                                          

                                                                        

                                                                                                             

아침 산책 후 우리는 먼저 페르마타 하티의 원장님 아유에게 인사를 드리고 그림책과 수업 도구들을 가져다 두기로 했다. 가져갈 짐을 하나씩 챙기면서 다음과 같이 사진을 남겼다.

                                                                          

                                                                  

아이들과 그림책 작업을 할 종이책의 틀을 다음과 같이 만들어갔다. 보통 수업때는 아이들과 직접 만드는데 아무래도 창작하는데 시간을 더 쓰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 미리 만들어갔는데, 좋은 판단이었다. 단이강이네 네 가족이 이걸 열심히 접고 붙여서 만들어주었다. 35세트를 만들기 쉽지 않았을텐데 마음을 함께 보태어주려 정성껏 도와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정성들여서 쓴 저자들의 편지, 그리고 그림책, 창작도구들을 챙겨들고 길을 나섰다.

                                                                       

                                                                       

가는 길도 역시 험난했다. 우리는 꾸따에서 우붓까지 우버로 한시간 가량 걸려서 왔는데 비용이 대략 1만2천원이었다. 그런데 리조트에서 이곳까지의 십분거리를 택시기사는 2만원을 요구했고, 짐도 있고 리조트에서 어떻게든 나가야 하는 필요를 가진 약자의 입장이라 울며겨자먹기로 비용을 지불했다. 다만 그 돈이 이 기사님께 온전히 가는 것이 아니라 리조트 관계자 등 다른이들에게 갈 것이란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단이강이 혜리언니가 사진으로 일러주었던 저 고아원 마크를 찾고 어찌나 반가웠던지.

                                                                                                             

드디어 이렇게 페르마 하티와의 첫 만남. 오전 시간어서 아이들은 없었고, 조용하게 비어있는 것 같은 고아원 창문을 빼꼼히 바라보니 원장님 아유가 나오셨다. 커다란 개 미스티는 내가 좋은지 허벅지를 자꾸만 핥아서 정신없이 피하면서 아유와 인사를 하고 페르마타 하티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걸려있고 주홍색 커튼이 햇살을 받고 있던 아늑한 공간. 원장님은 고아원에 있는 드럼과 악기들을 소개해주면서 처음에 음악을 전혀 할 줄 몰랐던 아이들이 소희와 JB를 만나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대해 한참을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기증해준 물품들이 'useful'하게 사용되어야 이것을 준 이들과 아이들 모두에게 기쁨이 될거라며 최대한 이것들을 잘 활용하려 노력한다고 하셨다. 소희와 JB로 인해 아이들이 음악을 알게되고 모두 하나가되어 멋진 퍼포먼스를 만들어나가는 일이 페르마타 하티에게 굉장한 자부심이 되고 있으며 그것이 이 공간을 쿵 쿵 뛰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이 순간 아유의 상기된 표정과 말투에서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아유에게 먼저 아이들의 그림책을 보여드렸다. 여러 그림책들이 있었지만 페르마타 하티에 직접 왔다가 간 단이와 강이와 작업했던 그림책 두 권이 내게도 각별하여 이를 먼저 보여드렸다. 혜리언니가 같이 넣어준 사진을 보여드리니 아이들이 기억이 난다고 하시면서 무척 반가워하셨고, 단이가 쓴 'Dream in Permata Hati'를 한 장씩 넘기며 읽으셨다. 처음에 너무나 밝게 웃으시면서 책장을 넘기셨는데,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 커다랗고 굵은 눈물 방울을 그야말로 뚝 뚝 흘리시며 너무 고맙다고 하셨다. 예상치 못했던 아유의 눈물이 내 마음에 촉촉하게 스며들었다. 아유와 마주앉아 그녀의 손을 따라 눈으로 맘으로 그림책을 함께 넘겼던 그 시간이 슬로 모션처럼 찬찬히 깊은 감동으로 기억되었다. 아이들과 수업했던 시간도 정말 행복했지만 아유와 그림책으로 마주했던 이 시간도 내게 너무나, 큰 행복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아유가 해준 이야기가 내 마음을 와장창 적셨다. 아유가 말하기를, 인도네시아의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숙제를 내주는데, 아이들이 열 장 스무장 씩 열심히 쓰고 또 때로는 돈을 들여서 프린트로 인쇄까지 해서 열심히 만들어간다. 그런데 그렇게 공들여서 가져간 결과물을 선생님은 'just nothing',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고 그냥 던져두고 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실망할 때가 많았다. 또 어떠한 퍼포먼스를 하겠다고 예고를 해서 아이들이 그것을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해서 가는데, 막상 어느 날이 되면 'canceled' 되었다고 하고서 그만인 일이 많다. 그래서 자신이 선생님께 이러한 일들에 대해 편지를 써서 아이들에게 책상위에 조용히 얹어두고 오라고 한 적이 있다. 선생님이 누가 쓴 것이냐고 물어보더라도 손을 들지는 말라고 했다고.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편지를 읽으시고, 그 뒤로부터는 이런 일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의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쓰고 그린 활동 결과물을 이렇게 책으로 만들어주고, 읽어주고, 관심을 보여준다니 너무 좋은 일이다. 그것도 'real book'으로 만들다니, 아이들이 얼마나 뿌듯해하고 즐거워할까? 선생님의 이 아이디어 정말 creative 한 것 같다. 이 아이들이 진짜 '작가'가 된다면 그것을 시작하게 한 이 책이 얼마나 그들을 흥분시킬지 상상이 안된다. 이런 이야기였다.

아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학교에 있는 사람으로서 정말 공감했다. 내가 처음 책만들기를 시작했던 계기 역시 아유의 이야기와 무관하지 않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쓰고, 그리고, 또 쓰고, 그린다. 종이 쪼가리에 그리고 부우욱 찍은 공책 나부랭이에. 그리고 가져와서 끊임없이 보여준다. '선생님, 이거 내가 그렸다요. 선생님, 이거 보세요 저 또 써봤어요!' 그런 것들 중에는 눈을 번뜩이게 할만한 좋은 표현도 있고, 붙잡아 두고 싶을 만큼 걸출한 장면들도 심심치않게 만난다. 나는 최대한 그것들에 반응하며 감탄해주려 노력하는데, 바쁜 일과는 언제나 그렇듯이 '흘러간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것들은 2월이 되면 모두 '없어진다'. 어디로 갔는지 나도 모르고 아이도 모른다. 어딘가 귀퉁이에서 반짝이다가 점멸해버린 생각 조각들. 나는 그것들이 너무나도 아까웠다.

그래서 반짝이는 그것들을 어딘가 근사한 틀에다가 담아 남겨주고 싶었다. 처음 시도했던 것은 캔버스였다. 아이들은 '캔버스'를 학교 교실에서 사용한다는 사실 자체에 굉장히 흥분했다. (그러나 캔버스가 뭐 그리도 별것이던가) 작품을 하는 바탕이 바뀌었을 뿐인데 아이들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릴 때는 느끼지 못했던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어떤 긴장감에 흥분하며 굉장히 즐거워했다. 채 연필 선을 그어내려가지 못하고 '선생님 못하겠어요, 이거 안지워지잖아요 실패하면 어떡해요' 하며 조심 조심 한 선 긋고, 심호흡 하고 또 한 선 긋고 심호흡하는 아이,  완성한 작품을 '언제 집에 가져갈 수 있어요?'하며 어서 교실 전시가 끝나고 자신이 소유할 날을 고대하던 아이. 그렇게 자신의 작품을 소중히했던 것은 다름아닌(별것아닌) 캔버스 위에다 작품 활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똑같은 아이가 똑같이 그린 것인데 종이 조각에 그린 것은 아이 자신도, 교사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을 캔버스에다 그리니 아이 자신도, 주변 사람들도 굉장한 작품으로 보아주었고 소중히 여겨주었다.

아이의 작은 생각, 글과 그림으로 흘러나오는 어떤 생각들에 귀기울여주면 그것은, 멈춰있지 않고 막 커져갔다. 그냥 툭 흘러나왔을 때는 낙서였고 엉뚱한 생각의 한 조각 이었는데, 그것을 키워내 '마침표'를 찍을 때 까지 버티면서 들어주고 완성하도록 도와주면-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그것을 묶어서 인쇄를 하고 고유의 출판등록번호도 부여하여 하나의 완성된 결과물로 끝맺어주니 여기저기 반짝이며 떠돌아다니던 생각 조각이 그냥 점멸하지 않고 어엿한 한 권의 책으로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소중히 여김을 받으며 계속해서 빛을 낼 동력을 얻게 되었다.


[독립출판으로 어린이작가 그림책 만들어주기]에 마음을 쏟기로 마음먹고 지금까지 60권이 넘는 그림책을 아이들과 함께 만들었다. 나는 이 책들을 만드는 과정에서 너무나 전율하다가 이따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쓰고 그린 아이 자신에게 이 책은 너무나 반짝이는 빛이 난다. 또 지도한 입장에서 내게도 너무나 소중하게 빛이 난다. 하지만 '애들이 쓴 거 뭐 별거 있겠어'하는 어른들이 볼 때는 아무런 빛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 나의 호들갑같은 이 전율이 별다른 감동이나 공감을 얻지 못할수도 있겠다. 아이가 해낸 표현 하나 하나에 전율하고 흥분하여 어쩔줄 몰라 벅차오르는 이 마음이... 그다지 오롯이 전해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들로 이따금 마음이 쓸쓸해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뜻밖에 생각지도 못했던 이곳 우붓에서, 원장님 아유가, 나의 이 마음을 오롯이 느껴주고 공감해주었다. '애들이 쓴 거, 거기에 뭔가 있다'는거 나도 안다고. 그리고 여기 인도네시아에서는 내가 선생님께 편지를 썼지만- 그곳 한국에서는 교실에서 아이들이 만들어낸 결과물들을 'just nothing' ,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지 않아주어 참 고맙다고. 그렇게 뜻밖에 내게 부어준 격려와 공감에 나는, 정말이지 눈물나게 가슴 벅차고 행복했다.  

                                       

      


* 글을 쓴 이현아

그림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담백한 시, 두툼한 마티에르가 살아있는 거친 나이프그림. 이 두가지를 사랑하며 살게 된 것을 삶의 여정에서 만난 행복 중 큰 것으로 여깁니다.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고 발견하는 삶을 가치롭게 여기며 교육과 예술이 지향하는 궁극의 본질도 ‘삶 속에서의 의미만들기 과정’ 과 다름없다고 믿습니다. 교실에서 의미를 발견한 날부터 아이들에게 스며흘러가는 통로의 삶을 살기로 다짐하고 배워서 남 주는 삶의 기쁨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교육미술관 통로를 운영하면서 어린이작가들과 창작그림책을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으며 [교실 속 그림책]이라는 총서명의 그림책 시리즈를 독립출판하고 있습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교육자이자 연구자(A/R/Tography)의 한 사람으로서 독서교육과 미술교육의 두 맥락에서 그림책에 대한 유의미한 담론을 이끌어내며, 가치로운 교육적 역할을 실천해내기를 소망합니다.     


*홈페이지 교육미술관 통로 http://www.museum-tongro.com


*블로그 http://blog.naver.com/oka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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