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통로이현아 Jan 24. 2017

[교육미술관통로]페르마타하티에서의 그림책수업이야기(8)

[교실속그림책] 통로이현아Voluntravelling프로젝트 서울to우붓

                                                                                           

Voluntravelling프로젝트 서울to우붓
[Picture books in the Classroom]
페르마타 하티에서의 그림책 수업 이야기(8)-교육미술관 통로 (통로 이현아)


우붓에서의 마지막 날이 오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과 문을 활짝 열어 젖히니 밀려드는 햇살과 함께 초록빛이 후욱 눈으로 코로 밀려들어온다. 섭섭하다. 너무너무 섭섭하다. 이 아침 이 초록빛이 말할수없는 섭섭함으로 가슴팍에 밀려들어온다. 아쉬움에 나는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정신없이 수업을 진행하느라 아이들과 단체사진도 한장 못남겼다. 그리고... 아이들 얼굴과 이름과 그림책을 하나하나 매치하기 위해서 내가 특강이든 수업에서든 수업 마무리에 남기는 작가 프로필사진들도 하나도 찍지 못했다.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다시한번 들러서 얼굴 보고 떠나면 안될까...? 나는 자꾸만 이유를 만들어가며 오늘 우붓을 떠나기전 페르마타 하티에 들러서 이러저러한 마무리를 해야겠다며 시간을 부여잡기 시작했다. 어제까지 그림책 수업 잘 끝내고 잘 마무리하고 와놓고서 그 사진들을 도대체 무엇에 쓰겠다고 그러는거냐고 묻는 신랑에게 '볼거야... 두고두고 간직하고 볼거야... 그리고 그림책 만드는데도 필요해... 꼭 필요한거야'라며 나는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너무 섭섭했다. 그동안 숱하게 아이들을 만나왔는데... 통로의 그림책을 처음 시작하고 처녀작을 함께 만들었던 그 해의 아이들도 내게 각별하여 헤어질 때 너무나 섭섭했지만 그보다 지금의 이 섭섭함이 더욱 큰 것만 같았다. 그동안 아이들과 일 년을 함께 하기도 하고 4주간 함께하며 그림책 작업을 하기도 하고, 단 3일을 캠프로 찐하게 만나 그림책을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수백명이 넘는 아이들과 만나고 헤어지면서도 한 번도 이렇게까지 섭섭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고 여겨질 정도로... 지금 이순간 너무너무 섭섭했다. 짐도 안꾸리고 앉아서 떼쓰기+집착 모드에 돌입하려는 내게 신랑은 '너 서울에 가면 200명 넘는 아이들 있잖아, 그 아이들한테 더 마음 쏟아. 여기는 아유 있잖아'라고 말했다.


나는(우리들은) 우붓의 아이들에게 왜그리 마음을 쏟아내게 되었고, 왜그리 섭섭함에 허우적거리게 된걸까. 아이들을 매년 만나온 입장에서 나는 이것이 참 요상했다. 아마도 여행자의 예민하고도 섬세한 감성으로 만난 탓일 것이다. 여행을 하면 우리는 평소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던 날씨 하늘빛 하나, 햇살 하나, 풀잎의 떨림 하나에도 반응할 준비를 한다. 난 여행중이라구, 내가 다 반응해 주겠어. 여행지에서 만나게될 그 어떠한 자극이여, 내게로 물밀듯 밀려오라'


그러다보니 라임민트 주스의 푸르른 색깔과 향에도 감동을 하고, 갑자기 만난 스콜의 빗소리에도 감동을 하고, 여름이면 한국에서도 지천에서 지겹게 보았을 이 초록 잎사귀들이 만발했다는 이유만으로 또 감동을 하고.... 별것들이 다 '별것 아닌 것'이 되어 내게 특별한 감동으로 밀려드는 것이다. 그런 충만하고도 섬세한 마음으로 페르마타 하티의 아이들을 만났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 허우적거리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페르마타 하티 아이들만의 고유한 사랑스러움과 매력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바 아니지만, 사실 그 고유의 사랑스러움과 매력은 일상 속의 어느 아이에게서든 조금만 관심을 주고 눈여겨 살펴보면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여행자의 예민한 감성으로 일상에 반응할 수 있다면 매 순간이 여행에서처럼 이렇게 풍성할 수 있을까...


우붓 아이들과 헤어지기 싫어서 이렇게 '여행자의 예민하고도 섬세한 감성'까지 생각해가며 꼼지락거리고 있다. 그래... 아이들 얼굴이랑 이름 거의 다 외웠고... 그림책 만들다 모르는 아이 생기면 JB한테 물어보지 뭐... 아니야 그래도... 다시한번 가서 마지막으로 만나고 떠나면 안될까?ㅠㅠ 이러면서...


그렇게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떼어내고 우리는 결국 우붓을 떠나고야 말았다.


모기에 잔뜩 뜯긴 팔과 다리를 긁어대며 우버를 타고 우리는 이제 누사두아로 향한다.





여행준비를 거의 하지 못했던 나는... 꾸따, 누사두아 이런 지역의 지명과 특색도 제대로 모른채 '우붓' 하나만 알고서 발리로 날아왔다. 우리 부부는 2014년 여름 여행을 다녀온 이후 지난 여름, 그 전 해 여름에도 휴가다운 휴가나 여행다운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 그전까지는 방학이면 무조건 기다렸다는듯이 여행을 떠나기에 힘썼지만 이 두해만큼은 지금 이자리에서 달리고있다는 몰입감과 성취감이 별다른 여행보다 더욱 즐겁게 여겨졌었다. 그렇게 두사람 모두 인생의 변곡점에서 최고밀도의 가속으로 열심히 달려왔던 두 해를 보냈고 2016년 연말이 되자 그 피로감이 절정에 도달해 내게도, 특히나 신랑에게도 휴식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렇게 우리에게 우붓 다음 여행지는 '무조건 푹 쉬자' 를 모토로 한 누사두아가 되었던 것이고 신랑은 진짜 너가 좋아할 만한 곳이라며 호언장담했다.



우붓에서 누사두아까지는 우버로 한시간 가량이 걸렸다. 우버를 타고 신랑은 기사님과 여느때처럼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우리는 우버를 장거리로는 네번 가량 이용했는데, 매번 신랑은 기사님과의 대화 속에서 '이곳에 온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하고 물었고, 그때마다 기사님들께 '7년되었어요'하는 대답을 들었다. 세번째까지는 그런가보다, 했었는데 네번째 기사님까지 7년이라고 대답하시니 이건 발리니스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어떤 특정한 종교적? 의미가 있는 상징적인 숫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우리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이것에대해 사사로이 궁금해하고 갖가지 예측을 해보며 낄낄거렸다.   




리조트에 도착하여 짐을 풀었다. 신랑이 독채로 된 풀빌라에서 진짜 편하게 쉬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 신랑은 아늑한 리조트를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하면서 이제 '드디어 쉴 수 있다'며 정말 행복해했다. 리조트의 만족감을 한껏 만끽하고나서 우리는 누사두아에서의 첫 산책을 시작했다. 내게 이곳에 대한 첫인상은 half-bali/half-hawaii 였다. 이곳은 발리라고 하기엔 짠기가 너무 빠져버린...싱거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넓고 시원하게 뻗은 도로와 쾌적한 인도, 미국식 아울렛처럼 꾸며진 Bali Collection 건물들을 보고있노라니 이건 아예 국경을 넘어 미국령의 또 다른 나라로 온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한편 우리 신랑은 산책을 하면서 너무나 신났다. 우붓에서는 오븟하게 산책을 하고싶어도 오토바이와 차들에 좁게 다니느라 힘들었는데 여기서는 이렇게 쾌적하게 걸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수영하고서 맹꽁이 없이 푹 잘수 있을것이니 너무 좋다, 무엇보다 이제 '드디어 쉴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심지어 급기야는 발리에서 이곳 누사두아가 최고인것 같다며 너무너무 행복해했다.

나는 아직 마음이 우붓에 머물러 있던지라 모든 것이 시큰둥했다. 고급 리조트 단지로 너무 개발되어서 발리 특유의 매력이 사라져버린 이곳이 어째서 발리에서 최고라는건지 이해가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후두둑, '드디어 쉴 수 있다'는 신랑의 말이 마음으로 쏟아져내렸다.




나는 우붓에서 쉬지 못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림책 수업 일정이 있었지만 몸도 마음도 우붓에서 푹 쉬고 왔다고 생각했고, 나와 함께하는 신랑도 당연히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부부가 일심동체라해도, 그림책 수업은 '나'의 일이었던 것이다. 내게는 행복이었고 쉼이었고 기쁨이었던 그림책 수업이 신랑에게도 행복이었고 기쁨일 수는 있었지만, 쉼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일종의 '일하는' 모드로 열심히 나의 파트너가 되어주었던 신랑이, 우붓을 떠나오니 이제야 비로소 '드디어 쉴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하고 있다. 나는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질 정도로 마음이 짠해졌다.




그래서 나는 '신랑이 행복해하니 나도 누사두아가 좋아'라고 말했다. 신랑은 너 아닌거 다 안다는 눈빛으로 자신의 행복을 100% 호응해주지 못하고 있는 나를 야속하게 쳐다보았지만 입은 웃고있었다. 그렇게 걸어 우리는 비치로 향했다. 바닷물 색깔은 끝내주게 맑았고 바캉스를 즐기러 온 사람들 (특히 호주인들)이 여유롭게 누워 쉬고있었다.

우리도 우리 리조트 area에 해당하는 카바나 중 하나에 자리를 배정받고 벌러덩 누웠다. 누워서 고개를 드니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가 올려다보였다.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이 너무도 시원했다.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Bintang이 빠질수 없지 않겠냐며 한잔씩 따라 짠 하고 다시 벌러덩 누웠다.


새가 울고, 나뭇잎이 바스락 거리고, 파도가 노래하는 가운데... 우리는 깊은 낮잠을 한잠씩 잤다. 그늘이 비켜가고 햇살이 간지럽게 얼굴에 쬐여 일어나보니 모든 것이 그대로 평온하다. 신랑도 단잠에서 깨어 '이곳이 바로 천국'이라고 하였다. 이 천국에 누워서 바람에 흩날리는 초록잎들을 바라보며... 나는 여태 우붓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 글을 쓴 이현아

그림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담백한 시, 두툼한 마티에르가 살아있는 거친 나이프그림. 이 두가지를 사랑하며 살게 된 것을 삶의 여정에서 만난 행복 중 큰 것으로 여깁니다.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고 발견하는 삶을 가치롭게 여기며 교육과 예술이 지향하는 궁극의 본질도 ‘삶 속에서의 의미만들기 과정’ 과 다름없다고 믿습니다. 교실에서 의미를 발견한 날부터 아이들에게 스며흘러가는 통로의 삶을 살기로 다짐하고 배워서 남 주는 삶의 기쁨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교육미술관 통로를 운영하면서 어린이작가들과 창작그림책을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으며 [교실 속 그림책]이라는 총서명의 그림책 시리즈를 독립출판하고 있습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교육자이자 연구자(A/R/Tography)의 한 사람으로서 독서교육과 미술교육의 두 맥락에서 그림책에 대한 유의미한 담론을 이끌어내며, 가치로운 교육적 역할을 실천해내기를 소망합니다.     

                                                    


*홈페이지 교육미술관 통로 http://www.museum-tongro.com

*블로그 http://blog.naver.com/okastor 


                                                                              

작가의 이전글 [교육미술관통로]페르마타하티에서의 그림책수업이야기(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