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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로이현아 Jan 02. 2018

[미술 감상 수업-피카소] 말하는 그림

어떤 그림은 내게 말을 건다.

나는 스스로의 삶 속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꼈던 '살아있는' 나의 화두를 교실로 가지고 들어와서 수업하기를 즐겨한다. 교과서 페이지 너머 안과 밖의 온도차를 극복하는 교실을 꿈꾸기 때문이다.


[미술감상-말하는 그림]수업 과정의 기획 역시 지난 8월 뉴욕의 뮤지엄에서 나누었던 대화로부터 시작됐다.

이번 뉴욕 여행의 대부분은 13군데의 서점과 2군데의 도서관, 그리고 5군데의 뮤지엄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구겐하임, The MET, MOMA, 휘트니, 클로이스터. 다섯 곳의 뮤지엄에서 그야말로 '퍼부어대는' 방대한 작품들의 시각적, 감각적 자극으로 감탄하다못해 잠식될 지경이었다.

나는 그 많은 압도의 순간들 중에서 '딱 한 작품'을 만나는 것에 집중해야 했다.
내겐 나의 영혼과 작품이 만나는 그 '딱 한 순간'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뮤지엄마다 '딱 한 작품, 딱 한 순간'과 만나기를 고대하면서 그림 앞에 섰다.

나는 남편에게 다가선 '당신의 한 작품'이 궁금해 자꾸만 묻게 되었다.
그 작품이 '왜' 좋은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좋은 것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해 더 나누고 싶어졌다.
남편은 이에 대해 자신은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과연 내 집 거실에다 걸고 싶은 작품인가'가 바로 그 기준이라고.
선뜻 기대했던 대답은 아니었지만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한 작품'에 대해 남편과 나누면서 나는 자꾸만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던 순간들을 이야기했다.
구겐하임에서 내게 편견과 판단에 대해 질문을 던졌던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MOMA에서 갈급함을 겹겹이 쌓으라고, 쌓으라고... 그러다보면 일렁일 것이라고... 겁겁으로 응축된 색과 빛이 나를 압도하여 눈물샘을 건들였던 모네,
그리고 작품마다 새롭고 강력한 메세지로서 '그래도 된다, 너만의 필체 과감하게 부리며 살아도 된다' 용기를 주었던 피카소...

남편과의 대화를 통해 나는 깨달았다. 내게 좋은 작품이란 '말을 걸어오는 작품'이다.
때로 그것은 사실 그림과의 어떤 만남의 순간을 빙자하여 내가 나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다.
때로 그것은 이전에 전혀 생각지 못했던 화두를 작품이 압도하는 힘으로 인해 새롭게 전해받은 것이기도 했다.  


어떤 그림은 내게 말을 건다.
인물이나 사물이 말을 걸기도 하지만 선이 가진 어떤 힘과 방향성, 색이 가진 감정이 마음을 파고들어 어떤 질문을 남기거나 화두를 던지기도 한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아이들에게 내가 들은 그림의 말들을 전해주고 싶어졌다. 그림이 건네는 말을 너희도 어느 날 들은 적 있지않느냐고, 나와 같이 한번 들어보자고, 청하고 싶어졌다.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이를 자신의 색과 빛과 언어로 표현해보는 수업 활동을 그렇게 구상했고, 가을과 겨울에 걸쳐 아이들과 틈틈히 함께 쓰고 그렸다.
다음은 그의 일부이다.




먼저 나는 아이들과 그림을 찬찬히 함께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그림의 인물은 이 장면에 등장하기 전 어떤 상황이었을까,
그림 바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지금 이 공간의 창 밖은 어떤 계절과 날씨일까,
이 인물에게 말을 건다면 나는 과연 어떤 말을 걸까, 그때 그가 하는 대답은 어떠할까,

이제 그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면 어떤 말을 할까...
다양한 발문으로 질문을 던지고 아이들의 살아 움직이는 화답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그리고 그렇게 뭉게뭉게 피어오른 아이들에게 다음을 제시한다.



◎이 그림에서 무엇이 보이나요? 가장 인상 깊은 것을 중심으로 찬찬히 들여다 봅시다.

◎ 이 그림 속의 인물은 어떤 상황일까요? 작가는 왜 이 장면을 그림으로 그렸을까요? 인물의 기분, 고민하고 있는 것, 창밖의 날씨, 일어난 일, 앞두고 있는 것 등을 자유롭게 상상하여 봅시다.

◎ 이 그림이 사람들에게 말을 걸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요? 그림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글로 써주세요.
                                                  

◎ 이 작품에 가장 멋지고 정성스러운 이름을 붙여주세요.



라스메니나스 (파블로 피카소, 1957)


재촉과 무관심.(왕원철, 13-year-old, 2017)


◎ 이 그림이 사람들에게 말을 걸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요? 그림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글로 써주세요.

[노란색 아이의 관점에서 쓴 글]
아침부터 궁궐은 분주하다. 곧 있으면 무도회가 열린다. 어른들은 내 옷을 치장하고 마구 재촉하기도 하지만 정작 나는 별로 돤심이 없다. 오히려 창 밖이 어떨지 매우 궁금하다. 마치 다른 어른들과 나의 공간이 나누어져 있는 것 같다. 지금 밖은 어떨지, 누가 있을지, 어떻게 생겼을지 나는 그런 것들이 매우 궁금하다.
오늘 무도회는 아주 크다고 한다. 그래서 화가도 옆에서 참 분주하다. 나는 왜 이걸 하는지 모르겠다. 한 번이라도 밖에 나가 놀고 싶다.




생일 날(조한별, 13-year-old, 2017)


성 안의 시녀들(이도연, 13-year-old, 2017)







노란 머리의 여인(피카소, 1931)


비 오는 날.(이현지, 13-year-old, 2017)
◎ 이 그림이 사람들에게 말을 걸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요? 그림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글로 써주세요.

오늘 내 이름이 들어간 말을 많이 들어왔다. 사람들에게서 나온 나의 이름은 고드름처럼 뾰족했다. 그 차가운 말에 나는 한없이 찢겨서 흩어져버렸다. 귀를 막아도 막은 틈새로 비집고 들어와 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아, 자꾸만 눈이 감겨온다. 피로가 내 몸을 감싸다 곧 파도처럼 불어나 내 몸을 삼킨다.
... 꿈 속에서라도 행복하게 웃길.

                                                                                                                                                                                                                                                                                                                                                                                                                                                                                                                                                                                                                         



평온(윤현서, 13-year-old, 2017)






자화상(피카소, 1972)


늙은 노인.(전승호, 13-year-old, 2017)


◎ 이 그림 속의 인물은 어떤 상황일까요? 작가는 왜 이 장면을 그림으로 그렸을까요?> 인물의 기분, 고민하고 있는 것, 창밖의 날씨, 일어난 일, 앞두고 있는 것 등을 자유롭게 상상하여 봅시다.

이 그림의 사람은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며 노을을 등지고 앉아있는 것 같다. 이 사람의 기분은 우울해보이고 죽음을 앞두고 있는 것 같다. 작가는 늙은 사람을 보고 이 그림을 그린 것 같다.
◎ 이 그림이 사람들에게 말을 걸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요? 그림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글로 써주세요.

나는 살면서 남을 도운 적이 없는 것 같다. 의사는 나에게 우울증이라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내가 남을 도운 적이 없어서 이렇게 벌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이라도 사람들을 돕고 싶지만 그러기엔 나는 이미 나이가 많이 들어 죽음을 앞두고 있다.


좌: 나의 내면 모습, 독감(김남휘, 13-year-old, 2017)   우: 혼란(서한영,13-year-old, 2017)

좌: I see you(김두겸, 13-year-old, 2017)  중: 단단히 꼬여버린(김윤석,13-year-old, 2017)  우: 우울한 남자, 절규, 베인 (김영진,13-year-old, 2017)





여인의 흉상(올가)(피카소, 1929)


완벽, 거울 속.(조연지, 13-year-old, 2017)
◎ 이 그림 속의 인물은 어떤 상황일까요? 작가는 왜 이 장면을 그림으로 그렸을까요?> 인물의 기분, 고민하고 있는 것, 창밖의 날씨, 일어난 일, 앞두고 있는 것 등을 자유롭게 상상하여 봅시다.

표현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나를 숨기고 겉으로만 행복하고 완벽한 나를 보여주는.


◎ 이 그림이 사람들에게 말을 걸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요? 그림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글로 써주세요.
 
그림의 주인공에게.
안녕? 피카소가 그린 그림을 감상하다가 이 그림이 제일 인상 깊었어. 너의 모습은 완벽해 보이지만 속에 뭔가 있는 것 같아. 마치 나를 보는 기분이야. 속에선 죽을 것 같은데 겉으론 '난 완벽해'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사는 것 같거든. 내 속의 나를 아는 사람은 나 밖에 없어.


안에서 흐르는, 눈물의 진실, 거울 밖과 안의 내 모습 (윤정민, 13-year-old, 2017)

귀신은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 모습을 부정하다, 살인자의 아픔, 라면먹고 자다 일어났는데 (황서영, 13-year-old, 2017)


너와 나의 차이,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 울부짖음, 여러가지 감정 (조연지, 13-year-old, 2017)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다.
그리는 사람은 이 그림이 어느 사조에 속하는지, 어떤 기법을 사용했는지에 대해서 기억해주기를 바랐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은 후대의 사람들이 남겨진 그림에 대해 부여한 것이다.

그리는 사람은 분명 그림에 담고 싶은 어떤 것이 있었을 것이다.

이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 닿기를 바라는 어떤 거칠지만 솔직한 감정, 어떤 간절한 메세지, 어떤 흘러 넘쳐버린 감상, 어떤 날의 잊을 수 없는 날씨, 어떤 날의 사소하지만 생경했던 기분...                                            

그것을 질감과 색과 선에 담아두었다고 생각한다.       

                                                                                             

수업을 통해 그것이 살아움직여 의미가 재생산될 수 있다면,                    
자신이 겁겁이 담아둔 것들을 다양한 나라와 세대를 살고 있는 이들의 생동하는 눈이
각양각색의 시선과 관점을 가지고 읽어보아 준다면,
그것이 전혀 새롭고 어리고 신선하고 엉뚱한 것일지라도,
아니 어쩌면 그럴 수록,
그린 이는 분명 즐거워하지 않을까?                                                  
                                                  





* 글을 쓴 이현아

그림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담백한 시, 두툼한 마티에르가 살아있는 거친 나이프그림. 이 두가지를 사랑하며 살게 된 것을 삶의 여정에서 만난 행복 중 큰 것으로 여깁니다.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고 발견하는 삶을 가치롭게 여기며 교육과 예술이 지향하는 궁극의 본질도 ‘삶 속에서의 의미만들기 과정’ 과 다름없다고 믿습니다. 교실에서 의미를 발견한 날부터 아이들에게 스며흘러가는 통로의 삶을 살기로 다짐하고 배워서 남 주는 삶의 기쁨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교육미술관 통로를 운영하면서 어린이작가들과 창작그림책을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으며 [교실 속 그림책]이라는 총서명의 그림책 시리즈를 독립출판하고 있습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교육자이자 연구자(A/R/Tography)의 한 사람으로서 독서교육과 미술교육의 두 맥락에서 그림책에 대한 유의미한 담론을 이끌어내며, 가치로운 교육적 역할을 실천해내기를 소망합니다.     



*홈페이지 교육미술관 통로 http://www.museum-tongro.com




*블로그 http://blog.naver.com/oka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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