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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로이현아 Jan 05. 2018

'나'로부터 시작하는 진로독서교육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는 삶을 위하여

제주를 여행하고 갓 돌아온 가을날이라 더욱 그랬겠지요. 제주교육과학연구원로부터 원고 청탁 메일을 받고 '제주'라는 이유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어 기꺼이 충만한 마음으로 글을 써내려갔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의 삶에 있어서도 오랫동안 붙잡고 고민했던 본질적인 문제들을 담은 글입니다. 



어떤 것을 해도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이가 있는가하면 무엇을 하더라도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는 삶을 사는 이가 있다. 무엇이 그 본질적인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종이 한 장의 차이인 것 같지만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붙잡고 씨름하는 가장 묵직한 고민 중 하나이다. 나는 진로교육의 시작되는 지점이 있다면 바로 이 본질적인 차이를 인식하고 고민하게 하는 것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살아갈 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스스로 교육하는 사람으로서의 본질적인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나는 자문했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인가. 가장 밑바닥에서 굳은 심지처럼 나를 지탱해 주는 것,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아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살아갈 힘과 내적 필연성을 이끌어내는 것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진로교육은 그 무엇보다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무엇이 될지, 또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말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첫 번째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다면 그 물살을 타고 자연스럽게 파도를 타듯 두 번째, 세번째 질문으로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충분한 성찰을 무시한 채 그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은 모래성이 와르르 무너지듯 또 다시
원점의 고민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반복하게 한다.



“어떤 직업을 갖게 될지 아직은 모르지만
내 손으로 번 돈의 1/10을 다른 이들을 위해 쓰는 삶을 살고 싶다.”                                                                                                                 

_[덮으면서 다시 시작하는 그림책]을 함께 쓰고 그린 한 어린이작가의 꿈이다.


이 아이의 꿈을 다 쓰기에 <장래희망>을 쓰는 칸은 너무 좁았다. 자신이 미래에 하게 될 직업을 미리 선택하고 결정하지 못했다고 해서 꿈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직업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더라도 삶의 방향성을 가슴에 탄탄하게 품고 있는 아이가 분명 존재한다. 

하고 싶은 직업을 골라서  빈 칸을 어서 채우라고 채근하는 것은 아직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골몰하고 있는 아이를 자꾸만 불안하게 한다. 스스로를 꿈이 없고 목표점이 없어 뒤처지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불안과 조바심은 잘 알지도 못하고 스스로 원하는지 아닌지도 아직 모르는 어떤 직업을 덥석 집어 들어 나의 빈 칸을 채우게 만든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에 존재할지 혹은 그렇지 않을지 모를 구체적인 ‘직업’을 미리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보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대한 추상적인 측면들을 마음껏 생각해보고 그려보는 것이다. 

아직은 잘 몰라 어리둥절한 것, 손에 잡히지 않는 흐릿하고 모호한 것들만 떠오르는 것, 그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말해주는 것이야말로 아이들을 막막함과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삶의 본질적인 것들은 구체적이지 않다. 오히려 추상적이고 흐릿하고 모호하다. 

직업이 정해지고 내 이름 앞에 하나의 직위나수식어가 더 붙는다고 해도 삶의 본질적인 고민이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어른이 된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품고 자신의 마음 밭에서 마음껏 뒹군 시간, 내 작은 손으로 내 마음의 책장을 넘기는 시간이 쌓일 때 우리는 이전에 알지 못했던 자신만의 놀라운 세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 한 권의 그림책을 창작해본 경험을 시작으로 어린이작가들이 각자의 다양한 자리에서 제각기의 형태로 평생 펼쳐나갈 창작의 세계를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작가’라는 직업적인 이름을 가지든, 혹은 그렇지 않든 인쇄업자로서, 곤충채집가로서, 정비사로서, 변호사로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의미를 만드는 삶을 가꾸며 가슴 뛰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충분한 고민을 바탕으로 스스로 발견한 자신만의 세계, 그곳이 어떤 곳이든지 스스로의 자리를 아름답게 가꾸고 의미를 만들어가는 이에게 삶은 반드시, 그만큼의 기쁨과 보람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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