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뵌 적 없는 증조외할아버지와의 감정적 연대
일제강점기 시절 혼란한 시국 가운데,
어린 딸 하나만을 데리고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건너가
일본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를 가장한 채로 사진관을 운영하다
태평양 전쟁 중 연락이 끊기며 홀연히 사라지다.
왜 증조외할아버지께서는 2남 3녀 중에서도 장녀도, 막내도 아닌 외할머니만을 만주로 데려가셨을까?
(할머니를 가장 아끼셨던 걸까? 할머니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있으셨던 거라면, 할머니에게는 각별한 손주였던 나 역시 증조외할아버지께서 좋아하셨을까?)
혼란한 정국에도 나머지 가족을 전부 뒤로 한 채로 만주로 떠나야겠다는 마음 가운데엔 뭐가 있었을까?
(용기였을까, 무모함이었을까? 증조외할머니에 대한 굳건한 믿음 때문에 나머지 가족을 맡기신 거였을까, 아니면 그저 무책임한 태도였던 걸까?)
어떠한 형태의 독립운동을 계획하고 계셨던 걸까?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은 현실적인 이유에 기반한 거였을까, 이상주의적인 열정에서 나오는 거였을까? 계획을 하긴 하시고 떠나신 걸까?)
주변의 일본인들과 어떤 성질의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맺고 지내셨을까?
(왜 굳이 우호적인 태도를 가장하셨을까? 과감하고 단호한 태도를 취하기엔 우려가 되신 걸까? 일본인들과 어울리며 어떤 마음이 드셨을까?)
수많은 일들 중에 왜 굳이 사진관을 하셨을까?
(사진을 좋아하셨던 걸까? 할아버지께서 찍으신 사진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만주에 홀로 남아 어떤 일들을 겪으셨고, 연락이 끊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홀로 남아 가족을 많이 그리워하셨을까? 집에 돌아오려고 노력하셨을까?)
너무너무 좋으신 분이었지.
지금 돌아보면, 예술만 하고 사셨다면 참 좋았을 양반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