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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색 May 24. 2021

현실과 환상 사이, 내 마음속 그대

한 번도 뵌 적 없는 증조외할아버지와의 감정적 연대

때론, 아니 어쩌면 항상, 믿음이란 현실의 바탕이자 현실 그 자체가 되곤 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11:1)


일제강점기 시절 혼란한 시국 가운데,
어린 딸 하나만을 데리고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건너가
일본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를 가장한 채로 사진관을 운영하다
태평양 전쟁 중 연락이 끊기며 홀연히 사라지다.

웬 작품 속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증조외할아버지 이야기다.


증조외할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처음 접하게 된 건 아마도 대학교 3학년 즈음, 가족 문화에 대한 수업의 과제로 가족의 구술사(口述史, oral history)를 작성하기 위해 엄마와 얘기하 중이었을 거다. 외할머니께서 어린 시절에 만주에서 잠시 거주하시다가 태평양 전쟁(1941-1945)이 나면서 귀국하시게 된 경위에 대해 흥미롭게 듣고 있던 차였다.(내가 외할머니와 매우 각별한 관계였기에 아마 더욱 관심을 가지고 듣지 않았나 싶다.)


"할머니가 그때 기차역으로 가는 트럭 뒤에 실려 마을에서 멀어져 가며 본 게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었대." 엄마가 말했다.

"아빠?"

"응, 할머니 아빠."


그렇게 증조외할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처음 알게 된 나는, 엄마조차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엄마의 외할아버지 매우 궁금해졌다.



입체적 사람 이야기,

회색지대를 탐방하는 묘미


그도 그럴 게, 나는 사람 이야를 읽고 듣는 걸 좋아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물론 몇 백 년 전 살았던 유명인사들도, 그리고 장르를 불문한 다양한 작품들 속의 등장인물들까지, 현존/실존인물이든 아니든 나의 관심을 끄는 대상이 있으면 그 사람에 대해 이런저런 방식으로 정보를 찾아본다. 일대기, 인터뷰, 사진, 다큐멘터리, 영화, 그리고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작품 설명을 찾아보기도 하면서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다양한 정보를 접하는 가운데 이야기는 점점 풍성해지고, 사람은 더욱 입체적으로 변해간다.

'입체적으로 변한다'는 데에는, 이야기가 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깊고 자세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뜻도 있지만, 동시에 그 사람의 명암과 여백에 대해 알게 된다는 뜻도 있다.

평면의 종이에 빛을 비추면 그저 빛이 하얗게 반사되기만 하지만 접힌 종이에 빛을 비추면 그림자가 생기듯, 또한 평면의 종이는 그 자체로 숨김없이 모든 걸 드러내지만 여러 면으로 접힌 종이에는 성긴 공간이 생기듯, 입체적인 이야기에는 어두워 보이거나 알 수 없는 부분들이 생기는 것이다.


이야기의 이러한 명암과 여백은, 질문을 유발하는 모호한 회색지대를 구성한다.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독특한 작품 세계는 천재성에 기반한 창의적 결과물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일기와 편지 등에서 비치는, 경계성 성격장애나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적 증세의 발로였을까?

20살의 나이 차이도 모자라 거의 90kg의 몸집 차이가 나는 화가 프리다 칼로디에고 리베라의 관계가 쌍방 외도와 이혼 등의 끊임없는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평생 이어졌다는 사실은, 그 둘이 세기의 사랑을 했다는 방증일까 아니면 그저 감정적 결핍과 의존의 복잡한 실타래에 엉켜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일까?


이런 질문들에 어떠한 방식으로 대답하며 회색지대를 어떻게 조망할지, 명암과 여백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따라 이야기다양한 방식으로 재구성되고, 이에 따라 사람의 삶이 다르게 해석된다.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  (출처: Paul A. Juley / Archives of American Art, Smithsonian Institution)



환상과 현실 사이,

회색지대 속의 사람


증조외할아버지 이야기에도 이런 해석의 여지가 있었다. 아니, 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절대 답을 알 수 없을 질문들이 계속 생겨났으니까.

왜 증조외할아버지께서는 2남 3녀 중에서도 장녀도, 막내도 아닌 외할머니만을 만주로 데려가셨을까?
(할머니를 가장 아끼셨던 걸까? 할머니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있으셨던 거라면, 할머니에게는 각별한 손주였던 나 역시 증조외할아버지께서 좋아하셨을까?)
혼란한 정국에도 나머지 가족을 전부 뒤로 한 채로 만주로 떠나야겠다는 마음 가운데엔 뭐가 있었을까?
(용기였을까, 무모함이었을까? 증조외할머니에 대한 굳건한 믿음 때문에 나머지 가족을 맡기신 거였을까, 아니면 그저 무책임한 태도였던 걸까?)
어떠한 형태의 독립운동을 계획하고 계셨던 걸까?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은 현실적인 이유에 기반한 거였을까, 이상주의적인 열정에서 나오는 거였을까? 계획을 하긴 하시고 떠나신 걸까?)
주변의 일본인들과 어떤 성질의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맺고 지내셨을까?
(왜 굳이 우호적인 태도를 가장하셨을까? 과감하고 단호한 태도를 취하기엔 우려가 되신 걸까? 일본인들과 어울리며 어떤 마음이 드셨을까?)
수많은 일들 중에 왜 굳이 사진관을 하셨을까?
(사진을 좋아하셨던 걸까? 할아버지께서 찍으신 사진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만주에 홀로 남아 어떤 일들을 겪으셨고, 연락이 끊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홀로 남아 가족을 많이 그리워하셨을까? 집에 돌아오려고 노력하셨을까?)


이 물음들을 한가득 안은 채로 엄마에게 몇 번 더 질문을 했지만, 이미 외할머니께서도 돌아가신 마당에 엄마가 더 얘기해주실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기껏 알아낸 건, 외할머니께서 당신의 아버지를 어떻게 기억하시는지에 대해, 몇 년 전 엄마에게 넌지시 건네신 한마디였다.


너무너무 좋으신 분이었지.
지금 돌아보면, 예술만 하고 사셨다면 참 좋았을 양반이야.

증조외할아버지께서 왜 사진관을 운영하셨는지, 어떠한 마음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하셨을지에 대한 자그마한 힌트가 보이는 대목이었다. 아무도 예술을 장려하지 않는 집안에서 미운 오리 새끼처럼 튄다고 스스로 느꼈던 나로서는 증조외할아버지께서 예술에 대한 큰 관심을 가지셨다는 점 자체가 반갑게 느껴지긴 했지만, 동시에 증조할아버지께서 어떤 분이셨을지에 대해 확실한 판단을 내리기엔 너무 두루뭉술한 내용이라 느꼈다.

"좋다"는 건 무슨 의미이고, "예술만 하고 사셨으면 좋았"겠다는 말에 담긴 뜻은 무엇일까?

혹시 증조외할아버지께서는 무책임하게 가족을 내팽개친 채 허무맹랑한 믿음과 부족한 용기만을 가지고 현실에서 너무나 동떨어진 이상을 좇는 분은 아니셨을까?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우연히 증조외할아버지의 사진을 입수하게 됐다.


내가 가지고 있는, 증조외할아버지의 유일한 사진.


보자마자 반했다.

말끔하게 정돈된 머리와 복장, 호남형의 이목구비에 어딘지 정감 가는 (잘생긴) 용모가 멋있어 보였고, 그중에서도 특히 선하지만 분명한 눈빛에선 아름다운 깊이가, 보일락 말락 한 미소에선 따스한 함이 느껴졌다. 사진 속의 사람이 참 좋았다.

어쩌면 당대에 흔했던 패션과 남성상일 수도 있고, 내 증조외할아버지라는 점 때문에 나도 모르게 콩깍지 낀 눈으로 봐서 더 마음이 끌리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내 눈엔 할아버지가 특별하게 보였고, 누가 뭐라든 나는 별함을 믿기로 했다.

어차피 객관적인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다면,
내 믿음이 현실을 곡해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이 특별함을 믿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을까?



허상 아닌 기분 좋은 환상,
이에 대한 믿음이 갖는 힘


그래서 이 믿음을 토대로 나는 생각한다.

증조외할아버지께서는 무책임한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가족을 멀리 떠나와야 할 만큼 본인의 신념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의지를 가지신 멋진 독립운동가였고, 그렇기에 혼란한 시대를 외로이 살아가면서도 꿈과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으셨을 거라고. 그런 할아버지께서 외할머니를 각별히 사랑하셨고, 그 외할머니께서 또 나를 각별히 사랑하셨으니 분명 증조외할아버지께서도 증손주인 나를 참 좋아하실 거라고 (사랑의 삼단논법인가 ㅎㅎ).


그러니 증조외할아버지께서 지금 나를 보신다면, 만주에 홀로 남으면서까지 사랑하는 딸을 귀국시키셨던 보람이 있다며 뿌듯해하실 거다. 그리고는 환한 얼굴로 이리 오라며 사진을 찍어주시겠지. 역시 사진을 좋아하는 내가 할아버지를 찍어드린다고 하면, 수줍은 듯 웃으며 양복과 머리를 매만지시고는 가지런한 자세로 앉아 나를 향해 따뜻하게 웃어주시리라 생각한다. 내가 예술에 마음을 두고 있으며 글과 그림을 특히 좋아한다는 점을 들으신다면, 크게 반색하며 당신께서 좋아하시는 작품들을 소개해주시지 않을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하게 꽉 차오른다.

이런 따뜻한 마음으로, 증조외할아버지께 힘주어 말씀드리고 싶다.

타지에서 홀로 너무나 수고 많으셨다고,
할아버지가 정말 멋있고 자랑스럽다고, 감사하다고.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말한다.

너는 멋있고 자랑스러운 할아버지의 손주라고,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라고.

설령 지금 홀로 튀는 것처럼 보인다 한들,

너의 멋있는 증조할아버지께서도 그런 삶을 사셨다고, 그러니 외로워하지 말라고.


삶의 회색지대 속,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분명한 답이 없는 명암과 여백을 가진 존재들은 여전히 많다. 따스한 시선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해석할 때, 이들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 따뜻한 힘이 생긴다는 걸 알기에, 사람에 대한 아름다운 환상에의 믿음을 계속해서 지켜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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