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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색 Apr 11. 2021

해봤나요, 사람여행?

처음 파리를 누볐던 마음으로 사람을 탐험한다는 것

나는 파리는 갔지만 몽마르뜨 언덕은 가지 않았다.

근교에 있다는 베르사유 궁전도 가지 않았다.


팥빵을 사놓고선 팥을 피해 빵만 먹은 모양새의 여행을 한 건 대단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실은, 가끔씩 이상한 데서 덤벙대는 내가 귀국하는 항공편 날짜를 잘못 기억해 생긴 대참사였다. 

행의 마지막 날을 몽마르뜨와 베르사유로 화려하게 장식하겠다며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내게 아직 하루가 더 남아있다는 생각이 실은 오산이었던 거다. 몽마르뜨 언덕이나 베르사유 궁전과 같은, 일명 '꼭 가봐야 할 곳'을 여행의 마지막까지 미뤄놓다간 큰코다치고 뒤통수가 얼얼해지며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그렇게 배웠. 소 잃고 외양간을 고쳤다고 그냥 넘기기엔 소가 너무 컸어서, 파리 여행의 아쉬운 마무리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헛헛하다.


새삼 느낀다, 파리를 여행했던 때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는 걸. 많이 놀아본 사람이 놀 줄 안다고, 한 번도 홀로 해외여행을 가본 적 없던 나는 설렘보다는 불안을 더 많이 느꼈었다. 고작 일주일의 여행을 위해 23kg짜리 가방, 기내 가방, 그리고 배낭까지 꽉 차게 준비했다고 한다면 내가 얼마나 여행에 대한 감이 없었는지 설명이 되려나. 그렇게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한다면서 여행 중 사용할 데이터는 구비할 생각도 않았던 나는, 출국 불과 몇 시간 전지도 잔뜩 긴장한 채 종이지도를 출력하고 있었다.(내가 파리를 여행했을 때는 2016년이었다. 1996년 아님.)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완벽하게 어울리는, 어디로 보나 어쭙잖아 뵈는 풋내기 여행자였던 나는 그렇게 무방비 상태로 파리에 내던져졌다.  



걸어서 파리 속으로,

무방비 상태의 탐험


그렇게 어벙한 내가 보낸 파리에서의 일주일은 깜찍함과 끔찍함 사이 어딘가의 난장판이었다.

박물관의 개·폐관 시간을 미리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찾아간 탓에 수도 없이 헛걸음을 했고,

루브르 박물관은 갔지만 가장 유명한 작품인 모나리자는 근처에도 가지 못했으며,

무슨 패기였는지 운동화를 챙겨 오지 않아 발엔 여기저기 물집이 잡혔다.


이 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에펠탑을 다녀온 일이었다.

자국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강한 프랑스인은, 영어로 길을 묻는 관광객에게 프랑스어로 답변을 쏟아낸다는 (괴)소문은 적어도 내겐 사실인 걸로 판명 났다. 지하철 역무원의 이유 있는 불친절함에 혼이 쏙 빠져 혼나올라탄 지하철 안, 정신을 채 가다듬기도 전에 내가 목적지와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매우 불행한 사실을 깨달았다.

우두커니 서있는 매 초마다 에펠탑으로부터 덜컹거리며 멀어져 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다급했지만, (데이터도 없으니) 내가 어디인지 알 길이 없었기에 선뜻 하차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영겁과 같은 몇 분의 고민 끝, 나는 결국 떠밀리듯 파리 시내 한복판에 내렸다. 그리고 이젠 기억나지 않는 각고의 노력과 대단한 운의 조합으로 에펠탑을 어찌저찌 찾아내긴 했다. 한 시간 여의 거리를 헤매듯 걸어서.


그리고 에펠탑을 나오며 또 한 번 깨달았다 ― 걸어온 만큼의 거리를 또 걸어야 숙소로 돌아갈 수 있음을.

하필 그땐 발이 불편해도 너무 불편한 가죽 단화를 신고 있었다. '파리지앵에게 안 꿀리도록' 멋을 낸다며 나름 신중하게 신발을 골랐던 내 멍청함을 탓하기엔 이미 늦은 때였다. 아플 발을 생각하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는 게 답이었지만, 또 잘못 탔다가 벌어질 상황이 얼마나 공포스러울지에 대한 상상을 극대화할 만큼 날은 이미 어둑해진 후였다. 


그래서 그냥 걷기 시작했다. 

혹시나 어리바리한 티를 내면 그 악명 높은 파리의 소매치기의 표적이 돼버릴까 싶어, 팔꿈치로 가방을 몸에 바짝 눌러 붙인 채 얼굴엔 근엄한 (혹은 근엄해 보이고 싶은) 표정을 하고선. 그렇게 방어태세를 갖추고 마지막으로 꺼내 든 비장의 무기는 한국에서부터 바리바리 싸들고 온 종이지도였다. 다행히도 핸드폰으로 오프라인 GPS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 깨닫게 된 나는, GPS상 내 위치, 주위 지형지물, 그리고 지도를 꿈뻑거리는 눈으로 서로 대조하며 한 발짝 한 발짝을 어설프게, 하지만 신중하게 내딛었다.

미지의 파리 시내 속으로.


해가 저물어가는 걸 느껴지자, 정신을 정말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래도 에펠탑은 아름다웠고.


그렇게 온몸의 촉각이 바짝 곤두세워진 채로 걷다 보니, 처음엔 느끼지 못한 것들이 느껴지기 시작했.

화려한 대로변 너머의 골목골목을 채우는 서늘한 공기 속, 코를 살짝 불편하게 찌르는 퀴퀴함. 

시크하고 우아해 보이기만 했던 파리지앵의 미간 사이 구겨져 있는 메마른 삶의 껍질.

점잖지만 힘 있는 센강의 물결 위로, 잔잔히 부서지다 이내 아지랑이처럼 사라지는 도시의 화려한 불.


그러면서 알게 됐다.

이 모든 걸 세밀하게 관찰하며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방증하는, 경계하는 이방인으로서 나의 타자성(他者性),

이런 나와 이 도시의 관계에서 비롯된, 나를 스쳐 지나가는 파리 시민과 나와의 근본적인 다름,

그리고 내가 이 도시에서 얼마나 동떨어진 존재인지를 깨달았을 때 온몸으로 부딪혀오는,

여행을 막 시작했을 때의 설익은 흥분는 다른 새로움, 낯섦, 그리고 설렘.


그렇게 파도처럼 밀려오는 생경한 자극들을 오롯이 받아내며 쉼 없이 한 시간을 넘게 걸어가는 동안,

나는 아려오는 발바닥을 포함한 온몸의 감각으로 파리를 느꼈고,
그러는 사이 이 매혹적인 도시는 한 꺼풀씩 벗겨지며 내게 천천히 안겨왔다.

그렇게 녹초가 된 몸으로, 나를 반기는 불빛 하나 없는 숙소에 도착해 어둠 속 안도했을 때에서야

나는 비로소 파리를 제대로 여행하고 있다고 느꼈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사람을 보다


두말할 것도 없이, 나는 파리의 전부를 보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들 보는 것마저 놓쳐버렸을 만큼 내 시야는 엉성했고,
에펠탑으로의 짤막한 탐험은 내가 파리에서 보낸 일주일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빈틈 많은 찰나순간은, 그리고 그 순간이 길러낸 여행자의 시선은, 분명 파리에서 지낸 나머지 시간에 아주 진한 농도를 더했다. 렇게 생겨난 밀도 있는 시간은 이후 내가 파리를 넘어 다른 공간들을 만났을 때, 여행자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열린 시각과 자세의 바탕이 되었고. 이렇게 자리잡은 삶의 태도라는 초석 위로 하나 둘 쌓아올려진 경험과 깨달음은, 내 삶을 이루고 받치는 단단한 기둥이 되어 나를 지탱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행하듯 산다는 것, 그러니까 여행자의 눈으로 삶을 바라본다는 것삶과 시간을 풍성하게 자라나게끔 하는 축복의 화수분인 것 같다.


안타깝게도 당분간은 여행이 어려워진 시대다. 코로나 19로 인해 하늘길을 전만큼 자유롭게 누빌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행자의 눈이 더 이상 쓸모없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일상의 반경이 더욱 좁아지며 무미건조해지는 요즘이야말로 다른 어느 때보다 더욱 여행자의 눈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 무심코 흘려보내 버리기 쉬운 매일, 아쉬운 마음으로 마냥 하늘을 올려다보는 걸로 삶의 특별함이 회복되진 않으니, 이젠 여행자의 눈으로 주변을 살펴보려고 한. 파리를 탐험하며 그랬듯, 열린 눈과 마음으로 다가가 날카롭게 살아있는 감각으로 사람들을 느끼고 부딪혀내 보려고 한다.


매일 그렇게 나는 사람여행을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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