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영웅전설>, 다나카 요시키
중학생 때 나는 마법사였다. 불(fire) 계열의 스킬을 익힌 불법사였다. 물론 게임에서의 얘기지만. 당시 나는 RPG게임을 꽤 열심히 했고 파이어월이니, 메테오니 컨트롤도 잘했다. 나는 안 유명한 게임의 안 강한 길드의 안 센 마법사였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온라인 RPG 게임들은 대부분 길드 제도를 운영한다. 유저들끼리 공성전도 하고, 친목도 다지고, 필요한 아이템도 교환하고, 가끔 몸빵도 해주고, 게임 세상을 널리 더 이롭게 하라는 뭐 그런 취지. 저레벨의 잔챙이들이 모여 사냥도 하고, 경험치도 쌓는 것이 소꿉놀이 하듯 재밌어서 길드활동에 애정을 갖게 되었다. 지금은 길드 이름도 기억이 안난다. 근데 우리 길드의 마스터 이름만큼은 또렷하다. 그의 이름은 '양웬리준장'이었다. (이름 앞뒤로 별이 붙었던가 안붙었던가...)
'양웬리준장'
중학생이던 나는 이 색다른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양, 웬리준, 장 인가? 양웬, 리준, 장인가? 개중에선 양웬, 리준, 장이 제일 그럴듯한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하루는 사막에서 '양웬리준장'과 함께 늑대 사냥을 하다 물어봤다. 그 이름은 어떻게 읽는 거예요? 그랬더니 '준장'이라는 것은 계급이고 '양웬리'는 이름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자기가 존경하는 군인이라고. 군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으므로 나는 곧 사막 늑대들을 때려잡는 데 집중했다. 이 양웬리라는 사람 말이야, 길마는 양웬리가 왜 특별한가에 대해 더 설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군인이라는 단어에서 박정희 비슷한 것을 떠올렸고, 중국의 유명한 대장인갑다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은하영웅전설. 삼국지를 읽지 않은 자와는 대화할 수 있어도, <은하영웅전설>을 읽지 않은 자와는 대화할 수 없다는 우주판타지계의 정통대하사극. 어느 유명한 카피라이터가 <은하영웅전설>을 몇번이나 필사한 끝에 주옥같은 카피들을 줄줄 썼다는 이야기. (지금보니 그 카피라이터는 주옥같은 뻥쟁이임에 틀림없다. 은하영웅전설은 그 분량이 황석영 삼국지의 세배정도 되고, 그 많은 말을 필사해낼 정도로 명문은 아니다.) 남자 직장인이라면 반드시 읽어야하는 처세서이자, 여자가 읽는다면 그 매력도가 두배가 된다나 뭐라나.
괴담에 가까운 영웅담들을 접하며 나는 <은하영웅전설>이라는 책이 실로 영웅적인 작품인가보다 생각하게 됐다. 그토록 대단한 소설이라면 읽어서 손해볼 것은 없지 않은가. 그리하여 책을 빌렸다. 책의 커버는 과연 멋스러웠다. 검은 양장에 은박으로 쓰인 '여명편', '비상편' 등 권마다 붙은 소제목도 웅장했다. 그러나 고풍스러운 책 커버를 넘기자, 갑자기 성인용 캔디같은 일러스트가 튀어나왔다.
식빵을 입에 물고도 침 한방울 흘리지 않는 남주인공이라니! 금발에 빨강 헤어밴드라니! 삼국지 내지는 처세술이라며! 책 읽을 마음이 똑 떨어졌다. 아까운 마음에 몇장 뒤적거리다 그나마도 그냥 덮어버렸다. 나는 은하영웅전설의 배경 격인 은하계사 개략을 채 읽지도 못하고 <전설>을 포기했다. 책은 반납함에 들어갔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전설>에 한번 더 도전해 보았다. 이제 대리가 되었으니, 싫은 것도 참고 해봐야지 그런 생각이었다. 대리라면 처세서정도는 읽어야지, 하는 비장한 마음도 있었고.
그리고 거기 있었다, 양웬리 준장이!
아아, 양웬리 준장은 실로 은하의 영웅이었다. 그의 신묘한 전술과 책략에 홀려 나는 곧 식음을 전폐했다. 그 좋아하는 회사 급식 시간에도 어서 내 자리로 돌아가 그저 준장의 말씀을 한 줄이라도 더 읽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밤을 새 그의 일대기를 읽었으며, 퇴근을 미뤄가며 회사 책상에 앉아 준장의 무용담을 하나하나 마음 깊이 새겼다. 아아, 한 길드의 마스터라면 무릇 양웬리의 이름 정도는 빌리는 게 당연했다. 나는 십오년전의 길드마스터 양웬리준장이 그리워졌다.
<은하영웅전설>은 사반세기 전에 쓰인 우주공상과학판타지 소설이다. 문체가 빼어난 소설은 아니다. 일본 특유의 쓸데없이 비장한 표현도 많다. 예를들면 <지휘관이란 당사자는 고개를 숙일지언정 그림자만큼은 가슴을 펴고 있어야만 한다.>, <그 어떤 정론도 웅변도, 이 한마디에는 당해낼 수 없어. "그래서 어쩌라고.">, <"뭐, 어쨌든 내일 죽을 수 있는 건 오늘 살아남는 놈들뿐이지." "그 말이 정답이네요. 피차 열심히 노력해서 내일 이후에 죽을 자격을 가져보자고요."> 이런 말들. 그리고 난 이런 말을 질색팔색하는 유별난 성격을 지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왜 이렇게 재밌는 걸까? 앉은 자리에서 얼마나 많이, 빨리 읽어낼 수 있는가로 책의 가치를 평가한다면 은하영웅전설은 내게 A+++등급의 책이다. 단행본 10권 분량을 채 보름이 지나기도 전에 다 읽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이뤄낸 성과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읽고 - 말이야 쉽지 그냥 재미있는 걸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직장인이 밤을 새서 책을 읽는다는 건, 정말 완전 재미있어 미칠 지경이라는 뜻이다.
은하영웅전설의 서사구조는 굉장히 단순하다. 전통적인 2강 1약의 대결. 1약이 어느쪽으로 붙는지에 따라 균형추가 왔다갔다 하는 쫄깃한 구조. 작가 본인도 삼국지의 위,오,촉과 같은 대립구도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2강 1약의 면면을 보면 이렇다. 오랫동안 전우주의 대부분을 독재정으로 지배해온 은하제국, 그에 반대하는 민주주의자들이 힘겹게 세운 자유동맹, 제국과 동맹 사이에서 무역적인 이득을 취하는 페잔. 각 세력이 자신의 패권을 위해 싸우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그런 와중에 은하제국에는 라인하르트라는 금발머리 영웅이 태어나 썩은 제국을 바꿀 토대를 세우고, 자유동맹에는 양웬리라는 흑발의 헐렁한 젊은이가 등장해 라인하르트와 대립한다. 페잔의 뒤에는 전우주를 지배하려는 어두운 종교세력을 배치해 은하계의 역사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쉽게 읽히는 가벼운 문체, 다음 권을 기다릴 수 없도록 절묘하게 끊어내는 독자와의 밀고 당기기, 긴박한 갈등 양상, 전형적이지만 동시에 그래서 유행을 타지 않는 매력적인 등장인물들. 이 책에는 수많은 장점들이 있지만, 치명적인 단점 또한 한가지 있다. 그건 바로 영웅들의 밸런스 붕괴.
눈치챘겠지만 이 책의 은하영웅이란 두 명을 가리킨다. 라인하르트와 양웬리. 저자는 그래서 둘 중 하나의 능력이나 매력이 너무 한쪽으로 쳐지지 않도록 세심한 공을 들였다. 그런데 읽다보면 어느순간부턴 속절없이 양웬리를 응원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라인하르트는 잘 생겼고, 머리도 좋고, 눈치 볼 윗사람도 딱히 없고, 뛰어난 부하나 동료가 지천으로 깔렸다. 약한 이에겐 관대하지만 악한 이에겐 가차없는 공명정대한 성정. 그나마 가끔 신경질이라도 부려서 아, 그래 얘도 인간이지, 기억하게 해준다. 라인하르트는 그야말로 영웅이다.
하지만 원래 위태로운 것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별난 습성 아니던가. 백치미녀가 흥미를 끌고 나쁜 놈들이 사랑받는 것이 그런 이유 아니었나. 양웬리는 바로 그런 매력이 있다. '홍차'가 아닌 '커피'를 마시는 동료들에 대한 분노를, 적장에 대한 분노보다 중하게 여기고, 훈장수여식보다 집에서 편히 낮잠 자는 것을 훨씬 명예롭게 여긴다. 한 눈에 보면 학생일까 아저씨일까 분간이 안 되고, 어떤 옷을 입어도 엉성한 것이 영웅답지도 않다. 그의 부인조차 말한다. 양웬리는 그나마 군복을 입을 때 봐줄만 하다고. 양웬리 본인도 빈틈이 많지만, 그가 처한 상황이 그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 <은하영웅전설> 중
자유동맹은 본디 은하제국의 압제를 피해 자유와 민주를 갈망하며 만들어진 국가였다. 그러나 제주 삼다수 아니 알프스의 청정 계곡물을 부어놓은들, 물은 고이면 썩는 법. 동맹은 삼백여년의 시간을 견디는 동안, 민주주의의 껍데기만 가까스로 유지한 시궁창이 되어버렸다. 자유동맹의 정치인들은 투표를 의식하여 민중들에게 인기를 끌만한 정책을 수립하고, 또한 민중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킬 여러가지 군사적 이벤트들을 동원하지만 단 한번도 민중들의 생활을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들에겐 경제력도, 군사력도, 하다못해 통찰력이나 카리스마도 없다. 양웬리가 전투에서 이기면 순간적으로 올라갈 민중들의 애국심은 반가워하지만, 양웬리가 그대로 대군을 이끌고 돌아와 쿠데타를 일으키진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나라의 유일한 자원인 양웬리를 쓸데없는 일로 감찰하고 그러다 패망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이런 시궁창이 양웬리의 고향이다. 그리고 군사적 열세와 정부의 무능을 등에 엎고도 항상 이긴다. 양웬리의 전술이 가장 빛나는 전투가 언제냐는 물음에 동맹 시민들은 주저없이, 다음번 전투라고 장담한다.
- <은하영웅전설> 중
양웬리는 동맹 시민들이 똥밭에서 발견한 1억짜리 보증수표다. 그는 용장도 맹장도 지장도 덕장도 아니다. 다만 전국민의 종교다. '어떻게든 됐으면 좋겠지만 어떻게도 될 것 같지 않은' 양웬리의 현실은 우리들의 처지와 별로 다르지 않다. 경쟁자들은 언제나 유능하며 내 위의 결정자들은 항상 무능하다. 내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없는 것보단 나은 정도이며, 경쟁자들은 언제나 최선의 경로로 나를 공격해온다. 적수들은 플랜비마저 완벽하지만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양웬리는 그런 우리의 모습을 가장했다. 그리고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탈출구를 마련해내고, 보기 좋게 상대의 허를 찔러 우위를 점한다.
내가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척척 해내는 사람을 보면 인간은 두가지 감정을 갖게 된다. 어마어마한 질투를 느끼거나, 그를 동경하고 더더더 응원하게 되거나. 그런 본보기가 바로 내 근처에 있어 비교를 당한다면 칼날같은 분노와 위경련성 질투가 일겠지만 양웬리는 다행히 책 속에 있다. 저 먼 우주에,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차원에. 그래서 우리는 그에게 쉽게 이입한다. 그리고 그의 승리를 자유동맹의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기도하게 된다. 양웬리는 말한다.
- <은하영웅전설> 중
바로 이런 점이 이 책을 먼저 읽은 선배들로 하여금, 처세서로도 손색이 없다는 평을 내리게 했을 것이다. 양웬리의 통찰은 언제나 무릎을 탁 칠만큼 심플하고, 저 먼 고대의 말처럼 복잡하지도 않다. 툭툭 뱉는 말들엔 역사를 관통하는 힘이 있고, 자신의 일을 무지무지 싫어하면서도 엄청 잘해내는 이 사람. 어찌 응원하지 않겠는가.
본업에 심드렁하지만 사실은 엄청난 능력자인 자신을 누구나 꿈꾼 적이 있지 않는가! 팀장에게 엄청 잘 쓴 제안서 한 장을 무심한 듯 툭 던지는 자신을 한번쯤 꿈꿔보지 않던가! 양웬리는 이걸 해내는 것이다.
나라면 절대 손에 넣지 못할 승리를 척척 얻어내는 양웬리를, 나는 열과 성을 다해 지지하게 됐다. 그리고 죽어마땅한 꼰대들에게 제발 한방 먹이고 그 윗사람 자리라는 것을 탈환하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다. 자유가 다 뭐야, 동맹이 다 뭐야, 민주주의? 족구하라 그래!!! 그따위거 얼른 배신하고 니가 왕 하라고!!!!!!!!!!!
- <은하영웅전설> 중
그리고 나는 작가의 치밀함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그는 이것을 의도했던 것인가. 양웬리의 주변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무능한 정부 갈아치우고, 당신이 새로 정부를 수립하십쇼. 아니면 라인하르트에게 들어가 당신의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과 함께 일하십쇼. 대체 민주주의가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당신이 죽을 판인데. 그 순간, 내가 금쪽처럼 믿어온 민주주의에 금가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지금 민주주의가 아니라 양웬리를 밀고 있구나. 어디가서 토론할 땐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야 합니다, 이승복 어린이처럼 띠두르고 외쳐왔던 내가. 투표 때마다 사람들이 단 한사람의 영웅만을 기다린다고 술자리에서 목청을 높였던 내가.
'바른 생활 길잡이'부터 '윤리와 사상'에 이르기까지 나는 민주주의를 무결점의 정치체제로 배웠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지켜야 할 숭고한 가치. 자정작용이 가능한 세상에서 가장 정의로운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히틀러는 바로 그 민주적인 투표를 통해 뽑혔지. 아, 맞다.
- <은하영웅전설> 중
사실, 중우정치에 대한 염려는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저 먼 고대 로마시절부터 있어왔다. 근데 그건 5지 선다 시험지에나 등장하는 것이었지, 내가 실제로 고민하기엔 알데바란 성운처럼 멀고 먼 이야기였다. 다만 똑같은 내용을 은하력을 쓰는 우주의 이야기로 바꿨더니 너무나 신선하게 귀에 팍팍 꽂히는 거다. 아무렴 소크라테스나 플라톤보다는 양웬리나 라인하르트가 친숙한 법이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려면 민주주의를 택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한명의 우월한 인간이 통치하는 것이 좋을까. 이것은 양웬리의 생존문제이기도 해서 나도 덩달아 고민이 깊어졌다.
- <은하영웅전설> 중
끝끝내 양웬리의 선택이 뭐였을지는 모두가 읽어본 후 알아보시라. 참고로 나는 그 선택이 맘에 들지 않아 읽던 책을 집어던지기까지 했다.
실제로 민주정치 대 전제정치를 결정해야 하는 날이 온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그나마 내게 힘이 된 것은 사회물리학의 연구 결과들이다. 지적 수준이 모두 다른 사람들이 골고루 섞여 외부의 간섭없이 100퍼센트 순수하게 민주적으로 선택한 의견은 상위 5%의 지적수준을 갖춘 이들의 선택과 일치했다고. 그러니까 집단 지성이라는 건 실제로 존재한다. 민주주의는 여기에 희망을 거는 거겠지. 그런데 이것은 대중이 접할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없을 때 이야기라는 게 치명적이다. 정보의 접근성이 100에 가깝고, 정보가 완전히 투명할 때만 얻을 수 있는 이상적인 결론. 저자가 소개하는 일본의 과거를 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유의지로 선택한다고 믿는 것들이 실은 얼마나 짜여진 답일지를 추측해볼 수 있다.
다나카: 예를 들자면 2차대전 당시, 일본 국민들은 전함 야마토라는 게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완전한 군사기밀로 정보가 통제돼서, 군부에서도 극히 일부 내지는 그 주변 사람들 말고는 일본에서 제일 큰 전함이 나가토랑 무츠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당연히 야마토가 침몰한 줄도 몰랐죠.
> 없는게 침몰할 수는 없으니까요.
다나카: 그런거죠. 다만 규슈와 가고시마 서해안에살던 사람들이, 아주 맑고 더운 여름날 바다 저 멀리에서 엄청난 낙뢰 같은 소리가 들려서 뭘까 생각한 일이 있어요. 사실은 그게 야마토가 침몰하는 소리였는데, 그건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밝혀졌다고 하죠.
> 소용돌이에 휘말린 본인은 그 소용돌이가 얼마나 큰지를 모르는 거군요.
다나카: 딱히 보도가 통제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모르는 경우가 있죠.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은 빙글빙글 돌고 있어요. 상대도 소용돌이 반대쪽에서 빙글빙글 돌고. 밖에서 보면 서로 돌고 있지만 본인끼리 보자면 자기는 멈춘 채 주위 세계가 도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이래서 역사를 재검증하는게 재미있어요
- <은하영웅전설> 저자 인터뷰 중
나는 아직 뭐가 더 우월한 정치체제인지 잘 모르겠다. 내 생존을 걸고 저런 선택을 강요받는 날이 오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의 친구들과 같이 이야기해보면 재밌겠단 생각이 들었다. 책이 내내 묻는 것처럼. 뛰어난 현인의 통치 아래 질서정연한 전제주의와 스스로 부패하기를 선택하는 난잡한 민주주의. 과연 어떤 것이 더 정의에 가까울까. 어떤 게 더 추하고 어떤 게 더 아름다울까. 이건 어쩌면 취향의 문제일까.
- <은하영웅전설> 중
우주공상과학소설이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 <은하영웅전설> 중
우주공상과학소설이 이런 응원을 할 수 있다.
우주공상과학 소설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이렇게 다양하다.
원반모양 우주선이 날아다니며 전투만 하는 전쟁놀이에 그치지 않는다.
일본에는 양웬리의 기일에 맞춰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런 제사가 있다면 술 한잔 올리고 싶은 사람으로서 이 자리에 양웬리의 빛나는 어록과 활약을 모두 옮기지 못한 점을 슬퍼하며 글을 마친다.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1. 시간은 많고 스마트폰은 질리고 할 일은 없는 사람
2. 밸런스붕괴 사기캐의 활약을 보고 싶은 사람
3. 일본 풍의 비장한 판타지 소설을 읽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