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 샌들은 아무 소용이 없는데...
그 한 겨울에...
1. 동생을 추억하며......
-두쿵두쿵두쿵두쿵
내가 어릴 적 우리 집은 기찻길 옆에 있었다. 기차가 한번 지나가면 정말 옆에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그런 옛날 집.
시골이냐고?
아니, 아니었다.
거기는 경기도 권내에 있는 뭐뭐 1동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찾으려야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그런 곳...
그 집 천장에는 쥐들이 살아서 밤에는 쥐들이 엄청 뛰어다녔다. 지금 천장은 다른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가 많지만 그때 그 집 천장은 지붕이었다.
-다다다닥 다다다닥 두 다다다닥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비누가 항상 할퀴어져 있었다.
"엄마 이거 왜 그래?"
"응 밤새 쥐가 갉아먹어서 그래."
지금 생각해 보면 갉아먹은 것보다는 발로 할퀴어놓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여하튼 그랬다.
화장실은 공동화장실이어서 우리 집에 달려있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난 항상 화장실 가는 길이 무서웠다.
게다가 재래식 화장실이라 바닥에 오물이 다 보이는 곳... 거기에 빠질 거라는 상상이라도 드는 날에는 몸서리가 쳐져서 곧잘 엄마를 부르곤 했다. 화장실에 응가를 쌌으니 나오지는 못하고 말이다.
거기에는 대략 5집에서 6집 정도 살았던 것 같다. 삼촌이라고 불렀던 아저씨와 동주 엄마, 상근이 엄마, 홀로 사시는 할머니 등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여러 세대가 살고 있었고, 공동주택 생활을 했다.
반찬도 나눠주고, 나눠먹고, 내가 낮잠을 자면, 엄마는 동네 아줌마랑 이야기 꽃을 피웠다.
내 동생은 남자아이인데 항상 나의 새 빨간 샌들을 좋아했다. 아니 정확히는 빨갛다기보다, 검은색과 주황색이 대각선으로 되어 있고 바닥은 흰색으로 되어있는 샌들이었다. 생각해 보니 빨간색은 하나도 안 들어있는데 왜 그렇게 기억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겨울에 그 신발을 신겠다고 서로 싸우다가 결국 동생이 그 신발을 신고 나가서 동주 오빠와 상근이 오빠랑 같이 사진을 찍은 게 기억이 난다. 그것도 눈이 하얗게 소복이 내린 그다음 날 내복만 입고 말이다. 사진을 보면 신발을 뺏긴 나는 뿌루퉁하게 볼이 부어있다.
오빠들은 나보다 나이가 한두 살 많았지만 한 오빠는 맨날 코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래서 아줌마가
"너는 선주보다도 나이가 많은데 맨날 콧물 질질 흘리고 다니면 어떡해?"
아줌마들은 그 소리에 맞장구 쳐주면서 동주 오빠를 다 같이 놀리곤 했다.
'너 커서도 코찔찔이 되면 어쩔래.'
그러면 갑자기 나에게 돌아서서는 내 턱으로 손바닥을 내밀며 아까 자기가 주었던 것을 사탕을 다시 내놓으라고 했다. 꿀꺽 삼킨 걸 어떻게 주겠냐마는... 지금 생각해도 참 치사했던 오빠였다.
주로 나랑 남동생이 싸우는 것보다는 오빠들이랑 싸웠던 게 훨씬 많았다. 바깥에 적이 많으니 동생과 싸울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내 동생은 나보다 한 살 어리기 때문에 더 많이 지켜주고 싶어서 항상 내 동생이 시비가 걸리면 내가 나서서 같이 싸우곤 했다. 덩치로나 나이로나 이길 수 없었기에 뭐... 둘 다 얻어맞고 울면서 집에 들어갔지만...
여름엔 성별 가릴 것 없이 그 주택에 사는 어린아이들은 전부 빨가벗고서는 '붉은색 다라'라고 부르는 고무다라에 들어가 강제 목욕을 했다. 여러 엄마들이 달려들어 자기 자식 목욕시키는데 그것도 즐거웠던 거 같다. 엄마들도 같이 하니 육아도 조금 더 쉬웠으리라...
목욕 싫어하는 오빠는 싫다고 난리... 그러면 그 어머니는 등짝 스매싱을 어김없이 날리며 그 오빠들 때를 뻑뻑 벗기셨던 게 기억난다. 나는 그것만 봐도 너무 웃겼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어릴 적 추억 중 하나인 뭐뭐 1동의 추억은 그렇게 행복하다.
아직도 가을바람이 솔솔 불고 겨울 냄새가 나면 동생은 샌들을 신고 눈이 소복이 쌓인 곳을 아장아장 걸어 나가고, 난 화가 나서 막 따라갔던 게 생각이 난다.
어릴 땐 왜 그랬나 모르겠다.
그냥 그저 잘해줄 것을... 이제 그 샌들은 아무 소용이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