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씩 없어지는 사람들

화장실이 집 안에 있대

by 무지카

나는 한 50여 년 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어릴 때, 80년대를 말하고 있다. 놀라실 분도 있겠지만 나는 8살에 처음으로 집에 화장실이 같이 딸린 집에 살았다.


그때는 화장실이 집 안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랍고 좋았던지...


화장실이 딸린 연립주택으로 가기 전, 즉 xx 1동에 살던 나는 xx 5동의 단칸방으로 이사를 갔다. 거기도 위층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나랑 내 동생이 너무 뛰어다녀서 주인아줌마가 우리 엄마한테 엄청 뭐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가스레인지라는 것을 우리 엄마가 사는 걸 보았다.


번쩍번쩍 광택이 나는데 얼마나 이쁜지...


그전까지 우리 엄마가 어떻게 음식을 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5동으로 이사 와서 그 가스레인지는 확연히 기억이 난다. 반짝거리는 은색 스테인리스가 너무 예뻐서였으리라...


거기는 공동 수도관도 있어서 물을 퍼 올리는데 쓰는 펌프질 하는 기계가 있었다. 수도펌프... 아빠는 나에게 그 수도펌프를 쓰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손잡이를 힘껏 내렸다 올렸다 하면 조금 있으면 물이 쏴아아 하고 나온다.

거기서 혼자 처음으로 샴푸를 하다가 샴푸를 너무 많이 짜서 헹구는데 아주 혼이 났던 기억이 있다. 아무리 아무리 헹궈도 비눗물은 계속 나오고, 결국 내 울음소리에 엄마가 나와서 왜 이렇게 샴푸를 많이 짰냐며 엄청 혼을 내며 헹궈주셨지.


거기는 1 동보다 훨씬 더 큰 공동주택이었다. 아주 넓은 공간 중간에 수도펌프가 있고 대문에서 들어오자마자 왼쪽에 공동화장실이 있고 그리고 동그랗게 집이 늘어서 있었다.


우리 집 맞은편에는 나이가 아주 많은 할머니가 계셨는데 홀로 항상 밥을 차려먹고 했었다. 어느 날은 물 말아 김치에 밥을 드시고 계시기에 할머니께


"할머니는 반찬이 왜 이렇게 없어요?"

그러니까 할머니는 혼자 사니까 반찬이 그렇게 필요 없다고 하셨다. 그러다가 개미가 기어 다니는데 할머니 밥상에 오르는 것을 보고 나는 다급히,

"할머니 할머니 개미 개미!"

이렇게 소리를 질렀는데 놀랍게도 할머니는 그 개미를 검지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입에다가 쏙 집어넣었다.


"할머니? 개미를 먹었어요?"


내가 놀라며 묻자 할머니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개미가 몸에 좋대."

"그래요?"

그렇게 대답한 나는 할머니와 같이 개미를 잡아먹었다.

개미는 약간 시큼한 맛이 났다.

으 맛없어.

난 한두 마리 먹고는

"안 먹을래요."

하고는 할머니 집을 나왔다.


우리 옆집에는 시집을 안 간 젊은 언니가 있었는데 항상 뜨개질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코 바느질을 하고 있던 거였는데 어찌나 금방 뜨던지 차 받침대 같은 거는 금방 만들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지. 화장실도 집 안에 없고, 찻그릇은 있어도 놓을 상도 제대로 없는데 차 받침대라니...


신기해하는 내게 언니는 동그랗게 수놓은 듯 펴주는 코바늘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건 아주 쉬워서 몇 번 만에 금방 해냈고 언니는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나중에 내가 코바늘을 배워서 그때 뭘 배웠나 떠올려 봤는데 영 생각이 안 난다. 뭔지도 모르겠고... 그때는 바늘 몇 번 돌려 쏙 빼내니 그런 모양이 되던데 지금은 어떤 건지 영...


지금에 와서 그때를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혼재되어 있고 공존해 있던 혼란스러운 시기였던 것 같다. 옛날과 현재의 부조화...


여하튼 그렇게 남의 집 사정,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그렇게 훤히 알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떠나는 날들이 왔다. 이사라는 거였는데, 그때마다 내 마음은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었다.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한집 한집 떠날 때마다 속상함에 눈물이 났다. 시기와 질투 같은 것이 아니다. 그저 정든 사람이 떠나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새로 이사 온 애가 미워 내 동생이랑 함께 그 친구와 싸우기도 했다. 뭐, 나중엔 화해하고 잘 지냈지만...


어쨌든 이사 가는 사람들을 보고 그렇게 울면 엄마가 '다들 부자 되어서 큰집으로 이사 가는 거니까 이사 가는 건 좋은 거야.'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는 '우리도 곧 이사 가자.'

이사가 좋아졌던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이사...

이제는 그 말이 난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얼른 이사 갔으면 좋겠다.

부자 되어서 큰 집으로 이사 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남이 이사 가는 날이면 나는 그날 밤에 이불을 푹 덮고 슬픔 대신 이사 가는 상상을 하며 잔뜩 기대를 부풀렸다.


그리고 진짜 우리가 이사 가던 날...

2톤 트럭에 짐을 잔뜩 싣고, 나는 그 짐 뒤에 내 동생과 같이 타서는 뒤따라오는 유치원 친구들을 보며 막 웃었다.


"야 박선주 너 유치원 안 가고 어디가?"


"아하하하하! 나 이사가~ 큰집으로 이사 간다."

"너 다른 유치원 가는 거야?"


애들은 따라오면서도 그게 궁금했는지 힘차게 달리며 물었다.


"아니~ 내일 봐!"

그것을 끝으로 아이들은 차를 더 따라오지 못했다. 차가 훨씬 빨랐으니까!!


내 동생과 나는 실컷 웃으며 이야기했다.

'지금 이사 가는 집은 화장실도 집 안에 있고 방도 두 칸 이래.'


동생은 진짜냐며 신나 했다.

그곳에선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때의 나는 하루하루가 그렇게 놀랍고 신나고 재밌는 일의 연속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재미났을까...


동생의 웃음도 나의 신남도 선명히 기억나는 여름의 어느 날 해맑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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