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는자와 맞는자 그리고 보는자...

너의 아픔

by 무지카

21.12.01


아이는 아직 어렸다.
한창 사랑받아야 할 시기에...
그는 매를 맞고 자랐다.
무섭고 아팠다. 왜 맞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맞았다.
세상은 그에게 무서움이었다.

아이는 어린이가 되었다. 때리는 자가 곁에 있을 땐 온몸의 촉각이 곤두서서 그 기분을 맞추는데만 급급했다. 자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보통 어린이들이 많이 하는 그 흔한 떼도 써보지 못했다. 눈치껏 행동했지만 그 어린이는 잘해도, 못해도 맞기만 했다. 그저 미운털이 박힌 아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때리는 자가 없으면 무기력해지곤 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그냥 누워있을 때가 많았다.

어린이는 소년이 되었다. 그는 학교가 끝나면 오락실에서 살았다. 아무 생각 없이 오락하는 게 좋았다. 그때만큼은 살아야 하는 의미가 있었다. 재미라는 것도 느꼈다. 그러나 돈이 떨어지고나면 돌아가야 할 곳은 언제나 집이었다. 가고 싶진 않았지만 집 외에 소년이 갈 곳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날은 밤늦도록 맞는 소리가 들려왔다.

청소년이 되었을 땐 불량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기 시작했고, 담배를 피웠으며, 가출을 했다. 하지만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그때마다 맞아야만 했다.
그에게는 아직도 때리는 자를 이길 힘이 없었다.
그리고 때리는 자를 이길 힘이 생겼을 땐...

그는 집을 나갔다.

집을 나가 사는 삶은 어땠을까?
행복했을까?
잘 살았을까?
평온한 가정을 이뤘을까?

우리는 문제 상황이 없어지면 행복해질 것이란 잘못된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문제 상황을 회피했을 때에도 그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집을 나가기 전... 아직은 때리는 자를 이길 힘이 없을 그 무렵...
그는 때리는 자의 눈치 때문에 억지로 가고 싶지 않은 회사에 다니고 돈을 벌었지만 그의 수중에 남아나는 돈은 없었다.
그의 안에 똬리를 튼 무기력과 공허함은 소비하는데 열중하게 했지만 행복은 마치 손 사이로 쏟아지는 모래와 같았다.
그러다 때리는 자의 힘이 자기에게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았을 때 그렇게 바라마지않았던 독립을 이루었지만 그의 마음은 그다지 변한 게 없었다.

때리는 자가 죽으면 행복해질까?
그때만 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때리는 자가 있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고...

하지만 때리는 자는 어느 날 갑자기, 너무나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천년만년 살 것 같이 철옹성이던 때리는 자는, 어느 날 힘이없는 늙은이가 되더니 그렇게 모든 관계의 응어리를 풀지도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때리는 자가 죽었으니 이제 행복 시작이다. 이야호 했을까?
니... 그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혈육이라 슬펐다. 그 이후로도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동안 억지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독립을 멈추고 엄마 집으로 들어앉았다.
자신에게 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푹 쉬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쉬면 쉴수록 그에게 참된 쉼은 마치 숨바꼭질하듯 도망갔다.
더 이상 삶의 의미가 없었다.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어떤 일도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 취업도 힘들어졌다.

대답이 돌아올 리 없는 허공에 몇 번이나 되물었다.
도대체 삶이 무엇인가?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
왜,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

결국 인간은 먹고살기 위해서만 사는 게 아님을 그는 알게 되었다. 본능적인 위험이 없어졌을 때... 그는 더 이상 사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나마도 사랑했던 여자는 떠나고 나이만 먹어가고 있었다.
집도 없고 직업도 없고 여자도 없다.

남아있는 것은 캄캄한 어둠 뿐이다.

그의 나이 39살이었다.





아이는 아직 어렸다.
어렸을 때부터 동생이 맞는 것을 보고 자랐다.
때리는 자가 너무 무서워 비위를 맞췄다.
하지만 미련스러운 동생은 비위를 맞출 줄 몰라 항상 맞아야만 했다.
그런 동생을 보며

"울지 마. 그럼 때리는 자가 널 더 때릴 거야."
하지만 그걸 알아듣기에 동생은 너무 어렸다.

시간이 흘러 아이는 어린이가 되었다.
아이는 이제 비위를 너무나 잘 맞추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때리는 자의 비위를 맞추면 자신은 간신히 폭력으로부터 분리되었다.
하지만 동생이 밤새도록 맞을 땐, 그 비위를 맞추는 행위는 한계에 다다랐다. 그 어떤 것도 때리는 자의 화를 가라앉힐 순 없었다.
말리는 엄마도 때리는 자의 폭력을 피해 갈 순 없었다.
그렇게 밤새기를 여러 번.
아이가 청소년이 되었을 때, 그녀는 집에 무슨 일이 있든 아무렇지 않은 척 사회생활을 해 나가는 기술을 터득했다.
그 아이를 보며 때리는 자가 집에 있을 거라고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청소년이 된 그녀는 청년이 되었다.
집을 나간 동생 때문에 그녀는 때리는 자의 말을 매일같이 몇 시간씩 들어야 했다.
그 때문에 계획은 항상 틀어졌고, 때리는 자의 아주 어릴 때의 이야기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책으로도 낼 수 있을 만큼 달달달 외울 수 있었다.
분노가 가슴 깊이 차 올라 이윽고 목구멍을 간당간당하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때리는 자가 사라져 버렸다.
향할 길 없던 분노는 갈 곳을 잃어 방황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때리는 자가 없어지면 다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그녀는 때리는 자와 똑같은 행동을 자신의 자녀들에게 하고 있는 걸 깨닫고는 좌절했다.
이제는 그녀를 괴롭히는 자가 아무도 없는데도 그녀는 괴로움을 벗을 수 없었다. 아이들을 대할 때마다 때리는 자를 이해하게 되었다. 결국 그녀는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우울증 약도 먹고 분노도 조절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녀는 지금도 계속해서 방황하고 죽음을 자주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자신이 죽으면 슬퍼할 엄마와 아이들때문에 죽기를 주저했다.


그렇게 그녀 인생이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놓여있을 때 그녀는 동생의 자살 소식을 접했고 그녀는 오열했다. 동생은 평소에 티를 내지 않았기에 더욱더 아팠고, 슬펐고, 힘들었다.


그녀의 상태를 보고 의사선생님은 대학병원 입원을 권했고 그녀는 입원을 하고 조울증 진단을 받았다.


그녀의 나이 40살의 일이었다.



23.06.27


퇴원을 했었을 때 약부작용으로 인해 말도 어눌하고 근손실이 와서 운동 능력도 한달만에 급격히 감소했다. 살에 강박증이 있던 그녀에게 15kg의 몸무게 증가는 큰 스트레스였다. 기억장애도 있어 어제 일인지 그제일인지, 아예 있었던 일인지 아닌지조차 헷갈릴 때도 많았다. 검사결과 치매는 다행히 아니었지만...


지금은 말도 어눌하지 않고 운동능력도 돌아왔으며 입맛 당기는 약들은 다 조절하고 살도 많이 뺐지만, 그래도 아직 강박증은 있으며 공황도 있어서 현관문을 열기 전 매번 심호흡을 하고 열게 된다.


참으로 고단하고 힘든 삶이다.


자살사고는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무기력하고 여전히 우울하며 여전히 슬프다.


모두 때리는자의 탓은 아니겠지만 (나는 때리는 자를 원망하지 않는다...그 분도 그 분 나름의 아픔이 있음을 알기에)


때리는 자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울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도 안 그러고 싶은데, 배운게 이런거 밖에 없어서 안되는걸 어떻게 하니?"


정말 많이 슬펐다. 누군가가 아버지를 많이 사랑해줬다면... 하물며 할머니, 할아버지께 사랑이라도 많이 받았다면 아버지의 인생이, 그리고 동생과 나의 삶이, 전부는 아니라도 조금은 달라질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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