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하나 없는 장미축제에서
프러포즈는 다시 해.
너의 프러포즈는 엄청 서툴렀어.
분명 장미축제라고 들어서 데리고 왔나 본데, 장미 하나 안 핀 사막 같은 곳이 눈앞에 펼쳐져 있어 네가 당황한 모습이 보였지.
나는 웃어버렸어.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더듬고 뜸을 들이며 이렇게 말했어.
"우리... 그러니까... 음... 내가... 너랑... 그러니까... 나랑 평생 행복하지 않을래?"
너는 함께 하자가 아니라 행복하자고 말했어. 참 신기한 프러포즈였지. 그게 가당키나 한가?
하도 웃겨서 난 웃으며 이렇게 말했지.
"꽃도 하나 없이? 다시 해."
그게 우리 두 번째 만남에서였어.
넌 첫 번째 만남에서 운명을 느꼈다고... 첫눈에 반하는 것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걸 나한테서 처음 느꼈다고 그렇게 말했던 걸 기억해.
그런데 말이야. 어디서 그렇게 운명을 느꼈을까?
처음 만난 날.
나는 네가 여자친구가 있다고 들어서 나는 아주 편하게 하고 나갔어. 너 말고 다른 친구도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지.
과민성 대장증후군도 있었던 나는 스스럼없이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면서 친구에게 놀림을 받으며 같이 놀았던 것 같아.
게다가 난 2년 전부터 이미 널 알고 있었어. 너의 부모님이 무섭다는 말을 들어서 특히 기억에 남았거든... 너에게 잘 보일 이유가 하나도 없었어.
그래서 너랑 결혼할 여자가 불쌍하다는 말까지 스스럼없이 해대는 그런 사람이었단 말이야.
하지만 넌 날 그 자리에서 처음 봤었지.
그런데 도대체 넌 나의 무엇에 반했다는 걸까.
과민성대장증후군에?
너랑 결혼할 여자가 불쌍하다는 스스럼없는 입담에?
여하튼 알 수는 없지만 너는 전 여자 친구와는 헤어졌다는 말과 함께 나의 전화번호를 묻더라. 그리고 연락해도 되냐고 물었지.
그리고 매일 연락을 했어.
첫 번째 프러포즈 이후 다시 하라고는 했지만,
열심히 연락하는 네게 비혼주의자였던 나는 너를 열심히 설득하기 시작했어.
난 성격이 매우 좋지 않고 아이를 잘 키울 자신도 없고 가정환경도 따뜻하지 못했던 나는 비혼주의자야... 다시 생각해 봐.
나는 결혼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야. 가정환경도 빠지지 않는 너라면 훨씬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 첫 번째 프러포즈는 없던 일로 할게. 막말로 프러포즈 답지도 않았잖아? 라며 웃었지.
하지만 넌 듣지 않았고, 비혼주의자였음에도 너에게 끌리는 나의 마음도 무시하지 못했지. 그저 두근거려 죽을 것만 같았어.
넌 결국 카랑코에를 사서 두 번째 프러포즈를 다시 하게 되었고, 난 결국 허락하고 말았어. 비혼주의자라고 스스로 결심했지만, 모래성 같았던 그런 비혼주의자였던거야. 이렇게 쉽게 무너질 거였으면서...
사귀는 동안 장미가 갖고 싶다는 말에 넌 장미꽃과 함께 '남편의 기도로 아내를 돕는다'란 책을 주며 잘해 주겠다면서 세 번째 프러포즈를 했고... 결국 사귄 지 2달 만에 우리는 결혼을 하게 됐지.
두 달 만에 3번이나 프러포즈를 받은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그렇지? 하핫...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농담, '너의 그 불쌍한 여자'가 내가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
어느 날은 네가 없는 시간 쪼개가며 급하게 나를 만나러 오느라 회사슬리퍼를 신고 나온 적도 있었지.
회사사람들은 그걸 보면서 여자친구분 감동했겠다 했지만 현실과 소설은 다른 거 알지?
나는 화를 냈어.
"넌 왜 이렇게 부주의 하니?" 그렇게.
남편이 되려면 듬직해야 하잖아? 그런데 이렇게 부주의해서야 어떻게 믿고 살겠어.
그래 그땐 그렇게 혼나면서도 넌 웃었다.
바보 같은 자식. 뭐가 그리 좋다고 그렇게 헤실헤실 웃고 다녔는지.
너의 손에는 결혼 한 이후부터 13년간 한 번도 빼지 않은 결혼반지가 끼워져 있어. 그걸 볼 때마다 뭐랄까... 마음이 속상하달까...
내 가정형편을 안 네가 결혼할 때 만지작 거리던 결혼반지를 내려놓고 제일 싼 반지를 선택했던 걸 난 알거든.
그 반지를 아직도 소중히 끼고 다니고 있는 널 보면 마음이 아직도 짠해.
나한테는 한여름에 결혼하는 나에게 배자가 예쁘다고 털배자까지 맞춰줬던 너였는데...
그거 입지도 못하는 걸... 언제 한복을 입어본다고...
아이 욕심이 많아 너는 아이들 많이 낳고 싶어 했어. 너를 닮은 아이를 낳으면 좋겠다고 나도 생각했지만, 육아가 쉬운 게 아니더라. 특히 멘털이 유리멘털인 나에게는...
둘 낳고 너무 힘들어 그만 낳자고 할 때, 그날 셋째가 들어선 걸 알았어.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난 좌절했는데 넌 웃더라. 그렇게 아이 많은 게 좋았는지... 서로 도우면서 키우면 된다고 웃는 네가 미워서 나는 너를 꼬집었지.
근데 둘째가 ADHD라 판명되었을 때도 넌 괜찮다고 했어. 잘 키우면 된다고.
넌 참... 무슨 일이 있어도 태평하고 안정적인 사람이었어.
그냥 거대한 소나무 같은 사람이어서 듬직한 사람이었지 뭐야. 비록 회사 슬리퍼는 지금도 신고 올 때가 종종 있지만 말이야.
그래서 너는 내게 더더욱 미안하고 안타까운 사람이야.
비록 결혼하고 무서운 시어머니가 나한테 많은 말로 상처를 주었을 때, 부모님에게까지 착한 아들인 너는 나의 방패막이가 되어주진 못했지만...
사실, 동생의 일로 기억이 날아가서 이제는 '상처로 남았다'만 기억나고, 폭언은 잘 기억나지도 않아. 아니, 떠 올리고 싶지 않은 것뿐인 거 같아. 동생 죽기 전에 했던 마지막 말만 그렇게 기억난다.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애 셋이나 낳아서 내 아들 그렇게 사는 거 보면 속상해 죽겠어..."라는 그 말만... 가슴에 콕...
너와 결혼하는 게 정말 맞았던 걸까?
나와 결혼하지 않고 더 안정적인 사람과 결혼했다면 너는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