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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카 Jul 08. 2023

화나니까 존댓말

우리는 동갑...

처음에는 반말을 썼지만 결혼 후에는 서로 상의 하에 존댓말을 쓰기로 했다.


서로 화내거나 싸움이 격해지면 감당이 안될까 봐.


그러나 살아보니 나한테만 해당되는 이야기.


신랑하고 결혼한 지 14여 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가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문제는 항상 나한테... 그래서 존댓말을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싸움의 원인이 늘 나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항상 느긋한 남편이 속 터져 결국 화를 내는 건 내가 되고, 더 화를 내기 싫어 혼자 있고 싶다고 하고 나가면 그걸 못 보고 꼭 따라 나와 화를 풀어야 한단다. (이런 건 원래 반대 아닌가? 남자들은 동굴에 숨고 싶어 하고 여자들은 그 자리에서 해결하고 싶어 한다며!)


"제발... 나 이런 거 못 견뎌요. 당신이 그러고 있으면 나 아무것도 손에 안 잡혀. 화 풀고 나가든지 해요. 응?"


하지만 내 마음이 이런다고 당장 풀리는 게 아닌데? 난 혼자만의 시간이 있어야 풀리는데? 안 풀리는 마음을 당신 얼굴 보고 풀고 있으라고? 얼굴만 봐도 화딱지가 나 죽겠는데?


그것 때문에 난 더 화가 나고, 결국 티격태격하다 밖으로 나가는 나를 신랑이 다급하게 잡으려 팬티바람으로 따라 나와 버린 적도 있다. (이제와 생각한 거지만... 미안해요...)


그래도 그땐 애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


지금은 그러지도 못한다. 할 수도 없지만...




참... 밀고 당기기를 못하는 서툰 남자.  못난 나 만나서 별꼴 다 보고 사는 사람이라... 참... 미안해.


결혼 후 2달 뒤, 우리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을 때도 묵묵히 내 옆을 지켜주고, 


내 동생 죽었을 때도 말없이 옆에 있어주고,


내가 조울증이라고 판명 났을 때도 그저 괜찮다고 해주고...


내가 우리 아이들한테 분노 조절 못해서 울 때, 너무 괴로워서 헤어지자고 할 때, 나 대신 아이들에게 더 좋은 엄마 구해달라고 울 때도 그저,


"원래 결혼하면 다 그러고 사는 거니까... 내가 누굴 만났어도 별로 다를 거 없었을 거고, 사는 게 다 그렇지. 당신이 유별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난 당신 없이 못 살아."라고 말해줘서 고맙고, 미안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지? 만약 내가 당신 상황이라면 정말 이혼할 텐데... 난 이런 거 못 견뎌서... 사실 지금도 너무 힘들어서... 그래서...


그런데 마지막 말에 난 빵 터졌어.


"누가 애 셋 딸린 남자한테 시집오겠어.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마요."


그러게. 난 책임감도 지지리 없는 엄마이자 아내였네. 


누가 애 셋을 책임져 주겠어. 그래서 선녀와 나무꾼에서도 애 셋을 낳으라고 그렇게 말했나 봐. 셋을 낳았다면 날개옷을 입어도 하늘에 못 올라갔을 거 아냐. 양쪽 끼고도 한 명 남으니 어쩔 거야. 


마지막 말 항상 기억하고 살아야겠네 나...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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