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지카 Jul 31. 2023

가스라이팅

처음 사귄 아이에게서의 교훈

가스라이팅

나는 이 단어가 유행하기 전부터 당해왔던 걸 알고 있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그리고 처음 사귄 애한테 장작 3년이란 세월 동안.


누구나 가스라이팅이 들어오면 피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사랑한다면'이란 전제로 시작되는 가스라이팅은 관계를 이어가는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끊어내기 힘들고, 당하는 사람은 그것이 가스라이팅이라는 것을 모를 때가 많다.


특히나 건강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한 아이들일 경우, 남녀관계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내 가정에서의 가스라이팅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내 아버지도 그것이 가스라이팅이라는 것을 모르고 가스라이팅이라는 것을 해왔을 거고, 


오랜 상담을 통해 나는 이해했고, 용서했다.


막판엔 본인이 그렇게 밖에 행동할 수 없었던 행동들을 뉘우치셨고, 내 앞에서 우셨으니까.




하지만 내가 처음 사귀었던 애는 아직 용서하지 못했다.


지금으로부터 23년이란 시간이 지났는데도, 꿈에서까지 나온다.


전제는 전부 '사랑한다면'이라는 것이었다.


처음엔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한다면 어떻게 이런 것도 못해줘'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처음엔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점점 더 큰 것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주 정신적으로 큰 고통이 되었다.


내가 정한 범위를 넘어선 희생까지도 바랐다.


물론 그 아이의 가정환경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애정결핍이 있었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 내 생활이 있고, 내 프라이버시가 있고, 내 개인적인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전혀 허용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은 심리싸움에서 굉장히 강하다고 자부했었다.


끊임없이 의심했고, 끊임없이 사람을 못살게 굴고, 끊임없이 제멋대로 굴었으며,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했다.


심지어 대학수업도 가지 못하게 했다.


휴대폰에 있는 남자들의 전화는 모두 지우게 했다.


밤새도록 게임을 해서 낮에 약속한 건 펑크내기 일수였으며, 걔가 일어날 때까지 하루종일 기다려야 할 때도 많았다. 내가 같이 졸다 일어나서 따지면 하는 말이 '너도 잤으면서 나보고 뭐라고 하냐?'였다.


'사랑한다면 그런 것도 이해 못 해주냐?'


'사랑하는데... 이까짓 것 희생 못해?'


'넌 이런 거 안 하니까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거야.'


'사랑하는데 왜 그 상황에서 연락을 못해?'


그놈의 사랑타령.


사귄 지 딱 100일 만에 헤어지고 싶었다. 그러나 헤어질 수 없었던 건, 그쪽이 했던 말이 있어서였다.


'너도 다른 재수 없는 애들처럼 학벌, 집안, 이런 거 따지는구나? 그러니 헤어지자고 하지.'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게 아니었다. 진작 헤어졌어야 했다. 걔는 심리전에 강한 것이 아니라 나를 가스라이팅 하고 있었던 거다.


그렇게 3년을 못 헤어지고 질질 끌었다.


정도는 더 심해지고 있었다.


가치관의 차이가 심한 데도 헤어지지 못했던 것은 그때마다 얘가 던지는 말 때문이다.


우리 사이에 잠깐의 시간을 가지자고 하면,


'그건 헤어지자는 말이나 똑같은 거야. 헤어지는 게 뭔지 알아? 네가 내일 죽어도, 아무런 신경도 안 쓰는 남이 된다는 거야.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남이야. 그게 헤어지는 거야. 넌 당장 내일 네가 죽었을 때 내가 그렇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대답해 봐. 그러길 원해? 차라리 지금 당장 헤어지자고 말해. 시간을 가진다는 건 없어.'


이렇게 말을 했다.


헤어지자고 말을 하면,


'그래 헤어져. 심한 말이라도 해줄까? 그럼 잊기 쉽겠지? 어때?'


이렇게 말을 했다.


내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그만큼 충격이 커서다.


마지막에 정말 헤어짐을 단단히 마음먹었을 때는 칼을 가지고 죽겠다고 난리를 쳤다.


'한마디만 더 해봐. 죽어버릴 테니...'


그 아이는 무서운 아이였다. 헤어지는 게 너무 두려웠다.


하지만 끝날 땐, 의외로 싱거웠다.


그 아이가 다른 여자가 생겨서야 끝나게 되었으니. 


문자로 '헤어지자' 그 걸로 내 3년의 인연이 끝이 났다.


그때의 홀가분함이란...


사귀는 동안엔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너무 힘들었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 혼자 끙끙거렸다. 그래서 막상 헤어졌을 때는 정말 웃고 있었다. 너무 홀가분해서 기뻤다. 헤어져서 울기보다 헤어져서 웃기 바빴다. 


그렇게 힘들었었기에, 그다음 만남에선, 조금이라도 심리적으로 나를 조종하려 들려는 사람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달만 만나고도 알게 되었다. 그런 사람들은 가차 없이 잘라냈다.




그래서 지금 남편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지금 남편에게 내가 심리 조종자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아이들에게도 심리적으로 조종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네가 누구를 사귀는데 심리적으로 곤란한 상황을 만들게 하는 사람을 만나거든 얼른 도망치라고...




누구를 사귄다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나를 절망으로, 절벽으로 몰고 간다면, 부모에게 조차 떳떳하지 못하게 말할 수 없도록 몰고 간다면 그 관계는 반드시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분명 도망쳐야 하는 관계다.


그래서 지금의 남편에게 참 고맙다.


그리고 그걸 깨닫게 해 준 상담선생님에게, 정신과 선생님들에게 참으로 감사하다.




후첨하자면...


그 친구는 나랑 헤어지고 나서, 1년 뒤 차랑, 휴대폰을 팔아달라고 연락이 왔었고, 2년 뒤 내 동생에게 아기 기저귀 좀 사달라고 했었다. 3년 뒤엔 내 바뀐 번호를 어찌 알고 연락이 왔길래, 용건은 듣지도 않고 미친 듯이 화를 내면서 전화를 끊고 전화번호를 또 바꿨다. 질긴 인연이고, 다신 마주치고 싶지 않다.   

작가의 이전글 충동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