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와 성장통... 이 두 가지의 공통점: 면역이 안된다 ^^;;
집을 떠나, 혼자 생활하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부터이다. 혼자 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를 꼽으라면, 아마도 아플 때였던 것 같다. 크게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적은 없었지만, 가끔 걸리는 감기가 나를 참 힘들게 했다.
감기는 주로 바이러스로 말미암아 걸리는 호흡 계통의 병이다. 환절기마다 찾아오는 불청객이기도 하다. 피로가 쌓이거나, 땀을 흘린후 깨끗이 씻지 않는 등의 이유로 감기에 걸린다. 큰 병은 아니지만, 사람들을 이만큼 힘들게 하는 것도 드문 것 같다.
얼마 전에도 목감기로 한참 고생했다. 잠을 청하려고 누우면 기침이 나와서 잠을 잘 수가 없으니, 몽롱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일교차가 심한 환절기에 땀을 흘리고, 바로 씻지 않아서 걸린 것 같다. 감기약 먹고 쉬면 금방 좋아지겠거니 생각했지만, 월말 마감을 앞두고 일이 많아서 쉬지 못한 탓인지 일주일 넘게 고생했다.
대부분의 질병은 한 번 걸리면, 우리 몸에 면역체계가 형성되어 같은 질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의학기술이 발달하였음에도 감기는 자주 걸린다. 한 번 걸렸다고 해도, 다음에 또 걸려서 고생하곤 한다. 독감 예방주사를 맞고, 따뜻하게 유지한다고 해서 감기에 안 걸리는 것도 아니다. 우연찮게 감기에 걸리는 경우도 많다.
우리의 인생에서 감기와 같은 것을 꼽으라면 성장통이 아닐까 한다. 사춘기가 지나고 나면 인생에서 크나큰 고민은 없을 줄 알았건만, 첫사랑의 아픔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아무리 만반의 준비를 한다고 해서, 그것을 피해 갈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그 시기가 지나면 대나무의 마디가 생기듯 우리의 삶은 조금 더 단단해진다. 다시금 똑같은 고민에 빠져 힘들어하지만 말이다.
이제 어느덧 사십 대 중반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남들도 그러하듯, 직장생활을 하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러한 나의 삶에, 아직도 가끔 불현듯 찾아오는 감기 같은 성장통이 있다.
내 나이 사십이 되면 불혹(不惑)의 수준은 아니더라도, 나 자신에게 확신에 찬 삶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아직도 도처에 불확실한 것들이 많고, 물욕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소소한 것에 힘들어하는 것이 사춘기 시절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유치하다.
이제는 대학입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지만, 일하는 시간보다 휴식시간이 좋고, 하는 일을 잠시 접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픈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성장의 과정에서 겪는 것이 성장통이라면, 사십 대의 나는 무슨 성장을 하고 있는가? 단정할 수는 없지만, 순응(順應)이 아닐까 한다. 내뜻대로 할 수 있는 것보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이제는 받아들이게 되었다. 주어진 여건에서 새로운 시도 없이 그냥 현실에 안주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농사짓는 농부가 자연의 섭리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여, 하늘을 원망하지 않음을 조금씩 알아간다는 의미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 많음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매출 목표를 달성하고, 새로운 사업을 또 준비하고 늘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들.
그 치열함 속에 힘들어하는 동료도 있고, 나 또한 힘들어한다. 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새로운 목표가 생기고, 또 다른 인연으로 새 출발선상에 서기도 한다.
6년 전에 신규 프로젝트에 합류하기 위해 입사하였지만, 매년 실시하는 조직의 인사이동과 전혀 새로운 회사와의 합병으로 그 프로젝트는 몇 년 동안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기도 했고, 프로젝트 구성원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들이었다.
그렇게 5년 넘게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빛을 발하지 못해 포기할까 고민하던 중, 올해 초 새로운 팀으로 편성이 되어, 요즘은 미친 듯이 즐겁게 일하고 있다. 하드디스크 속에 잠자고 있던 신규 아이템 중 하나는 무더운 여름에 론칭하였다. 그 과정에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조금 더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최선을 다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고생했던 6년은 필요 없었던 시간일까? 아니다. 그 기간 동안의 고민과 노력들이 쌓여 있었기에, 지금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는 이 시기에 내가 전력투구할 수 있는 것이다.
치기 어린 20대였다면, 내 분야의 전문가라고 자부했던 30대였다면, 아마도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 누군가를 원망하기도 하고, 떠나갔을 것이다. 40대에 접어들면서 내가 느끼는 나의 변화는 '기다림'인 것이다.
이제는 필요에 따라 기다릴 줄 아는 아는 나이가 되어가는 것 같다. 물론, 앞으로의 시간이 또 어떻게 펼쳐질지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야만 행복한 것이 아니다. 내가 준비해야 할 것을 준비하고,
설득할 부분은 설득해나가면서, 그 시간을 채워가는 과정 자체가 내 인생이고, 내 인생의 의미인 것이다.
감기처럼 가벼운 병에라도 걸리고 나면, 사소한 병이지만 건강에 신경을 쓰게 된다. 마찬가지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크고 작은 일들을 겪게 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도 있지만,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알게 된다. 내가 조금씩 성장해가는 것이다.
어떠한 작은 아픔도 없이 지낼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할 거라는 생각보다는, 이런저런 사소한 충돌과 변화들이 나를 더 내실 있고 꽉 찬 삶으로 이끌고 있다는 생각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물론, 감기처럼 가벼운 고민쯤은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체력을 유지해야, 행복한 성장통이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