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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화 Apr 01. 2020

꿈을 좇은 지 딱 10년째 되는 날의 일기

4월 1일 거짓말처럼 백수가 된 지 딱 10년째 되는 날이다. 달력에 동그라미 쳐놓고 기념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샤워하다가 우연히 생각났다. 아! 내일이면 딱 10년째구나... 23시 48분.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냥 흘러나오는 대로 지금을 기록하고 싶어 졌다. 나의 10년은 어땠을까? 윗배부터 조금씩 뜨거워진다. '울컥'이라고 표현하자니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꿈을 좇아 온 10년이 정말 꿈만 같이 지나가 버린 느낌... 아주 미미하지만 뭔가 묵직한 것이 가슴 아래에 맺힌다. 역시나 내가 아는 단어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냥 이 느낌을 기억하자.


치열하게 살아온 장면들이 스치면서 엉엉 울고 싶기도 하고, 방황하는 동안 어지럽혔던 것들은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은 마음에 조급해진다. 지금에 와서 어찌할 수도 없는 시간인 줄 알지만 마흔이 되어서도 아는 것과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지나간 시간들이 마구 쏟아져서 감당이 안된다. 10년이 뭐길래. 9년째는 안 그랬는데, 1년 동안 엄청난 일이 더 생긴 것도 아닌데, 그냥 마구 마구 쏟아진다.


배우가 되겠다! 10년 전 이 말은 계획이 아니라 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 진짜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 그런데 배우가 되었다. 코치가 되겠다! 10년 전 이 말은 꿈이라기보다 계획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말리지 않고 응원했다. 그리고 코치가 되었다. 배우나 코치나 지금은 딱히 무슨 직업이 더 낫다고 하기 어려운데 사람들은 왜그렇게 말리고 응원했을까? 역시 주변 사람들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건 정말 중요하지 않았다. 10년을 달려와보니 더 잘 알겠다. 그냥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았던 것이 참 다행이다.


10년 전에 유명해지는 것을 꿈꿨다면 지금쯤 유명해졌을까? TV에 나오는 배우나 스타 강사가 되기를 꿈꿨다면 이루어졌을까? 10년이 지나고 나서 보니 많은 선택들이 꿈을 향해 이뤄졌지만 유난히 유명해지는 것은 경계했던 것 같다. 어쩌면 두려워했던 것 같다. 맞다. 두려웠다. 예나 지금이나 배우, 강사는 유명해져야 잘 먹고 잘 산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피하고 싶었다. 원한다고 반드시 될 것도 아니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말을 10년 동안 해버렸다. 진심은 섣불리 유명해지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유명해져서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싶었지만 항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나를 다그쳤다. 이제는 일부러 가능성을 닫고 피하지 않기로 했다. 어떤 기회가 오든 나답게 잘 하겠다고 다짐하기로 했다.




다행히 10년 전 꿈의 기록이 남아있다. 언제나 다시 봐도 참... 징그럽다. 그런데 손발이 오그라드는 걸 모르고 미친 듯이 꿈꿨던 내가 그립고, 귀엽다. 용감했고, 씩씩했다. 그래, 참 대견하다. 막 삼십대를 시작할 때의 파이팅이 지금 나에게 있는지, 구석구석 뜯어서 찾아보지 않으면 어디 갔는지 찾기 어렵다.




첫 연극에 데뷔하고 인터넷에 내 얼굴이 뜨던 날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른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검색하지 않는 이름이지만 혼자 수십 번씩 검색하면서 그때야말로 울컥울컥 했다.




프로무대에 데뷔하면 첫 초대권은 엄마한테 드리겠다던 다짐을 지켰다. 마흔이 된 아들을 보며 엄마는 어떠실까?


코로나 덕분에 수입 없는 날들을 보내느라 나도 모르게 의기소침해졌다. 꿈을 향해 훨훨 날아서 멋지게 세상에 나가고 싶었는데 어제도 오늘도 노트북 앞에만 앉아있다. 임재범의 비상을 부르면서 훌훌 털고 싶지만 코인 노래방에서 노래하는 걸 상상하니 왠지 찌질해진다.


아직 쏟아지는 장면이 밀려있지만 내 머리도 내 손도 따라주지 못한다. 차곡차곡 쌓아두고 조금씩 꺼내봐야겠다. 그래 시간도 많아진 김에 차근차근 정리도 해봐야겠다. 한숨을 돌리니 조급함도 조금 사라진다.


10년 전에는 10년 후에 내 모습이 이럴 줄 몰랐다. 당연하지. 그래도 꿈꾸던 배우가 되었고, 코치로서 강사로서 이곳저곳을 다니며 이야기하고 싶던 것들을 나누고 살고 있다. 이제 10년의 경력이 쌓이니 두 가지 영역을 오가며 융합도 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을 하게 된다. 재미있다. 요즘 말로 정신 승리처럼 마무리 짓자니 뭔가 아쉽지만... 글 쓰다 말고 아내의 머리를 말려주고, 종아리를 주물러 주고, 발을 밟아주고 다시 와서 끄적이다 보니 1시 11분이다. 일단 오늘은 자야겠다. 그래야 일기 답지. 수정하지 말고 두고두고 봐야겠다. + 또 10년 뒤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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