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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화 Mar 11. 2020

후회하는 사람이 모르는 두 가지

지난 선택에 후회하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

1) 후회하는 선택을 했던 과거의 나

2) 후회할 수 있는 현재의 나




후회하는 선택을 했던 그 시점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후회는 '그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착각에서 시작된다. 큰 착각이다. '할 수 있었는데'가 틀렸다. 애초에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지금 후회하지 않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는데, 일부러 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다.


그때의 나는 후회하지 않을 만한 선택을 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딱 그 정도의 사람이었다. 딱 지금 후회할만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던 사람이었다. 애석하게도 그때의 선택은 그때 나의 최선이었다.


만약 내가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면, 그때의 내가 그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다면, 이제 와서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할 수 있었다면, 그때의 나는 최선을 다해 지금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후회할 일이 없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과거의 선택에 대해서 지금 후회하고 있다면, 과거의 나를 인정해야 한다. 과거의 나는 현재의 후회하는 나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지난 선택에 후회하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다. 팩트다. 오늘도 후회하는 나를 위한 팩폭이다.




그럼 그냥 '내가 무능했던 인간이었구나'를 받아들이고 끝낼 일인가? 그러기에는 더 후회할 것 같다. 우리가 또 알아야 하는 것은 현재의 나다.


현재의 나는 깨달았다.

현재의 내가 후회하는 것은 이제 알기 때문이다.

현재의 내가 후회할 수 있는 것은 더 나은 선택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증거다.

현재의 나는 후회되는 선택을 한 과거의 나보다 성숙해졌고, 성장했고, 나아졌다.

나는 깨달았기 때문에 후회하고 있다.


만약 깨닫지 못했다면 후회할 일이 없다. 더 나은 선택의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면 아쉬울 것도 없다. 그만큼 대단해졌다. 수준이 높아졌다. 더 나은 선택의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눈을 떴다. 다시 그때처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깨달으면서 후회했듯이 후회하면서 깨달을 수도 있다.


'후회'의 '회(悔)'에는 뉘우치다는 뜻이 있다. 흔히 후회는 스스로 꾸짖고, 한이 맺혀 분하게 여기는 의미가 강하지만 어떤 일을 하고 난 뒤에 뉘우친다는 뜻도 있다. 최악의 경우는 뉘우치지 못하고, 다시 후회할 선택을 하고,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이다.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인간이다. 바보다. 바보가 항상 행복한 이유는 자기가 바보인 걸 모르기 때문이다. 바보인걸 알면 마냥 행복할 수 없다. 깨달음에는 후회가 따르기 마련이다.




지나온 길은 오직 그 길 하나뿐이다. 다른 수많은 길이 보였는가? 그러나 그 길로 가지 않았다. 보았던 길은 여러 개라도 지나온 길은 오직 하나다. 다른 길이 더 나아 보이는 것은 이미 지나왔기 때문이다.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아무도 모른다. 다른 길로 갈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후회하는 것은 어리석다. 하나의 길 밖에 보이지 않아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 길 하나밖에 볼 수 없었던 것이 그때의 수준이다. 그때의 시야만큼 좁은 사람이었다.


지나온 길을 후회하는 것은 뒤로 걷는 것과 같다.


더 잘할 수 있었다는 착각 대신, 이제 잘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과거에 그러지 말 걸’ 보다 ‘지금부터 이렇게 하면 되지!’로 바꾸고 싶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만 살 수 있다. 기억이 과거로 데려가 후회하게 만들고, 상상이 미래로 데려가 불안하게 만드는 만큼 현재의 시간을 잃는다. 좋은 추억을 기억하고, 희망을 상상하며 오늘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미래의 내가 후회하지 않는 최선의 선택이다. 이제 '후회된다...'는 입버릇을 '깨달았다'로 바꿔본다. ‘깨달았다’는 말이 부담스러우면 그냥 ‘이제 알았다’도 좋다. 당신이 이 글을 읽은 선택이 결코 후회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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