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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화 Aug 09. 2020

'나답다'라는 착각

나다운 것 = 익숙한 것 ?


 오랫동안 나다운 것은 익숙한 것이었다. 하던 대로 하는 것, 마음대로 하는 것, 애라 모르겠다 할 수 있는 용기, 결국 지금까지 살아왔던 나의 모습이 나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완전한 착각이었다. 명백히 틀린 생각이었다. 애라 모르겠다 할 수 있는 용기는 충동이었다. 숙고하는 노력이 귀찮았던 경솔함이었다. 나답다고 믿고 저질렀던 것들 뒤에 합리화가 따라붙는다면 나다운 것이 아니다. 나다운 것은 애써 나다운 것이었다고 합리화할 필요가 없다.


 '나다운 ' 알기 위해서 ‘ 대해 알아야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길래 어떤 것이 나다운 것일까? '' 모르고 어떻게 '나다운 '   있을까? 결국 나다우려면 나를 아는 것이 먼저다. 치킨이 치킨다운지 알려면 치킨을 알아야 한다. 탄산이 빠진 맥주는 맥주답지 않다고 말하는 것처럼 나다운 것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나에게 탄산 같은 것은 무엇일까? 나에게서 빠지면 나답지 않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런데 과연 그런  있기는  걸까?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어느 순간 이 말이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원래는 언제부터를 말하는 걸까? 원래 '원래'의 뜻은 처음부터인데, 그럼 태어날 때부터를 말하는 건가? 원래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고 하면 태어날 때부터 급한 사람으로 태어난 걸까? '원래 나는 소주보다 맥주를 좋아해.'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하는 나를 보았다. 그럼 나는 태어날 때부터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인가? 맥주를 좋아하는 것이 나다운 것인가?


‘원래 나는 나대는 걸 안 좋아해.’

‘원래 나는 조용한 사람이야.’

‘원래 나는 솔직한 걸 좋아해.’

‘원래 나는 가식적인 게 딱 질색인 사람이야.’


사람들은 원래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같았다. 그러면서도 자기다운 것이 뭐냐고 물어보면 쉽게 답하지 못했다. 때로는 자기답게 살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같았다.




"생각하지 말고 그냥 움직여 봐!"


나다운 것에 대한 고민은 배우가 되면서 진지해졌다. 처음 연기를 배울  그냥 해보라는 지적을 자주 받았다. 스물아홉 살이었다. 스물여섯 살에 처음 리더십을 배우고 3 동안 생각하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연습했는데 갑자기 반대로 하라 하니.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저는 원래 생각하고 움직이는 스타일이에요."


 무슨 소리를  거지? 언제부터 그랬다고 '원래'라고 했을까? 스타일은  무슨 말인가? 태어날  부터 29 동안 생각하고 움직였나? 3 동안 연습한거랑 반대라서 혼란스러운거였다. 순간 튀어나온 변명이었다. 익숙하지 않아서, 연습해보지 않아서, 해도 해도  안되니 그냥 원래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나아가서는 그게 나다운 거라고 합리화 했다.


 생각하고 움직이는  나다운 걸까? 일단 움직여보는 시도를 하는  나다운 걸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아니, 나는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해 놓았을까? 기질이란 것도 있고, 타고나는 성격도 있어서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말도 일부 맞는 말이겠다. 그런데 뭔가 아쉽다.  나아지려는 노력이 힘들 마다 쉽게 나답지 않다는 말로 변명했다. 그리고 살던 대로 살았다. 살던 대로 살면서 변화를 원했고, 변화를 원하면서 살던 대로 살았다.


'나답다'고 할 때의 '나'는 실수하고 실패하는 나를 보면서 힘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실수하고 실패하는 모습이 나다운 것이 아니라 포기하지 말라고 응원하는 모습이 나다운 것이다. '나답다'고 할 때의 '나'는 좌절하고 절망하는 나를 보면서 위로하고 안아주는 사람이다. 좌절하고 절망하는 모습이 나다운 것이 아니라 괜찮다며 달래주는 모습이 나다운 것이다. 나답다고 할 때의 나는 어떤 순간에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나다운 나다. 그런 내가 진짜 나다. 나를 보는 내가 나다운 나다. Real Self다.


 혈액형의 무슨 형 스타일이 나다운 것이 아니다. MBTI의 무슨 무슨 유형도 아니고, 애니어그램의 몇 번 유형의 몇 번 날개를 단 것도 나다운 것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 + 후천적으로 학습된 = 익숙한 나일뿐이다.


다른 나로 살고 싶은데 그런 나는 나답지 않아서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아니 나에게 다시 말하고 싶다. 정해져 있는 나다운 것은 없다. 나는 어떤 이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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