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좋아했다. 앞접시와 그릇 몇 개를 놓고 나면 약간 좁은 테이블이 좋았다. 젓가락 옆에 소주잔을 비집고 놓으면 아늑했다. 동그란 자리 가운데 불이 들어오면 한 잔 한다. 고기가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건 가혹하다. 소주와 삼겹살은 당연히 세트 메뉴였다. 덩달아 임창정의 소주 한 잔도 좋아했다.
지금은 소주가 싫다. 술이 한 잔 생각나는 밤에도 소주는 싫다. 고깃집 냉장고에 가득 찬 녹색병을 보면... 질린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꼭 삼겹살에 소주여야 하냐며 자기주장도 강해졌다. 소주 얘기는 더 하고 싶지도 않다. 매스껍다.
내가 진짜 소주를 좋아하는 건가?
문득 이런 질문을 했다. 나에게 물어보니 딱히 그렇다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예고 없이 머리에 빠직! 하는 통증이 왔던 날, 뒤통수부터 두개골에 금이 가는 것 같이 아프던 날, 심상치 않아서 병원에 갔던 날, 혹시 술을 즐긴다면 줄여보라고 진단받던 날, 비로소 나는 소주가 좋아서 마신 게 아니란 걸 알게 됐다.
다른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렸다. 좋아하는 것과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것들이 나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척하다 보니 좋아하는 줄 알고 지낸 것들, 싫어하는 내색을 하지 않으려다 좋아하는 것처럼 되어버린 것들, 이제 좋아하지 않는데도 나도 모르게 하게 되는 것들.... 소주를 마시는 건 여기에 다 해당됐다.
변했다. 세상도 취향도 입맛도 소주 도수도. 그때는 좋았지만 지금은 싫은 것들이 있다. 어떤 노래도, 어떤 장르도 어떤... 시람도. 지금은 맥주 500이 딱이다. 이제는 다른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