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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화 Mar 15. 2023

41살,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만우절에 퇴사했다.


2010년 4월 1일, 친구들은 회사를 떼려 쳤다는 말을 장난으로 받아들였다. 2021년 3월 15일. 11년 만에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이번에는 스스로 믿기지 않았다. 2018년에 쓴 책 <인생 연출>도 개장판을 내며 수정했다. 초판에는 2010년에 그만둔 회사가 인생의 마지막 직장인 것처럼 썼다. 틀렸다. 역시 마지막이라는 말은 틀릴 가능성이 높다. 책 홍보!




근로계약서를 언제 썼던가?


계약서에 싸인하는 게 어색했다. 가장 큰 걱정은 잘할 수 있을까였다. 일을? 아니 출근을. 11년 동안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잤다. 이제 일어나야 할 때 일어나고 졸리지 않아도 잠을 청해야 한다. 조직에 들어왔다. 배려해야 할 사람들이 많아졌다. 매일 봐야 하는 얼굴이 늘었다. 아내와 언제든 속초에 가서 만석닭강정을 사 올 수 있는 여유도 사라졌다. 필 받으면 대포항에서 대게 세트에 한 잔 할 수도 없다. 아무렇지 않게 자고 오는 건 큰 일탈이 되었다. 40일 넘게 다녀왔던 신행 같은 여행은 어렵다. 당연히 시간관리가 빡빡해졌다. 조직은 자원을 함께 쓰면서 자산을 늘려가는 무리다. 어느 조직이든 시간이라는 자원을 공유한다. 내가 쓰는 시간이 내 것만이 아니다. 그렇게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이런 걸 몰랐을 리가. 알고 선택했다. 많은 각오를 하고 근로계약서를 썼다. 그리고 2년이 지났다. 2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자, 이제 셀프코칭을 시작해볼까?



지난 2년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변태. 프리랜서에서 직장인으로 변태 했다. 10년에 한 번은 크게 쇄신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꽤 괜찮은 변태다. 쇄신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생존 본능도 있지만 재미도 중요하다. 좋아하는 일도 10년쯤 하면 현타가 온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뀌면서 다른 세상이 되어있다. 10년 전에는 ChatGPT가 없었다. 쇄신은 불가피하다.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반갑게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야 한다. 여행 같은 거다. 그런 의미에서 10년 묵은 정체성을 탈피했다. 30대의 시작은 직장을 때려치우고 배우가 되겠다며 대학로로 갔다. 20대의 시작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성인으로 세상에 던져졌다.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던 20대, 꿈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렸던 30대, 그리고 창업 경험을 바탕으로 스타트업 직장인으로 40대를 보내게 됐다. 탈피와 변태다.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조직에서 즉흥적으로 해도 괜찮은 사람은 대표 밖에 없다. 그게 조직이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결국 ESTJ로 변한다는 얘기도 있으니 말이다. 나는 대표가 아니다. 띠라서 매우 불편하다. 특히 위에 누가 있는 건 역시나 불편하다. 그래서 프리랜서일 때는 1인 기업임에도 대표 이름 달고 내 맘대로 했다. 다시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왔다. 내 회사라면 다르게 할 일이 수백 가지지만 그럴 수 없다. 물어봐야 하고, 상의해야 되고, 승인받아야 한다. 그래도 나름 재미있다. 언젠가 멘토코치님이 그랬다. 위로 올라갈수록 잘하는 사람이 있고, 올라갈수록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런데 난 올라갈수록 잘할 스타일이라고 했다. 그분의 말씀이 맞다 치자. 또 생각난 게 있어서 여기까지 1)이라고 한다.


2) 루틴의 힘을 경험했다. 습관까지는 아니고 의식 Ritual은 거창하다. 루틴은 성취감을 준다. 의식적인 행동으로 알아차림 awareness 에도 도움 된다. 불확실성을 줄이면서 안정감도 생긴다. 쓸데없는 계획에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된다.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도 좋다. 성인 ADHD를 의심할 때도 있는 나에게 루틴을 만들고 실행하는 것은 꽤 도움이 된다.


3) 강의하면서 떠들던 것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입사 초반에는 겸손하려 했다. 엄청 애썼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느낌이 없지 않아서 재부팅을 하듯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했다. 알 것 같은 것도 모르는 거라고 생각했다. 별거 있겠냐 싶은 것들에 대해 별거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3개월, 6개월, 1년… 덕분에 새롭게 배운 게 많다. 더 디테일하게 알게 된 것도 많다. 그럼에도 프리랜서 강사로 떠들고 다니던 것들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조금 덜 겸손해져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꿈꾸는 삶을 살고 있는가?


파올로 코엘류의 책 <흐르는 강물처럼> 띠지에 있던 문구다. 이 질문이 나의 20대를 흔들었다. 과연 꿈꾸는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 내 꿈은 뭐였나? 꿈이란 게 있기는 하나? 서점에서 어질어질했었다. 20년쯤 지나 다시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꿈꾸는 삶을 살고 있는가? …… 모르겠다. 분명한 건 아주 오래 회사를 다니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언제까지 다녀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그냥 그런 느낌이 든다. ‘나’라는 인간을 40여 년 지켜보니 그럴 것 같다  논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은 직관이다.



앞으로 2년은 어떻게 보내고 싶나?


이렇게 물어보니 2년은 더 다닐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 대충 5년쯤 다닌다고 봐야 하나. 그렇다면 앞으로 2년 후에는 남은 1년을 잘 마무리할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앞으로 2년은 회사를 질적, 양적으로 잘 성장시키고 싶다. 거기에 내 한계를 뛰어넘는 기여를 하고 싶다. 회사가 미국으로 무대를 넓히는데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 아마 이 고민들이 깊어지고 실행할게 많아지겠지.



동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


맨날 다른 사람들에게 질문하다가 막상 나에게 질문하니 울컥한다. 가장 먼저 팀원이 떠오른다. 그리고 매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경영진들이 떠오른다. 또 몇몇 직원들이 스쳐간다. 그들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까? 갑자기 눈이 따갑다. 우는 건 아니다. 그냥 좀 시리다. 글쎄...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걸까? 유일한 존재? 없었다면 안 됐을 존재? 없었다면 완전히 다른 회사가 되었을 사람? 내가 없었어도 회사는 잘 됐을 것 같다. 분명히.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다른 모습으로 잘 됐을 것 같다. 꽤 영향력 있는 인물로 기억되고 싶은 걸까? 그런 욕심은 거의 없는데... 현재 상황에서 나는 크고 작게 영향을 끼쳐버렸다. 이렇게 된 김에 좋은 영향력을 더 끼치면 좋겠다. 신념을 바꿔놓은 사람,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꿔준 사람, 진짜 제대로 된 코칭을 경험하게 해 준 사람, 조직문화의 중요성을 알게 해 준 사람, 리더십 코치... 욕하는 사람만 없으면 된 거지 뭐. 코치한테 이 질문을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마흔 한 살,

그렇게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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