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복학을 앞둔 여름 방학에

by 이태화


그림의 날짜를 보니 여름 방학이다. 전역하고 처음 맞는 여름이었다. 낮엔 CGV에서, 밤엔 해리피아에서 알바를 할 때다. 잠은 3~4시간씩 쪼개 잘 수밖에 없었다. 그 해 여름 방학엔 알바 외에 뭘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왜 저런 그림을 그렸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해 여름은 군대에서 상상했던 장면과 많이 달랐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여름만 되면 TV 예능에 워터파크가 자주 나왔다. TV 앞에 모여서 제대하면 꼭 놀러 갈 거라고 큰 소리를 치곤 했었는데 막상 사회에 나오니 워터파크는 사치였다. 시간만 많고 돈이 없었다. 그 후 매년 여름에도 뭘 했는지 캐 모 워터파크, 오션 어쩌고 저쩌고 하는 곳엔 마흔이 되도록 가보지 못했다.


어느 여름 비발디파크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차가 없던 때라서 차비도 아낄 겸 셔틀버스를 알아봤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미아역 근처 어딘가에서 탔던 것 같다. 그날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버스 계단에 오르자마자 깜짝 놀랐던 것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꽤 이른 시간이라서 사람이 많지 않을 줄 알았는데 선뜻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꽉 차 있었다. 예상과 다른 모습에 많이 당황했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일단 빈자리를 찾아봤다. 서서 갈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지만 그보다 놀란 것은 그 시간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놀러 간다는 사실이었다. 다들 반바지에 선글라스에 누가 봐도 물놀이하러 가던 사람들이었다. 조금씩 안으로 들어가면서 빈자리를 찾는데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 같았다. 혼자 정장을 입고, 노트북 가방을 들고... 버스 맨 뒤 줄 바로 앞자리에 겨우 앉았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가시 방석 같았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강의가 끝나고 셔틀버스를 기다리는데 워터파크에서 노는 소리가 들렸다. 비명 소리는 미끄럼틀 같은 걸 타는 소리 같았다. 버스 시간이 남아서 입구까지 걸어가 봤다. 나도 나중에 돈 모아서 이런데 놀러 와야지 하며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또 몇 년이 흘러버렸다.




아내 덕분에 여름, 겨울에 여행을 다녀 본다. 그런데 돈 버느라 바빴던 게 익숙해서 그런지 아직은 여행이 낯설다. 괜히 놀면 안 될 것 같은 죄책감이 밀려올 때도 있고, 여행을 가서도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안절부절못할 때가 많다. 15년이 지난 지금... 많이 변했지만 딱히 변한 것 같지 않은 내가... 참...... 뭐라고 해야 할까?......


스물다섯, 그해 여름을 그림으로 돌아본다. 얼마나 막막하고, 얼마나 답답했을까? 무슨 이유 때문에 저렇게 그렸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비로소 삶을 책임지는 것과 그 무게를 배우기 시작했던 내가 보인다. 이제라도 나를 격려해본다. 수고 많았다고, 그 와중에 씩씩하게 웃으면서 잘 살았다고 다독거려본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것들을 책임지느라 지쳐있을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나를, 가족들을, 당신을 위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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