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통행?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by 이태화


500만 화소 시절 사진이다.

휴대전화 카메라가 1억 8000만 화소가 되는 동안 12년이 흘렀다. 그땐 사람들이 좌측통행을 했고, 지금은 우측통행을 한다.


비 내리던 날, 선릉역 1번 출구에서

문득 계단을 올려다보니 오른쪽이 젖어있었다. 출구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물로 색칠한 흔적이다. 우산을 접고 옷을 털고 빗물을 밟은 신발로 계단을 적셨다. 좌측통행을 하니 사진의 계단 오른쪽만 까맣다. 한쪽만 젖은 모습이 재미있어 사진을 찍었다. 제목은 '좌측통행'이라 붙였다. 요즘 비 오는 날 지하철역 출구 계단은 반대쪽이 젖는다.


비 오는 날 계단이 알려주었다.

우리는 한쪽으로 걷기로 약속하고 그렇게 걷고 있다고. 계단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수많은 사람이 왼쪽으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너무나 익숙해서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생각했다. 빗물이 말라서 흔적이 사라지기 전까지 기회를 주는 것 같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 같았다. 빗물이 마르고 흔적이 사라지면 좌측통행 따위는 생각지도 않고 계단을 오르내렸을 것이다.


"우리 땐 다 그랬어"

왠지 뒤에는 '그러니까 너도 그냥 그렇게 해'라는 말이 따라붙을 것 같다. 난 이런 말이 싫다. '내가 니 나이 때를 살아봐서 아는데'라는 말도 싫다. 같은 나이를 살아봤더라도 다른 시대에 살았다. 나이 말고는 모든 게 다른 삶을 살아놓고 뭘 얼마나 잘 안다는 걸까? 그때 그랬다고 지금도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은 없다. 그토록 혐오하던 꼰대가 되고 싶지 않아서 종종 세월에 갇힌 나를 구출해 온다.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변하고 우리가 비 오는 날 남기는 흔적도 달라졌다. 우리가 그리는 일상의 무늬가 달라졌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는 것들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것들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는 것들

그때도 틀리고 지금도 틀리는 것들

그리고 나에게 좌측통행 같은 것들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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