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와 물구나무서는 개미핥기"(너도 화가 났어?)

by 마하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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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의 약점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들은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막기 위해 불필요한 에너지를 많이 쓴다. 문제는 그 약점이라는 것이 스스로 통제할 수 있거나 다룰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통제할 수 없다, 그러니 막는 게 최선이다’라는 식으로 자포자기 해버린 후, 그 약점에 사로잡힌 채 살아간다. ‘난 원래 이렇게 생겼으니, 어쩔 수 없어’라는 식으로 말이다.


다람쥐가 강가에서 만난 개미핥기가 바로 그런 타입이었다. 개미핥기는 물구나무를 선 채로 아주 유쾌하게 웃고 있었다. 누가 봐도 힘든 자세였다. 당연히 개미핥기는 원래 그런 식으로 살지 않는다. 다람쥐가 이상해서 왜 그러고 있냐고 물어보니까, 개미핥기는 자신이 똑바로 서면 화가 나서 참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화를 내지 않기 위해서 개미핥기는 이렇게 힘들게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 것이었다.


과연 정말 그런지 궁금해 하는 다람쥐에게 개미핥기는 은근슬쩍 자기가 똑바로 서게 도와달라고 말한다. 다람쥐는 반신반의,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개미핥기가 다시 똑바로 서는 걸 도와준다. 그러자 개미핥기는 곧바로 눈에서 불똥이 튀면서, 다람쥐에게 소리치며 달려들기 시작한다. 다람쥐를 때리고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온갖 횡포를 부린다. 다람쥐는 몸싸움 끝에 간신히 개미핥기를 다시 거꾸로 서게 만든다.


그러자 개미핥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까의 그 다정하고 유머러스한 모습으로 돌아와서는, 화내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라며, 다시 웃는다. 정말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완전한 이중인격을 보는 것 같다. 그때 개미핥기가 말한다. “내가 물구나무 서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으니까.” 개미핥기는 자기 자신을 전혀 믿지 못하고 있었다. 물구나무 자세를 유지하는 한은 안심이지만, 똑바로 서게 되면 자기도 어떻게 변할지 전혀 모른다고 믿고 있었다. 어찌 보면 물구나무 자세는 하나의 핑계일지도 모른다. 시한폭탄 같은 자신의 모습을 정당화 하는 핑계.


예전에 폭력의 대물림으로 스스로를 두려워하는 남자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어머니와 가족들을 때리는 사람이었기에, 이 남자는 자기 핏속에도 아버지처럼 폭력의 유전자가 흐르고 있지 않을지 늘 경계하고 두려워했다. 그래서 유독 자상하고 친절한 태도로 사람들을 대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약점이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에 엄청나게 예민해서, 결국은 헐크로 변신하는 것처럼 폭력을 사용했고, 제 정신으로 돌아오면 그런 자신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하면서 자학하기를 반복했다.


또 다른 남자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버리고 바람을 펴서 집을 나간 이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자신은 죽어도 아버지처럼 되진 않겠다고 다짐, 또 다짐을 했다. 그래서 아버지를 닮아서 성격이 쾌활한 호남아 스타일인 자신의 성격을 계속해서 억누른 채, 점잖고 진중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아주 즐거운 순간에 문득 아버지와 닮은 모습이나 말투가 드러나게 되면 불에 데인 것처럼 놀라면서 자신을 더 억눌렀다.


부모의 문제가 자식에게 대물림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이들의 문제점은 그들이 자신의 문제를 다룰 수 있다고 믿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물려받은 피, 성격, 외모, 기질까지 모두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것으로 간주하면서, 오히려 그것에 너무 많은 힘을 부여했다. 마치 자신들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인양, 무시무시한 존재로 승격시켜버렸다는 뜻이다. 엄밀히 말해서 자신과 부모는 다른 사람이다. 아무리 유전자와 피를 물려받았다고 해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각자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로, 둘은 절대로 같을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은 아버지를 닮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라고 쓰고 두려움이라고 읽는다)에 사로잡혀 버렸기 때문에, 되려 아버지와 닮은 점에 더 집착하고 마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


개미핥기는 자기도 힘든 물구나무 자세를 함으로써 자신의 어쩔 수 없는 화를 정당화하기 전에, 자기가 화가 잘 나는 타입인 걸 인정하고 화를 어떻게 자제할 것인가, 화가 났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화를 지혜롭게 풀어내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연구했어야 했다. ‘화가 나면 나도 어쩔 수 없어’라는 말은 그런 노력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주변에서 이런 말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난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 걸?”, “난 원래 이래”, “그건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나보고 어쩌라구!” 이런 말들은 다 핑계이다. 노력하지 않으려는 핑계, 결국 애쓰기 싫다는 말이다. 그래서 다람쥐가 개미핥기를 떠나 멀리 도망가는 것이다. 이들은 변할 생각은 하지 않고, 평생 핑계를 대면서 살 것이기에. 그런 사람은 일찌감치 떠나버리는 게 상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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