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보고 싶거든"(줄리 폴리아노/에린 E.스테드)

by 마하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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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간절히 보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주는 그림책이다. 여기서 ‘고래’는 상징이다. 무언가 크고, 희귀하고, 보기 힘든 것의 상징. 이 그림책에서는 그게 ‘고래’였지만, 이걸 읽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면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여간해선 책 뒷 표지에 나와 있는 추천의 글이나 출판사의 책 소개 같은 건 읽지 않는데, 오늘은 뒷면의 고래 그림을 보려다가 시인 이병률의 추천사를 읽게 되었다. 이병률 시인은 이 고래를 ‘사랑’이라고 생각했더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고래’를 이루고 싶은 목표,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아주 큰 꿈. 내가 평생을 걸고 이루기를 원하는 바로 그것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꿈을 꾸려고 할 때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이 ‘창문’이라는 것에서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정말 그렇다. 일단 내 마음에 창이 있어야 한다. 벽이 있어버리면 어떤 꿈도 꿀 수조차 없다. 현재 내게 없는 것을 꿈꿀 수 있는 희망의 창 말이다. 그것은 ‘내가 고래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에서 시작된다. ‘내가 그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잘나가는 웹소설 작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뮤지컬 핵심 스태프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지금 내가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상태에 있다면, 이런 상상을 하는 것 자체가 그저 엉뚱하고, 얼토당토 없고,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치부되겠지만, 사실 모든 꿈은 상상할 수 있어야만 시작될 수 있다.


일단 창이 생기고, 막연하더라도 꿈을 갖게 되고 나면 그 다음엔 ‘바다’가 필요하다. 실제로 고래가 있는 장소 말이다. 바다를 보기 시작해야 한다. 바다를 접하기 시작해야 한다. 뮤지컬을 좋아하면 뮤지컬 무대가 있는 극장에 가서 뮤지컬을 봐야 하고, 웹소설을 써보고 싶으면 웹소설이 있는 사이트에 들어가서 웹소설을 직접 읽어봐야 한다.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환경에 나를 노출시켜봐야 한다. 만약에 이 지점에서 바다에 압도되어 버려서 너무 무섭다거나,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 꿈은 여기서 접혀버릴 수도 있다. 왜냐하면 상상과 현실은 늘 다른 법이니까.


그 다음 단계는 진짜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심사숙고할 시간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내가 보고 싶어하는 그 고래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진 너무 막연했던 희망사항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젠 구체적으로 알 필요가 있다. 내가 되고 싶어하는 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 말이다. 막연히 웹소설 작가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웹소설 작가가 되면 구체적으로 매일 어떻게 연재를 해야 하는 건지, 어떻게 해야 베스트에 올라갈 수 있는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뭔지, 그러려면 어떤 이야기를 준비해야 하는 건지, 어떤 형식을 갖춰야 하는 건지, 이런 것들을 다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고래가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면서 고래를 보고 싶다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건 내 상상속의 고래일 뿐이다. 이 단계에서도 진짜 고래가 보고 싶은 게 확실하다면, 그 다음은 기다림이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단계이다. 기다리되 너무 편안하게 기다려서는 안 된다. 너무 안락한 나머지 고래를 보겠다는 마음을 까먹고 그냥 잠들어버릴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어여쁜 분홍색 장미의 유혹에 취해서도 안 된다. 고래를 너무 멀리 있고, 그래서 고래를 보겠다는 마음을 잊어버리고 당장 내 눈 앞에 있는 너무나 매혹적인 것에 새로이 빠지기 쉽다. 게다가 그 유혹이 자기 외에 다른 것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집착적이고 강력한 것이라면 더욱 더 말이다.


그 다음엔 지나가는 작은 배와 큰 배에 현혹되선 안 된다고 나오는데, 이게 고래를 쉽게 볼 수 있는 크고 작은 기회를 말하는 건 아닐까 싶다. 내 힘으로 가장 가까이서 고래를 볼 수 있는 진짜 기회 말고, 남이 제공하는 수단으로 쉽게 빨리 멀리서 대충 볼 수도 있는 그런 기회 말이다. 오~ 이게 진짜 빠지기 쉬운 유혹 같다. 건강해지려면 계단을 직접 올라가야 하는데, 에스컬레이터를 타라고 옆에서 유혹하는 기분? 혹은 내 발로 열심히 걸어야 하는데, 무빙을 타고 빨리 지나가자고 유혹당하는 기분이랄까?


펠리컨이나 초록색 벌레에 시선이 가는 것도 경계하라고 나오는데, 이건 터무니없이 큰 꿈을 품고 사느니, 그냥 내 주변에 있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작은 것에 만족하라는 얘기처럼 들린다. 꿈이란 꾸기보다 지키기가 더 어려운 것이라는 게 확실히 느껴진다. 주변에 유혹이 너무 많고, 내 마음이 약해지면 그보다 못한 것에 안주해버리기도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래 구름이 나온다. 태양도. 이건 하늘 위에 있는 것들이다. 있는 것 같지만 금방 사라지는 것들, 시간이 지나면 변하는 것들이다. 고래는 바다 속에 있다. 하늘을 보느라 바다에서 눈을 떼면 안 된다. 이건 ‘방향’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 같다.


어쨌든 이 모든 험난한 과정들이 말해주는 것은 단 하나다. 고래를 보고 싶거든 바다에서 눈을 떼지 말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라는 것. 이 그림책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은 소년이 탄 배 밑으로 고래가 나타났을 때이다. 이게 바로 인생에서의 깔딱 고개이다. 이미 내가 바라던 것이 내 근처에 와 있는데, 나만 아직 모르고 있는 순간. 등산을 하면서 이제 정상에 거의 다 다다랐는데, 나는 정상이 보이지 않아 지쳐서 포기할까 말까 망설이는 지점 말이다. 이때 조금만 더 기다리면 고래가 내 눈 앞에 얼굴을 드러낸다. 하지만 우리는 기다림에 지치고 지친 나머지, 그 순간 배를 돌릴 수도 있는 것이다. 아... 기다리면 고래가 꼭 나타난다는 확신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을 텐데. 그 약속은 우리에게 주어진 확실한 것일까? 아무리 기다려도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은 혹시 마지막 순간에 포기했던 사람들이 우리도 못 얻게 하려고 말해주는 거짓말이 아닐까? 비가 내일 때까지 기우제를 했던 종족은 결국 비를 보지 않았던가? 그런 약속이 있건 없건 간에, 내가 원하는 걸 이룰 때까지 계속 하면 무조건 되는 거 아닐까?


고래가 있다는 믿음. 고래를 볼 수 있다는 믿음. 고래를 보고야 말겠다는 각오. 그리고 고래를 보기까지 필요한 측정할 수 없는 시간을 감수하겠다는 의지. 그리고 바다에 들어가 기다리는 자세. 정말이지 이것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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