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가리가 펠리컨을 집으로 초대한다. 왜가리는 펠리컨에게 차를 대접한다. 그러자 펠리컨이 이렇게 말한다. “초대해줘서 고마워. 난 지금까지 한 번도 초대받은 적이 없었거든.” 그 말을 들은 왜가리가 그 사실에 의아해하면서, 동시에 초대하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차에 넣을 설탕을 내민다. 그러자 펠리컨은 설탕의 절반은 찻잔에 넣고, 나머지는 마룻바닥에 쏟아버린다. 우유를 줘도 쏟아버리고, 쿠키 부스러기도 여기저기 흘리고, 심지어 식탁보로 입을 쓱쓱 닦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왜가리는 다시는 펠리컨을 초대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한다.
펠리컨은 자신의 식탁 예절이라는 것에 대해 전혀 자각이 없는 상태이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아예 식탁 예절이라는 걸 못 배웠을 수도 있고, 예절 따위는 알면서도 거추장스러워서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막 하는 걸 수도 있고, 아니면 친구 집에 처음 오다 보니 긴장해서 실수를 연발한 것일 수도 있겠지. 어쨌거나 그러한 일련의 행동들은 펠리컨을 또 초대하고 싶은 마음을 싹 사라지게 만들어버린다. 어느 누구도 그렇게 지저분하고 무례하게 먹는 사람을 또 초대하고 싶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펠리컨은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 자기의 어떤 행동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거부하고 싶게 만드는 건지 상상도 못 한다. 펠리컨이 아는 것이라곤, 1. 아무도 나를 초대하지 않는다. 2. 내겐 친구가 하나도 없다. 3.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도 날 불러주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사람들이 초대해주지 않고, 불러주지 않고, 친구가 되어주지 않는 원인이 바로 펠리컨의 행동 때문인데, 정작 펠리컨은 자신의 행동이 비호감이라는 것은 모르고, 그저 야박한 사람들을 원망할 뿐이다.
이때, 펠리컨의 태도가 굉장히 중요하다. 사람들이 자길 왜 싫어하는지에 대해 궁금하고 고민이 된다면, 물어봤어야 한다. 자기가 겪고 있는 곤란을 인정하고, 또한 그 이유를 몰라서 답답하다는 걸 인정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달라고 하거나, 어떻게 하면 되는지 도움을 청했어야 한다. 만약 그런 펠리컨의 태도가 진실된 것 같고, 정말 뭘 몰라서 저러는 것 같다면, 아마도 친구들이 펠리컨을 위해 조심스럽게 한두 마디는 조언을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처음에야 조금 충격을 받고 놀라고 기분도 나쁘겠지만,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게 친구에게 초대받는 것이라면, 그 목표를 위해 자신의 행동을 수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행동이나 태도의 문제라는 건 전혀 모른 채로, 저렇게 남 탓만 계속 하고 있는다면, 아무도 그에게 진실을 알려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펠리컨 같은 인물은 그저 피하는 게 상책이기 때문이다. 말해봤자 내 입만 아플 게 뻔하고, 자칫하면 욕먹기 쉽겠다는 인상이 들면 아무도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진실을 말해주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펠리컨은 끝까지 문제가 뭔지 알 수가 없게 된다.
모두가 나를 피한다면 그 이유는 아마도 나 자신한테 있을 확률이 크다. 왜냐하면 그 모든 사람이 다 나쁜 사람일 확률이 매우 희박하기 때문이다. 한두 명이 나를 피한다면 그건 그들의 문제일 거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만나는 족족 다 나를 피한다? 그럼 반드시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나쁘다고 생각할 바에는 차라리 남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쪽을 선택하곤 한다. 왜? 내가 잘못된 거라면 힘들게 고쳐야 하지만, 남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면 그냥 욕하고 말면 되기 때문이다. 노력할 필요도 없고 훨씬 쉬우니까. 그래서 점점 더 자기 성찰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이렇게 얘기하면 또 자책하기 잘하는 사람들은 ‘그래, 모든 것은 다 내 잘못이야...’ 이러면서 지하실로 들어가곤 하는데, 이것 또한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래서 감정적이지 말고 이성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분별이다.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할 줄 아는 분별의 지혜가 필요하다. 감정적으로 치우치지 말고, 그저 쉬운 길만 찾지도 말고,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남 탓은 나를 먼저 돌아본 후에 해도 늦지 않는다. 그리고 남의 마음은 절대 알기 어렵지만, 내 마음은 들여다보려고만 하면 훨씬 더 잘 알 수 있다.
우리는 내 마음을 보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잘 모르겠어’만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실은 내 마음속에 무엇이 있을지 두려워서 그런 것이다. 혹은 내 마음을 들여다 본 결과, 내 잘못이라는 결론이 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못 믿기 때문에. 물론 어떤 경우에는 정말로 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남이 잘못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건 그들의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일단 나를 먼저 살피는 것이 선행되면 좋을 것 같다. 자책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자기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나서, 상황을 판단하면 좋다는 얘기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것만큼 꼴불견이 없다. 자기 자신도 모르면서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얘긴지 참 무모하게 보일 때가 많다. 이 세상은 그저 내 몸 하나, 나 하나 믿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상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