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프고, 에너지가 떨어졌을 때,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삶의 우선 순위를 정하는 일이다.
몸이 건강하고, 에너지가 충만할 때야, 하고 싶은 건 뭐든 다 할 수 있지만,
몸이 약해지면 그럴 수 없게 된다.
그런 면에서 피로나 통증 등을 통해 몸으로 오는 신호는 언제나,
'잠시 멈춰서 생각할 게 있다'는 의미인 경우가 많다.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삶의 우선 순위를 정할 때,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분별하는 일이다.
그런데 나처럼 모든 걸 잘 하려고, 엄청 열심히 하는 스타일의 인간들은 항상 그게 쥐약이다.
궁극적으로 내가 할 수 없는 일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 더 더 더 열심히 노력하면, 결국엔 다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근거없는 자신감, 내지는 근거없는 멍청함이 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 중엔 '내가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일'들이 꽤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것까지도 어떻게든 해내려고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부모님께 영화를 보여드리는 일 같은 경우만 해도 그렇다.
나는 부모님이 오랜만에 영화 관람을 하러 나가시는 일이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기만을 원한다.
그래서 그렇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1) 평도 좋고, 재미도 있는, 부모님이 좋아하실 법한 영화를 고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2) 교통편도 제일 편리하고, 분위기가 제일 좋은 영화관에, 제일 좋은 좌석을 예약해 드리려고 한다.
3) 그리고 영화 보고 나오시면, 가시기 편한 곳에 있는, 맛있는 식당을 예약해 드리려고 한다.
하지만 언제나 '내가 어쩔 수 없는 변수'들이 꼭 생기곤 했다.
1) 평도 좋고, 재미도 있고, 다들 좋다고 하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엄마, 아빠 취향에 안 맞는 경우가 있었다.
2) 그 날 따라 지하철에 사람이 많아서 가시느라 고생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3) 부모님 옆 자리에 극장 예절이 없는 사람들이 앉는 바람에 부모님이 피해를 본 경우도 있었고,
4) 식당에서 음식이 맛이 없거나, 서비스가 나빠서 기분이 상하시는 일도 있었다.
이 중에 그 어떤 것도 내가 막을 수 없는 일들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모님이 즐거운 시간을 갖지 못한 것이 내 탓이라고 생각해서 죄책감을 느꼈다.
도대체 나는 왜 이러는 걸까?
그냥 세상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것을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째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더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걸 '교만'이라고 해야 할까? 내 한계를 모르고, 나는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
아니면 '무지'?
손가락 근육이 아직 세밀하게 발달하지 않은 2살 짜리 어린 아이가,
5살 짜리 언니처럼 가위질을 할 수 없다는 것에 짜증을 내고 속상해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직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모르기 때문이다.
자기의 한계를 몰라서. 무지해서.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심리학자 데이비드 리코가 쓴 "절대로 바꿀 수 없는 다섯 가지" 책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1.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고 때가 되면 끝난다.
2.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3. 세상은 불공평하다.
4. 고통은 삶의 일부다.
5. 사람들은 항상 사랑스럽고 충실하지는 않다.
=> 이 다섯 가지는 우리가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인생 조건>들이다.
이걸 알면,
아니, 아는 걸로 그치지 말고, 이걸 진심으로 수용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나는 스스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핑계를 댈까봐 두려워하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거야."라는 말에 담겨있는,
뭔가 패배적인 뉘앙스가 싫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냥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거 자체가 싫은 것일지도.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리가 터져나가려 할 때,
이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소녀"를 읽었다.
어린 소녀가 눈밭에서 우연히 만난 길 잃은 늑대 새끼를,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늑대 무리에게로 데려가는 이야기...
늑대 새끼를 늑대 무리에게 데려다주는 일은,
소녀에게 '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을까?
아마 '해보기 전에는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을 거다.
그렇구나.
난 지금껏 자리에 앉아서 내내 머리만 굴리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고, 할 수 없는 일은 뭔지 알아내려고.
하지만 그 둘을 분별하는 지혜는, 일단 그 일을 해봐야 알 수 있다.
하다 보면 느낌이 확연하게 올 것이다.
그때 결정하면 된다.
쳇.
괜히 고민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