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도에 개봉했었던 영화 '어거스트 러쉬'를 다시 보았다.
분명히 극장에서 봤던 영화이고,
이 포스터 모양의 전단지를 극장에서 집어들었던 것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어째서 내용은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기만 한지... 쩝. (까마귀 고기를 잡수셨나... 민영... --a)
암튼 전체적으로 현대판 '올리버 트위스트' 같은 내용에, '음악'이라는 요소를 추가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지금은 세상에 없는 로빈 윌리엄스를 다시 보는 느낌이 참 쓸쓸했고,
그의 선함과 악함이 교차되는 눈빛이 '위저드'라는 캐릭터를 더 복합적으로 만든 것 같다.
이 영화에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인생은 어디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이 된다'는 것이다.
즉, 사람과의 인연이 삶의 향방을 크게 바꾼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에반이 고아원에서 입양 아동 보호사인 제프리스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에반이 고아원을 탈출한 후, 길에서 과일 장수의 트럭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에반이 뉴욕에서 길을 잃고 헤매일 때, 기타 치는 소년 아서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에번이 음악 앵벌이(?) 두목 위저드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에반이 교회에서 흑인 꼬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흑인 목사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리고 애초에 에반의 아빠와 엄마가 파티장 옥상에서 만나지 못 했더라면?
이 모든 경우에서 다른 사람을 만났더라면, 에반의 인생은 무척 달라졌을 것이다.
결국 에반의 인생은 저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직조된 카페트의 모양인 셈이다.
어디서 누구를 만나느냐,
그것은 우연이면서 동시에 필연이며, 타이밍이면서 동시에 인연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침대에 누워 나의 인생에서 만난 수많은 인연들을 떠올려보았다.
내 인생도 에반의 인생과 똑같았다.
그때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별처럼 많았던 스쳐간 인연들이 다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내 인생에서 그들의 역할을 하고 사라진 것이다.
그 중엔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도 있었고, 명백한 은인들도 있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 외에도 이 영화는 믿음(faith)에 대한 영화인 것 같다.
이 세상은 자기가 믿는 대로 되게끔 만들어져 있다는 말도 있듯이,
이 영화는, 에반의 삶은, 그가 굳게 믿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몰랐겠지만, 결국 그의 믿음은 현실화되었다.
믿음이 강할수록 이처럼 그저 꿈처럼 느껴지는 소망도 현실이 되곤 한다.
예전 같았으면 "이거 완전 판타지 영화잖아! 애랑 부모를 만나게 해주려고 아주 우연과 억지로 떡칠을
했구만!" 이렇게 평가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근데 지금은 다르다.
에반의 한결 같은 믿음이 얼마나 굳건했는지, 그게 진짜 대단하게 느껴졌다.
누구나 소망은 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안 될 거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에반은 그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의 음악이 부모를 끌어올 거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의심 없이 순수한 믿음은 현실을 바꾸는 가장 큰 힘인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이거였다.
에반 : (우주의 음악은) 몇몇 사람만 들을 수 있는 거군요?
위저드 : 몇몇 사람만 귀를 기울이지.
우리는 걸핏하면 재능 핑계를 대곤 한다.
에반은 특별한 재능이 있으니까 훌륭한 것이고, 우리는 그런 재능이 없으니까 그저 요 모양 요 꼴이라고.
모든 것은 신이 에반한테는 재능을 주고, 나한테는 안 줘서 그런 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만약 그게 아니라면?
우주의 음악은 그저 귀 기울이는 모든 자에게 들리도록 세팅이 되어 있는 건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귀담아 들으려는 생각조차 안 할 때,
에반은 그저 귀 기울여 들었을 뿐이라면?
나는 안 될 거라는 믿음 만큼 무서운 게 세상에 없다.
왜냐하면 정말로 그대로 될 것이기 때문에...
영화 '어거스트 러쉬'는 내게 그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