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 개봉했던 영화 '원더'는 요샛말로 '띵언'(명언)이 많아도 너무 많이 나오는 영화다.
처음엔 하나하나 머릿속에 담아놓으려고 용을 쓰다가, 결국엔 그냥 감동하며 흘러가게 둘 수밖에 없다.
근데 원래 인생이 그렇지 않나? 잡으려고 할수록 잡히지 않고, 그저 따라 흘러갈 수밖에 없는 것?
이 영화를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는 이 집 맏딸인 '비아'에게 가장 감정이입이 잘 됐었다.
장애를 가진 동생이 있기에, 당연하게 관심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부모의 당연한 관심을 요구할 때조차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는,
아무리 서럽고 힘들어도 동생 앞에서 매번 그 아픔의 크기가 축소될 수밖에 없는 비아가 마음 아팠었다.
그런데 오늘 다시 본 이 영화에서는, 모든 캐릭터들의 사연이 다 눈에 들어온다.
어기는 어기대로 힘들고,
어기 엄마는 어기 엄마대로 힘들고,
어기 누나, 비아도 비아 나름대로 힘들고,
어기 누나 친구, 미란다도 그 나름의 이유로 힘들고,
어기 친구 잭 윌도 그만의 사연이 있다.
심지어 어기를 괴롭히는 줄리안조차 그만의 괴로움이 있다.
다들 서로가 가진 것, 자기에게 없는 것을 부러워하고,
자신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뭔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괴로워한다.
서로의 눈에 비쳐치는 자신의 멋진 모습을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행복해질 수 있다.
어떻게?
여전히 불만족스럽고, 결핍이 있고, 바라는 걸 얻을 수 없는 경우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가진 것에 감사할 수 있으면,
서로의 진심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으면,
오해와 억측으로 뒤틀린 관계를 용기내어 다시 회복할 수 있으면,
무엇보다도 서로의 곁에서 함께 기뻐하고, 응원해줄 수 있으면 말이다.
우린 낯선 것을 배척한다. 왜? 잘 모르니까.
하지만 익숙해지면 괜찮아진다. 왜? 조금씩 더 많이 알게 됐으니까.
모르는 것은 우리에게 공포를 유발한다.
그럴 때 무조건 피하는 게 아니라, 다가가서 알려는 노력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으면 참 좋겠다.
마지막 장면에서 어기가 모든 사람들의 위대한 점(원더)을 하나씩 말할 때,
자신의 엄마에 대해선 이렇게 말한다.
"엄마는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는다. 특히 나를."
나에게도 그런 엄마가 있다.
엄마의 포기하지 않는 그런 면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고,
내 책 '마음이 하찮니'에 챕터 하나를 다 엄마 얘기로 채울 만큼 사연도 많았지만...
그런 엄마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인정.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