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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쌤 Oct 04. 2021

3) 영화 "마이크로코스모스"를 다시 보다.

다큐멘터리 영화 "마이크로코스모스" (1996. 12. 7. 개봉)

감독 : 클로드 누리드사니, 마리 페렌노우

나레이션 :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자크 페렝



* 1996. 12. 21. (토) 11:00 코아아트홀, 혼자서


맨 앞자리에 다리 쭉 뻗고 앉아서 봤다.

입이 따악~~~ 벌어지더군.


물방울이 왕왕 커져서는, 개미 둘이서 그걸 한 방울 먹는데도 한참 걸리고,

비가 오니까 풀잎에 있던 무당벌레가 튕겨나가는 그 위력이란!

그러나... 잎 하나에 들러붙은 수많은 노란 송충이들과 화면의 좌측에서 우측으로 천천히 이동하는 지렁이를 보고 있노라니, 먹고 있는 빵이 도저히 넘어가지가 않아... 으우웨엑!!!!


모기가 무슨 왕이나 되듯 천천히 알에서 깨어나는 모습은 정말 위엄있고, 장엄했고,

달팽이의 러브씬은 기대했던 것만큼 무지 야했다!

벌이 꿀을 빨자 수술들이 벌 뒤에다 슬쩍 슬쩍 화분을 묻히는 장면은 끝내줬고,

새가 개미를 콕콕, 아니 쿠왕쿠왕 잡아먹을 때의 그 소리는 어찌나 소름끼치고 무섭던지!

개미들이 자기네 굴에다 차곡차곡 음식을 모아두는 건 정말 대단하다.

정말 아무 생각도 없이 부지런하기만 한 놈들이다.

그리고 우리의 호프, 쇠똥구리! 그 불굴의 투지에 정말 박수를! 정말 대단한 놈이다.


그 외에도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테니 이 정도로 해둔다.

약간 졸렸던 점은 인정한다.

그리고 꼬마애들이 어찌나 떠들어대는지 엄청 어수선했다는 점도.

하지만 애들이 솔직하게 내뱉는 감탄들에 동감하고,

그들의 해박한 자연 지식 덕택에 소금쟁이니, 물방개니 하는 분류에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미워하진 않기로 했다.


아주 좋은, 썩 훌륭한 다큐멘터리인 것은 틀림없지만,

극장용으로 6,000원씩 주고 보기엔 (물론 난 5,000원 주고 봤지만) 좀 지루하고 짧은 것 같다.


아무튼 그 거대한 비에, 그 거대한 물방울에 가슴 적시며,

오랜만에 아이들과 깨끗하고 소박한 마음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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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0월 4일 (월) 오전 9시 반, 집에서 혼자



1996년에 개봉했던 다큐멘터리 영화 "마이크로코스모스"를 다시 보았다. 


당시 종로에 있었던 예술영화 전용극장 코아 아트홀 맨 앞줄에서, 

바닥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아서 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 눈 앞 커다란 스크린으로 거대한 지렁이가 꿈틀거리며 한 없이 지나가던 것이 아주 충격적이었지. 


초원에 서식하는 작은 생명체들을 초근접 촬영한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자니, 

어느 생명 하나 편하게 생존하는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들 살기 위해 쉬지 않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개미도, 꿀벌도, 쇠똥구리도, 거미도...


그리고 생존 경쟁은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완전히 랜덤이라는 게 느껴졌다.

우리는 좀 더 도덕적이고,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 살아남길 원하지만, 

독수리가 개미굴에서 개미들을 콕콕 집어먹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나쁜 개미만 골라 먹는 게 아니라는 게 명백해진다. 

그냥 먹는 거다. 아무나. 닥치는 대로. ㅠ.ㅠ


그리고 우리가 동물은 움직이고, 식물은 안 움직이는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웬걸! 

벌이 꽃 속 깊이 대롱을 꽂고 꿀을 빨아들이는 동안,

꽃술이 스르륵 내려와서 정신없는 벌의 날개와 꽁무니에다가 꽃가루를 슥슥 묻히는 장면은 정말이지, 대박이다! 

누가 식물이 못 움직인데!!! (파리지옥, 끈끈이 주걱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가하면 장수풍뎅이(사슴벌레?)는 곤충계의 코뿔소라는 걸 확실히 느꼈다.

마이크로코스모스 세계에선 그들의 철갑옷이 얼마나 단단하고 두꺼워보이는지 모른다. 

와우! 진짜 강해 보이더라. 


마지막으로 초원에 비가 내리자, 

우리에겐 빗방울인 것이, 곤충들에겐 거의 수소폭탄급 파괴력을 끼치는 것을 보면서, 

아... 똑같은 비바람이어도 몸집이 작을 수록, 약한 존재일수록 체감하는 강도가 다르겠구나 하는 당연한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것만큼 남도 느낄 거라는 착각을 버리고, 항상 약자의 입장에서 얼마나 큰 타격일지 먼저 살피는 마음이 필요할 것 같다. 


마이크로코스모스의 세계는 보석 그 자체였다.

물방울 하나가 보석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벌레의 등껍질이 보석이고,

나비의 날개와 털들이 보석이고, 

잠자리의 눈이 다 보석이더라. 


그 아름다움에 입을 딱 벌리고, 온 몸에 소름이 돋아가며 본 1시간의 체험이었다. 

생명을 경시하는, 자신의 존재를 하찮게 여기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다시 보고 싶어지는 영화였다. 


작가의 이전글 2) 영화 '제인 에어'를 다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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