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짓기를 무척 좋아하는 할머니가 있었다.
이 할머니는 자동차에도, 침대에도, 소파에도, 집에도 이름을 지어주었다.
하지만 이름을 지을 때 반드시 지키는 원칙이 있었다.
바로 자기 자신보다 오래 살 것들에게만 이름을 붙여준다는 것.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 집에 떠돌이 강아지 한 마리가 찾아온다.
할머니는 배고파 하는 그 강아지가 눈에 밟혀 매번 먹을 것을 챙겨주지만, 결코 이름을 붙여주진 않는다.
자신이 강아지보다 오래 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매순간 선택을 하면서 산다.
뭘 먹을지, 뭘 할지, 어디에 갈지, 누구를 만날지, 그리고 상대방을 어떻게 대할지...
그런데 의외로 그 선택이 두려움에 의한 것일 때가 많다.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좋은 기회가 와도 포기하는 걸 선택하고,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 두렵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하지 않는 걸 선택하고,
욕을 먹는 게 두렵기 때문에,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기를 선택하고,
새로운, 안 해 본 일을 하는 게 두렵기 때문에, 하던 것만 하기로 선택한다.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내 상황과는 상관없이 남들 하는 건 무조건 다 따라하길 선택하고,
내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그냥 타인의 결정에 순응하길 선택하고,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어떻게든 아는 척 하기를 선택한다.
오늘 나의 선택 중에서 두려움 때문에 한 선택이 뭐가 있었는지를 생각해본다.
1) 교재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난 제본의 종류이며, 규격이며, 종이 질 같은 걸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잘 모르는 걸 해야 한다는 게 무서워서, 교재 인쇄 작업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기로 선택했다.
=> 좀 겁이 나도, 이번에 직접 인쇄소에 갔더라면, 내가 모르는 것들에 대해 배울 수 있었을텐데...
두려움 때문에 하지 않기로 선택했으므로,
나는 앞으로도 계속 그 일에 대해 모른 채로 남아있을 것이다.
2) 삐아제 강의 준비 때문에 빨리 책을 읽고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 공부 말고 '그림책에 나를 비춰보다' 글을 쓰기로 선택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그림책에 나를 비춰보다' 시리즈를 너무 오랫동안 안 쓰고 있었기 때문에... 였지만,
사실은 지난번에 살짝 삐아제 공부를 해봤더니,
수학이니 논리학이니, 내가 무서워하는 게 많이 나온다는 걸 알고서,
제대로 공부를 시작하는 게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 두려움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한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분명히 마감날이 임박해서야, 급해서 허겁지겁 작업하다가 성에 차지 않는 결과물을 내놓게 될 것이다.
안다.
다 알지만, 그래도 두렵기 때문에,
일단은 당장 덜 두려운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이게 바로 회피다.
내 삶에 대한 회피.
어느 날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에게 사건이 하나 생긴다.
매일 오던 강아지가 사라진 것이다.
할머니는 너무 걱정이 되서 백방으로 수소문 하지만, 이름도 없는 개를 찾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할머니는 그제서야 사랑하는 개가 자기보다 먼저 죽는 게 두려워서, 이름조차 붙여주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
그리고 떠돌이 개들을 보호하는 사육장으로 가서 그 개를 찾아와 '러키'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함께 산다.
내가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삶의 모든 순간들에서 회피를 선택한다면,
삶은 이렇듯 도저히 회피할 수 없는 순간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마치 "이래도 안 할래?"라고 묻듯이.
왜냐하면 삶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끊임없는 변화와 성장, 그리고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남는 것은 우리의 선택 뿐이다.
두려움으로 인한 선택을 할 것인가, 아니면 변화와 성장, 사랑을 위한 선택을 할 것인가?
이 글을 올리고나서, 바로 삐아제 공부를 시작해야겠다.
군소리 하지 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