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에 나를 비춰보다"-(14) 하늘을 나는 사자

by 마하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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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미 이치로가 쓴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이라는 책을 읽던 중에,

이런 구절을 보았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으려면 요청해야 한다. 자신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으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면 도움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사람의 선의에 달린 것이지 의무는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의 마음을 미리 알아주고 배려해주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한 자신의 생각은 타인에게 전해질 수 없다. 잠자코 있으면 아무도 협력해주지 않는다. 만약 다른 사람의 협력이 필요하다면 분명한 언어로 그 뜻을 올바르게 전해야 한다."

이 중에서도 더 와닿는 구절은,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의 마음을 미리 알아주고 배려해주기를 기대한다'는 부분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꽂히는 단어는, 바로 '배려'였다.

기시미 이치로가 말하길,

우리는 흔히 '배려'를 '주장하지 않아도 알아주고, 부탁하지 않아도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가 남에게 기대하는 '배려'란 것의 실체는, 사실은 '독심술'이다.

말하지 않았는데도 내 마음을 읽어내고,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내가가슴 깊이 원했던 바로 그것을 딱 해주는 것.

이건 거의 마술이나 마법에 해당하는, 혹은 X-맨들이나 가질 법한 초능력에 가까운 능력이다.

우리는 그런 어마어마한 것을매일의 일상 속에서, 내 주변의 평범한타인들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요구한다.

거기에다가 '사랑'이라는 모호한 개념까지 덧붙여서 말이다.

'가족이라면 당연히 내가 뭘 생각하고, 뭘 느끼고, 뭘 원하는진 알아야지!'

'남친/여친이라면 당연히 내 생각과 감정과 욕구 정도는 읽어낼 수 있어야지!'

'진정한 친구라면 그 정도는 당연히 알아야 하고, 당연히 해줘야 하는 거 아냐?'

'정말 날 사랑한다면 말이야!!!!'

더 기가 막힌 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엄청난 능력을 요구하면서,

자기는 그저 작은 마음, 작은 배려를 원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헐..." 소리가 절로 나온다.

사노 요코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하늘을 나는 사자'라는 그림책을 보면,

동네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구해다 바치는 사자가 나온다.

첨엔 그냥 멋있어 보이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고양이들이 사자가 구해온 먹이를 먹는 걸 당연시하게 되면서,

사자는 극도의 피로에 시달리게 된다.

죽을 것 같이 힘들어진 사자는, 드디어 고양이들에게 말을 한다!

"있지, 나는 낮잠을 자는 게 취미야."

아뿔싸. 처음부터 똑바로 확실하게 얘기했으면 좋았을텐데...

사자는 체면 때문인지, 자존심 때문인지, 빙 둘러서 말하길 선택했다.

고양이들이 자기 얘기가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아차려 주길 바라면서.

아니나 다를까, 고양이들은 깔깔깔 웃어대면서, 사자가 농담도 잘 한다고 그냥 넘겨버린다.

이때, 사자는 다시 말했어야 했다.

농담이 아니라고, 진심이라고, 난 정말 힘이 든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자는 그냥 고양이들을 따라 같이웃어버리고 만다.

고양이들은나중에 결국 피곤에 지쳐 쓰러져버린 사자를 보면서도, 배꼽을 잡고 웃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히히히, 진짜 웃겨. 정말 낮잠 자는 줄 알았잖아!"

결국 그 누구의 배려도 받지 못한 사자는 쓰러져 그대로 돌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몇 백년 동안 깨어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던 아기 고양이가 돌이 된 사자를 보고 엄마에게 말한다.

"으음... 사자는 분명 피곤했을 거예요."

그러자 사자가 드디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어흥!"하고 외친다.

'배려'를 기대했으나 배려받지 못했을 때,

우리는 크게 실망하고, 상대방을 원망하고, 그깟 작은 배려조차도 받을 수 없는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사는 게 아니듯이,

타인 또한 나의 기대를 채워주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확실한 언어를 통해 내 주장을 전달하지 않고도 누군가 알아차려주고, 배려해주길 바라는 건,

불가능한 꿈을 꾸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첨될 확률이 천문학적으로 적은 로또에기대를 거는 일이다.

그래도 좋다면 할 수 없지만...

난 지금 당장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길 선택하겠다.

혹시 누군가 지금 나에게 이런 류의 '배려'를 기대하고 있다면, 나는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난 사자처럼 고양이들에게 실망해서 수백 년 동안 돌처럼 마음 문을 닫고 살고 싶은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냥 말하는 게 훠얼~~~~~씬 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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