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에서 그림책을 고를 때도,
내 심리 상태가 무의식적으로 정확하게 반영되는 것 같다.
오늘은 이 책에 자연스럽게 손이 가더라.
왜?
내일과 모레, 이틀 동안 발표해야 할 강의만 3개라서 그거 준비도 해야 하고,
주말엔 꼭 올리기로 스스로에게 약속한 연재도 해야 하고,
그것 때문에 보고 싶은 조카들도 집에 못 놀러오게 해야 하고,
그러다보니 심정이 너무 복잡해서,
내 얼굴 표정이 딱 저 그림책 표지 같았기 때문이다.
이 그림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어떤 이유로 걱정이 생겼고,
처음엔 좁쌀만한 점 하나 정도였던 걱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지다가,
결국엔 거인만큼 커져서 나를 미치게 만든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 중 한 부분에서 가슴이 찌릿했다.
"아이들은 그 녀석에 대해 묻지 않았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니 엄마도 아무 말 안 했었다."
여기서 그 녀석이란 걱정을 말한다.
주인공은 그 녀석 때문에 온 신경이 다 거기에 쏠려 있고,
점점 더 커지는 그 녀석을 막을 길도 없고, 떼어낼 길도 없어 미쳐버릴 것만 같은데,
그걸 아무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괴롭고 힘든지 아무도 모른다.
내 눈에는 이렇게 잘 보이는 커다란 걱정이,
그들 눈에는 전혀 안 보이는 것이다.
내 딴에는 정말 티를 많이 냈다고 생각하는데도,
어떻게 이게 안 보일 수 있을까 생각을 하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모른다. 안 보이는 모양이다.
그럴 때면 굉장히 섭섭해진다.
어떻게 이걸 모를 수 있지?
내가 이렇게 근심 어린 표정이고, 기분이 다운되어 있고, 버거워서 헉헉대는 모습이 안 보일 수가 있지?
나한테 그 정도로 관심이 없는 건가?
아니면 정말 '자기 코가 석자'라는 얘기처럼, 자기 자신들에게만 관심이 있는 건가?
그러자 문득....
그들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도 자기만의 그 녀석, 걱정과 함께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아빠는 아빠 나름대로,
친구는 친구 나름대로...
다 자기만의 걱정 속에서 살면서,
나를 보며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저 녀석은 내가 이렇게 힘든데, 그것도 모를 수 있지?'
정말 그렇다.
난 지금 세상에서 내 고민, 내 걱정, 내 괴로움이 제일 크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뭔 걱정을 하고 있는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들 재밌게 잘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민영이는 벨리 댄스도 배우고, 그림도 그리고, 한가하게 그림책 연재글도 올리고 있으니까,
강의 준비로 버거워한다거나, 발표 제대로 못 할까봐 심장이 조여올 정도로 겁을 먹고 있다는 건 전혀 모를 것이다.
그리고 내 공부하겠다고, 사랑하는 조카들을 주말에 집에도 못 놀러오게 한 것으로 얼마나 미안해하고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러네.
하나도 섭섭해할 것도 없겠네.
그들도 얼마나 걱정이 많겠어. 그런데 나는 내 코가 석자라, 그런 거 하나도 몰라주고 있잖아. ㅠ.ㅠ
미안해...
이 책에서 말하는 그 녀석을 보내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 녀석과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그 녀석이 왜 나에게 온 건지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다.
나의 그 녀석은, 내가 다른 사람의 평가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왔다.
나의 그 녀석은, 내가 실수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왔다.
나의 그 녀석은, 내가 어떤 일을 맡을 때 차분히 따져보지 않고, 무조건 하겠다고 경솔하게, 쉽게 대답한 것 때문에 왔다.
나의 그 녀석은, 하고 싶은 건 물불 가리지 않고 무조건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내 욕심 때문에 왔다.
나의 그 녀석은,
이제 핸드폰을 손에서 내려놓고, SNS 댓글 확인하는 걸 멈추고,
컴퓨터를 끄고,
조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내려놓고,
애초에 내가 이걸 왜 욕심 많게 한다고 했을까 하는 후회하는 마음도 내려놓고,
책을 펴서 읽기 시작하면,
조용히 사라질 것이다.
이제 그걸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