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에 나를 비춰보다" - (21) 첫 번째 질문

by 마하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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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이 책은 이세 히데코 작가의 그림을 소장하기 위해서 샀다.

일종의 갤러리를 사는 기분?


이세 히데코 작가의 수채화풍의 아련한 그림을 본 순간,

또 '어머, 이 작가의 작품은꼭 사야 돼!'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원화나 작품집을 살 형편은 못 되니, 그림책이라도 다 사놔야겠다는, 뭐 그런 심리?

그러다보니 항상 그림만 보게 되고,

처음부터 끝까지 온갖 질문들로 가득한 글은 대충대충 넘기곤 했었다.

대답해 볼 필요를 전혀 못 느꼈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 아침, 이 그림책에 나온 하나의 질문이 가슴에 콕 박힌다.

"질문과 대답,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쪽인가요?"

질문과 대답 중에서 지금 나에게 더 필요한 건 무엇이냐...

당연히 '대답'이지, 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잘 생각해보면, 답은 내가 이미 알고 있다.

뭘 해야 하는지, 뭘 하면 안 되는지...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과 반대로 행동하고 싶을 때가 있을 뿐.

더 중요한 건 질문이다.

하지만 질문은 피곤하다.

특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에 답을 하는 건 골치 아프다.

매일매일의 현실을 살아가는데 꼭필요한 질문이 아니라면 더더욱 쓸데없이 느껴진다.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나는 그림책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사람이고,

본질적으로 '질문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나조차도 이렇게 질문을 골치아파 하고, 피곤해 하다니!

완전 넌센스 아닌가...

아! 혹시 그래서 내가 돈을 받고 질문을 하는 건가?


내 수업을 신청하는 사람들은 나에게 수강료를 낸다.

그리고 질문을 받는다.

더 나아가 억지로라도 답을 해보기를 요구받는다.

그 과정에서 내가 몰랐던 것들,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이 마구 튀어나온다.

질문에 답을 하면서 나에 대한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질문은 그렇게 돈을 내고서라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도 누군가에게 돈을 내고서라도, 질문을 받아야 할 때는 아닌가?

스스로는 귀찮다고, 피곤하다고, 머리 아프다고꺼려하는 바로 그 질문들을,

나 자신에게 기필코 물어봐야 하는 건 아닐까?


나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무엇을 위해 그렇게 정신없이 살고 있는가?

그렇게 바쁘고, 매일 전전긍긍하면서까지 얻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걸 얻으면 어떻게 되는가?


에...

타인들의 내면의 빛을 살려서, 세상을 더 밝게 만들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없게...

에...

국회의원들 공약 같은, 매우 정답 같은 멘트들이 입가를 맴돌다 만다.

실제로 그런 큰 뜻을 품은 건 사실이나,

지금 내가 하루하루 이렇게 살아가는 모든 동력이 다 그것이라곤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럼 뭐지?

난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이 넓은 세상 속에 나 하나 있을 자리를 만들고 싶어서다.

내 이름과 연결된 나만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서다.

세상 속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확신을 얻고 싶어서다.

여러 사람들에게 "민영이가 없으면 안 돼!"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다.


아휴...

여태 그대로구나, 나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 했다.

내 존재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는 얘길, 수많은 사람들에게 했으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그 행위를 통해 '역시 필요한 존재였어!'라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구나.


가치 있는 사람이 되지 못 할까봐 불안한 마음,

사회 속에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존재 가치가 없어질까봐 두려워하는 마음,

어떻게든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어하는 안간힘,

아직도 나는 그 동력을 기반으로 살고 있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끊임없이 더 나은 길을 모색하는 거,

다 필요한 일이고, 좋은 일이다.

다만 그런 일을 하더라도, 그 근원적인 동력이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이렇게 하지 않았다가는 어떻게 될 지도 모르니까,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이런 거 말고,


그렇게 하는 게 좋으니까,

그렇게 하는 게 즐거우니까,

그렇게 하는 게 나를 행복하게 만드니까,

이런 식으로 말이다.

옛날에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나는 '두려움은 나의 힘'으로 살고 있나보다.


그림책 덕분에 또 한 번 지금의 나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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