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 비" - (23) 성냥팔이 소녀 알뤼메트

by 마하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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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 나를 비춰보다" - (23) 성냥팔이 소녀 알뤼메트



요 며칠 동안 계속 나의 화두는 '도움'이다.


도움을 주는 것과 받는 것에 대해서 생각이 많다.



나는 도움을 주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람이다.


도움을 줄 때는 그것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저 내 상황이 이걸 해줄 수 있나, 없나, 그것만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할 수 있으면, 무조건 돕는다.


그게 좋은 거라고 배웠고, 그럴 수 있는 내가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을 때는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기분이 별로다.


아, 물론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주어지는 누군가의 도움이 감사하지 않다는 얘긴 아니다.


당연히 고맙다.



하지만 내가 '도움을 주는 사람'에서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 위치가 변했다는 사실이 별로 달갑지 않다.


내 마음속에 '도움을 주는 사람'은 항상 '도움을 받는 사람'보다 여러모로 우위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도움'이라는 것을 근거로, 나의 위치가 높냐, 낮냐가 정해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화 '아티스트'에 나오는 조지 발렌타인도 그랬다.


무성 영화 시절 최고의 스타였던 조지 발렌타인은 유성 영화 시절이 도래하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반면, 조지가 관용을 베풀어 준 덕분에 일개 무명 여배우에서 매스컴을 타게 된 페피 밀러는, 나날이 승승장구한다.



페피는 조지에 대한 순수한 사랑으로 그의 뒤에서 몰래 돕는다.


그가 경매로 내놓은 물건을 다 사들이고, 화재로 죽을 뻔한 그를 집으로 데려와 간호해준다.



그러나 바로 그 사랑이 조지의 자존심을 완전히 부숴버린다.


조지에게 페피의 사랑은,


'이젠 내가 너보다 지위가 높아', '이제 넌 내 도움을 받아야 해', '이제 내가 너보다 잘나간다는 사실을 인정해!'


하는 식의 강요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걸 인정하느니 차라리 죽고 싶어질 밖에!



조지는 페피를 사랑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항상 '내가 도움을 줘서 스타가 된 여자'로 남아있어야지,


'나에게 도움을 주는 여자'로 위치가 전복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조지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건, 비단 유성 영화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위치가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 낮아질 수도 있다는 변화에도 적응을 못 했던 거다.



나는 조지의 오만함과 어리석음에 깊이 공감했다.


그게 바로 내 모습이기에.


하지만 어떻게 해야 거기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그때, 그림책 '성냥팔이 소녀 알뤼메트'를 읽게 되었다.


알뤼메트는 가진 거라곤 성냥 몇 개밖에 없는 고아 소녀다.


어느 날, 사는 게 너무도 힘들어진 알뤼메트가 하늘에 대고 간절히 기도한다.


그러자 하늘에서 온갖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11m나 쌓인 수많은 물건들을 가지고,


알뤼메트는 도시의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게 다 나눠준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알뤼메트가 부자가 되자마자 제일 먼저 했던 일이,


바로 '남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라는 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이처럼 '도움을 준다는 것'이 사람의 자존감을 가장 빠르게 높일 수 있는 방법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리적 우위를 점하는 것 말이다.


(딱 나다운 해석이지. ㅋㅋㅋㅋㅋ)



그런데 갑자기 '대가 없는 도움'이라는 단어가 불쑥 떠올랐다.


하늘이 알뤼메트에게 물건들을 쏟아부어 주었을 때,


하늘은 알뤼메트에게 심리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그런 걸까? 혹은 알뤼메트에게 뭔가 대가를 바라고 준 걸까?


전혀 아니다.



그건 알뤼메트도 마찬가지였다.


알뤼메트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물건을 대가 없이 나눠주었을 때,


그건 '이제 내가 니들보다 나아!' 또는 '날 무시했던 것들, 다 내 앞에 와서 꿇어!'

라는 마음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다.


알뤼메트의 마음은 '내가 힘들어봤기 때문에, 당신들 마음을 알아.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알아'일 것이다.



순수한 선의와 순수한 도움, 그리고 순수한 사랑...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그로 인해 어떤 목적을 취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행동들...


어째서 나는 그런 것들을 믿지 못하는 걸까?



도움을 받으면 내가 그 사람보다 밑에 있는 거고,


도움을 받으면 반드시 언젠가 그 대가를 치뤄야 하는 거고,


도대체 이런 망측한 생각들은 언제, 어떻게 나에게 물들게 된 것일까?



성냥팔이 소녀 알뤼메트는 나에게 더 깊은 수준의 질문을 던졌다.


아이구, 머리야...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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