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좋은 점(잠점)도 있고, 나쁜 점(단점)도 있다.
100% 좋기만 한 사람도, 100% 나쁘기만 한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단점은...
몹시 거슬린다.
제발 좀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고,
그것만 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고,
그것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고,
그것만 없으면 딱 좋은데 하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바로 누군가의 단점이다.
상대방의 치명적인 단점을 수용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강가에 사는 검피 아저씨는 배를 가지고 있다.
그가 배를 끌고 강으로 나오자, 동네 꼬마들이 따라와 묻는다.
"우리도 따라가도 돼요?"
그러자 검피 아저씨가 대답한다.
"그러렴. 둘이 싸우지만 않는다면."
동네 꼬마들은 귀엽다.
하지만 이들은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걸핏하면 둘이서 싸우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피 아저씨는 동네 꼬마들을 배에 태웠다.
나는 그것이 비극의 씨앗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치명적인 단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아이들을 허용한 것 말이다.
검피 아저씨는 실수한 것이다.
그런데 꼬마 아이들로도 모자라, 검피 아저씨는 배에 타기 원하는 동물들을 연달아 태운다.
각종 단점을 지닌 동물들(고양이, 토끼, 개, 돼지, 양, 송아지, 닭, 염소)이 전부 올라탄다.
이쯤 되면 내가 보기에 검피 아저씨는 우유부단의 극치, 거절 못하는 바보일 뿐이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그들은 검피 아저씨가 하지 말라고 경고했던 짓을 모두 하기 시작하고,
결국 배는 뒤집힌다.
거봐, 거봐, 내가 그랬잖아!
단점이 뭔지 뻔히 알면서도 받아들이는 건, 미친 짓이라고!!!
그런데 검피 아저씨는 물에 빠진 그들을 집으로 데려와 따뜻한 차를 먹이고,
그것도 모자라 헤어질 때 이렇게 말한다.
"잘 가거라. 다음에 또 배 타러 오렴."
아...
검피 아저씨는 인간이 아니었구나.
검피 아저씨는 성인군자였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그림책을 다시 처음부터 읽어보았다.
아이들과 동물들이 배에 올라타길 청할 때마다 검피 아저씨가 내건 조건들,
서로 싸우지만 않는다면,
뒷발질만 하지 않는다면,
배를 더럽히지만 않는다면,
퍼덕거리지만 않는다면...
이 조건들은 전부 각 동물들의 고유한 특징들이다.
싸우는 게 애들이고, 뒷발질하는 게 염소이고, 더러운 게 돼지고, 퍼덕거리는 게 닭인 것이다.
어린 애들이 전혀 싸우지도 않고 얌전하기만 하다면, 오히려 병원에 데려가서 이상이 없는지 확인해야 하고,
염소가 뒷발질을 안 하면, 다리에 문제가 있는 건지 확인해야 하고,
돼지가 깨끗한 걸 좋아한다면, 방송국에서 취재나올 일이고,
닭이 퍼덕거리지 않는다면, 날개를 점검해봐야 한다.
이런 생각은 전에는 한 번도 못 해봤는데,
토끼, 개, 돼지, 양, 닭, 소...
고양이랑 염소 정도만 빼면, 다 인간의 띠 아닌가?
토끼띠, 개띠, 돼지띠, 양띠, 닭띠, 소띠...
이 그림책을 쓴 존 버닝햄이 동양의 띠까지 의도했을 리는 없을 것 같지만,
이게 결코 동물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는 건 명확하다.
단점이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단점 자체가 고유한 특징인 사람들,
이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말해주는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진다.
2018년이 이제 일주일 남짓 남았다.
2019년에도 나는 수많은 단점투성이인 사람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 나도 검피 아저씨처럼 설령 배가 뒤집히는 한이 있어도,
차를 대접하고, "또 놀자"라고 얘기할 수 있는, 그릇이 큰 사람이 되고 싶다.
왜냐하면...
검피 아저씨라면, 나의 단점을 알면서도 배에 태워줬을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