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비" - (25) 내 말 좀 들어주세요, 제발

by 마하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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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 나를 비춰보다" - (25) 내 말 좀 들어주세요, 제발


'그림책에 나를 비춰보다' 시리즈 중에서 23번째로 올렸던 '성냥팔이 소녀 알뤼메트'에 대한 글에,

어떤 분이 이렇게 댓글을 달아주셨다.


'내가 누군가를 도왔다고 생각했을 때, 그게 정말 상대에게 도움이 되었을까요...

상대 입장에서 다를 수 있을 거 같아요."


맞는 얘기다.

'내 생각'에 상대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 것,

'내 기준'에서 가장 좋은 것을 상대에게 준 것이지,

그게 상대도 원하는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은 아닐 확률이 훠~~~~~얼씬 높다.



곰이 말했다.

"저에게 문제가 조금 있어요. 그게 뭐냐면..."


그러자

모자 가게 주인은 모자를 주고,

의사는 약을 주고,

신발 가게 주인은 장화를 주고,

노점상은 행운의 목걸이를 주고...


아무도 곰에게 그의 문제가 뭔지 묻지 않았다.

척 보면 안다는 것이다.

그들은 곰이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순간, 이미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이 뭔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게 바로 곰이 원하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와~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남 얘기처럼 보면,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아니, 문제가 있다고 왔으면, 무슨 문제인지부터 묻는 게 너무너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런데 내 경우로 생각해보면 이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나에게 마음보충수업을 요청한 제자들이 왔을 때,

나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바로바로 생각한다.

애착이 문제인가? 잘못된 신념이 문제인가? 어릴적 트라우마가 문제인가? 사회적 관심이 떨어지나?

이 모든 것은 내가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배운 것들이다.

난 이들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꽂힌 나머지,

내가 아는 지식과 경험을 총 동원해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의 고민이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 한다.

급기야는 그들이 뭔 말을 해도, 내가 아는 틀에 끼워맞춰서 그건 이런 거라고 해석까지 해준다.

그들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을 때면,

'아, 저 아이는 아직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저항하는 중이구나.'라고 생각해버린다.


헐... ㅠ.ㅠ

오류도 이런 오류가 없다.

말하다 보니 너무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다. (정말 미안하다, 얘들아... OTL)



거기서 끝인 줄 알았다.

이 그림책을 읽고 나서 '다음에는 꼭 어떤 문제가 있는지부터 차분히 들어야지!'

'내 생각으로 먼저 판단하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하는 걸로 다 된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림책을 덮으려다가,

곰이 사람들에게 받은 것을 하나하나 풀밭 위에 내려놓는 장면을 보았다.

어? 그러고 보니 이 사람들은 모두 곰에게 자기가 가진 것을 그냥 주었구나!

그들 중 아무도 곰에게 돈을 받고 판 사람은 없었다.

곰이 문제가 있다고 하니, 그에게 필요할 거라고 생각한 것들을 거저 준 것이다.


그것이 비록 곰이 원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했다.

곰이 원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곰의 소망은 여전히 충족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여기서 곰이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도 꽤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다들 내 얘긴 들어보지도 않고, 쓸데없는 것만 주었어. 쳇! 사람들은 나에겐 관심도 없어.'라고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내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내 고민에 무언가 도움을 주려고 했어.'라고 생각할 것인가?



여기서 또 나에게 비추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난 선물 받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들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을 주기 때문이다.

자기들한테 좋았던 책, 자기들한테 잘 맞았던 화장품, 자기들이 유용하게 잘 썼던 어떤 도구들...

이런 것들을 나름 이미 검증된 것이라는 이유로 주곤 하는데,

나는 그게 솔직히 하나도 달갑지 않았다.

집에 가져와 봐야 쓰지도 않고 먼지만 쌓여갈 게 뻔하니까, 그런 걸 받으면 짜증부터 났다.

차라리 돈으로 주던가, 문화상품권 같은 걸로 주지, 하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물론 그래도 선물 준 사람을 생각해서, "와아~ 고마워~!"라고 말하긴 하지만 말이다.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들의 마음과 정성, 성의를 너무 하찮게 여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이 나에게 표현하려고 했던 사랑의 가치를 너무 폄하했었다.

자기 것을 아낌없이 내준다는 게 얼마나 귀한 마음인지도 모르고,

내가 뭘 원하는지는 묻지도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주면 다냐고 툴툴거리기만 했었다.


아...

이 얼마나 모순적인 행동이란 말인가!

내 제자들에게는 내 생각에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주면서,

다른 사람들이 자기들 생각대로 나에게 뭔가를 주는 것에 대해선 짜증을 내고 있다니!


진짜... 이런 나를 어떡하면 좋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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