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 호텔'은 미국 애리조나 주 남부의 소노란 사막과 멕시코 북부에서만 볼 수 있다는,
사와로 선인장의 일생을 다룬 그림책이다.
하나의 작은 씨앗이 200년 넘는 시간 동안 자라면서 겪게 되는 흥망성쇠를 보여준다.
이 그림책에서 맨 처음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사와로 선인장이 '성장'하는 모습이었다.
처음엔 팔로버드 나무 그늘 밑에서 뜨거운 여름 볕과 추운 겨울밤을 버티면서 자라난다.
그러다가 오십 년이 지나자, 자신을 가려주던 팔로버드 나무보다 키가 더 커져서,
그 옆에 곧고 늠름하게 서 있게 된다.
그 크고 당당한 위용에 가슴이 뻐근해질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나를 가리고 보호했던 무언가로부터 벗어나서,
그 위로 더 높이, 더 강하게 자라난 기분.
그것이 지금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이라는 느낌이 강렬하게 왔다.
한 때는 아무것도 몰랐고,
너무 약했고,
도움이 없이는 자랄 수도 없는 상태였지만,
어느 순간 스스로의 힘으로도 자랄 수 있게 되었을 때 느껴지는 그 자신감,
그저 위로 위로 쭉쭉 뻗어 올라갈 때의 그 속도감,
그리하여 나를 기르고 가르쳤던 무언가를 넘어섰을 때의 짜릿함.
등골에 전율이 흐를 정도로 좋았다.
아...
내가...
벗어나고 싶어하는구나.
넘어서고 싶어하는구나.
멈출 수 없는 성장 욕구로 가슴이 폭발하려 하고 있구나.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지금껏 나를 길러주고 보살펴준 힘들에 대한 반항으로 여겨질까봐,
너 혼자의 힘으로 그렇게 자란 줄 아냐고,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고 배은망덕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지금껏 내가 너를 보살폈으니, 이젠 네가 나를 책임지라고 할까봐.
괜히 무섭다.
아마 그동안 내가 받은 게 많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마음에 부채의식으로 남아 있다.
처음엔 분명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자꾸만 갚아야 할 빚으로 느껴진다.
만약 내가 선인장이 아니었다면,
한 자리에서 떠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 어디든 갈 수 있는 동물이었다면,
나는 벌써 어디론가로 떠나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정말로 선인장 같다.
나를 지켜준 나무보다 커지고 높아질 순 있지만, 떠날 순 없는... 그런 존재.
거기까지 하는 것이 그저 나의 최선인 그런 존재.
그래서일까?
잘 자란 사와로 선인장 옆의 팔로나무가
이젠 상대적으로 너무 작아보이고, 연약해 보이고, 힘이 없어 보이는 게 가슴 아프다.
보고 있으면 짠하다.
동시에 그게 나에게도 예정되어있는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열심히 자라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도 젊은 선인장 옆에서 저렇게 조금씩 스러져 가겠지...
이 모든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
너무 잘난 척도 말고,
너무 미안해 하지도 말고,
너무 안스러워 하지도 말고 말이다.
처음엔 성장 얘기만 잠깐 언급하고 나서,
본론에는 나도 사와로 선인장처럼 많은 이들에게 품을 내주고 싶다는 얘길 쓰고 싶었는데,
결국 그런 식으로 써지지 않았다.
아직은 내가 더 많이 성장하는 것만 바라고 싶은 때인 모양이다.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으려면,
나중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 가능할 것 같다.
지금은 그저 성장을 죄스러워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으로 족하다.
물 많이 먹고, 몸을 가득 채워서, 굵고 높게 계속 자라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