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에 나를 비춰보다" - (27) 스트로 베리 베리 팡팡
고슴도치의 생일파티에 모인 동물들이 다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순간,
고슴도치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딸기 케이크를 누가 다 먹어버린 것을 발견한다.
동물 친구들이 하나같이 자기는 아니라고 하자,
고슴도치는 마법 주스를 만들어와서 친구들에게 먹인다.
그러자 동물 친구들의 몸이 부풀어오르면서 그들의 뱃속에 뭐가 들었는지가 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 마법 주스는 진실을 말하게 하는 약이었던 것이다.
헐...
소름이 쫘악 끼쳤다.
범인 취조할 때 쓰인다는 자백제(truth serum, 아미탈 소디움)도 생각이 나고,
얼마 전에 본 영화 '완벽한 타인'에서 핸드폰이 모든 인물의 비밀을 폭로하는 역할을 했던 것도 떠오르고,
요즘 가장 핫한 드라마인 '스카이 캐슬'의 주제가 'we all lie'도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그러면서 '비밀'이라는 것이 화두로 떠올랐다.
고슴도치가 친구들에게 마법 주스를 먹이는 순간, 내가 소름이 끼쳤던 것은,
고슴도치가 정말 무서운 녀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누군가 내 속에 들어있는, 내가 알리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강제로 꺼내려고 할 때 드는 거부감이 아니었을까?
그 얘긴 거꾸로 지금 내 속에 비밀이 많다는 뜻은 아닐까?
우리는 왜 말할 수 없는, 숨겨야 하는 비밀을 갖게 되었을까?
그건 말을 했다가 벌어질 결과가 두렵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탓할까봐 두렵고,
누군가 나에게 화를 낼까봐 두렵고,
누군가 나에게 실망할까봐 두렵고,
누군가 나로 인해 상처받을까봐 두렵고,
누군가 나를 싫어하게 되서 멀어질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원하는 어떤 것이, 남이 원하는 어떤 것과 다를 때 말이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누군가 나와 멀어질까봐 두려워서 거짓말을 하고, 비밀을 갖게 되었는데,
결국은 그 비밀과 거짓말 때문에 그 사람과 정말로 멀어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나는 점심 때 파스타를 먹고 싶은데, 상대방은 청국장을 먹고 싶어한다.
이때 나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나의 욕구를 버리고 상대방의 욕구에 맞춰줄 것인가, 아니면 나의 욕구를 고집할 것인가?
(물론 뭘 먹든 그게 그다지 큰 상관이 없는 사람에겐, 이 모든 게 별 일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뭘 먹느냐가 중요하고, 누군가 내 욕구를 들어주느냐 안 들어주느냐가 중요한 사람에겐 다를 수도 있다.)
만약 내 욕구를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고 치자. "아, 나 오늘은 진짜 파스타 먹고 싶은데...'
그렇다면 상대방의 반응은 두 가지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래? 그럼 오늘은 그냥 파스타 먹자. 청국장은 내일 먹으면 되지."
=> 이러면 상대방이 무척 고마울 것이다.
"그래? 나도 오늘은 진짜 청국장인데. 어쩌지? 그럼 그냥 따로 먹을래?"
=> 이러면 살짝 섭섭하긴 해도, 최소한 내가 먹고 싶었던 파스타는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의 욕구를 버리고 상대방에 욕구에 맞춰서 "어, 그래. 청국장 먹자. 나도 청국장 좋아해."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순간,
파스타를 먹고 싶었던 마음은 비밀이 되어, 내 마음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다.
그리고 그 해소되지 못한, 별 것 아닌 것 같았던 욕구는 내 속에서 서서히 썩어들어가기 시작한다.
썩으면서 점점 더 이상한 형태로 변해간다.
'저 녀석은 자기밖에 모르는 나쁜 놈이야, 그래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지, 내가 뭘 먹고 싶어하는지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어, 물어본 적도 없지, 난 저 녀석한텐 아무 것도 아닐테니까...'
섭섭함, 서운함, 원망, 실망, 속상함... 그렇다. 속상하다, 속이 상하다, 속이 썩어들어간다는 얘기다.
이게 아무도 모르게 쌓이고, 쌓이고, 또 쌓이다 보면, 결국 그 사람과는 멀어지게 될 것이다.
조금 더 복잡한 예를 들어보자.
나는 지금 모든 일이 버겁고 힘들어서 죽을 지경이다.
그런데 상대방이 너 밖엔 이 일을 할 사람이 없다고, 그러니 꼭 해달라고 부탁한다.
이때도 나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내가 지금은 너무 힘들어서 그 일을 못 하겠다고 말하거나, 아니면 아무리 힘들어도 그 부탁을 들어주거나.
내가 거절을 하면, 상대방은 당연히 실망할 것이다.
자기가 나로 인해 곤란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힘들어지는 상황을 싫어한다.
하지만 그는 어떤 식으로든 결국 해결을 할 것이다.
나 아니면 안 된다고 했지만,
사실은 내가 가장 쉽고 빠른 해결책이기 때문에, 나여야만 한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의 힘든 상태를 무시하고 상대방의 요구에 따라 그 일을 맡는 순간,
내 내면에는 엄청난 분노가 솟구쳐 오르게 된다.
나의 이 힘든 처지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주는, 나야 힘들어서 죽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듯한,
자기만 잘 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상대방에 대한 분노,
그리고 못 하겠다고 말하지 못한 등신, 머저리 같은 나 자신에 대한 분노.
이 두 가지가 마구마구 섞이면서, 일의 과중함에 몸은 몸 대로 무너져 가고,
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드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출구 없는 분노가 터져나오고,
나 자신조차 내 편이 아닌 상황에 절망하게 된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를 부득부득 간다. 날 이 지경으로 만든 저 사람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언젠가는 꼭 본때를 보여주고 떠나버리겠다고 말이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일까?
나에겐 언제나 선택의 순간이 있었다.
진실을 말할 수도 있었고, 거짓을 말할 수도 있었다.
그때마다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을 선택했고, 내 진심은 비밀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렇게 내가 선택해놓고선, 나중엔 늘 남을 원망하게 되는 것으로 끝이 나버린다.
어쩌면 비밀=두려움일지도 모르겠다.
비밀이 많은 사람일수록 두려움이 많았던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고슴도치가 나에게 마법 주스를 먹인다면,
내 뱃속에 들어있는 나의 비밀들은 무엇일까?
그걸 한 번 종이에 그려봐야겠다. 그게 바로 지금 내가 힘든 진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