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꿈을 꿨다. 옆집에 무서운 거인 세 명이 살고 있는 꿈이었다.
요즘 나의 복잡한 심사를 무의식적으로 드러내주는 꿈인 것 같긴 한데,
꿈이 다 그렇듯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알기는 쉽지 않다.
어쨌든 중요한 건, 꿈에서 깨자마자 바로 이 그림책, "세 친구"가 떠올랐다는 사실이다.
수탉 프란츠와 생쥐 조니, 돼지 발데마르는 절친이다.
이들은 하루종일 함께 붙어다니며 모든 것을 함께 한다.
이 책에서 내 눈길을 잡아끈 것은 "~해야만 진짜 친구"라고 규정짓는 문장들이었다.
"어려운 일을 돕는 친구가 진짜 친구다"
"모든 일을 늘 함께 결정하는 친구가 진짜 친구다"
"꿈 속에서도 만나는 친구가 진짜 친구다"
다 맞는 얘기긴 하지. 다 좋은 얘기지. 그렇게만 될 수 있으면 참 좋겠지. 그런데 사실 나는 이 책을 보는 내내, 얘네가 어떤 사건으로 어떻게 관계가 깨질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솔직히 이들이 많이 친하면 친할 수록 더 불안했다. 나는 변치 않는 우정을 믿지 못하는 것일까?
그러다가 거의 끝부분에서 세 친구가 잠도 같이 자려고 하다가, 각자의 취향과 삶의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 결국 따로 잘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보고나서야 안심이 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나 역시 친구라면 뭐든지 같이 해야 한다는 말을 믿었고, 진짜 친구라면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란 사람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난 내 방식대로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싶지, 다같이 우루루 몰려다니는 것도 싫고, 뭐든지 같이 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지곤 했다. 친구와 함께 재밌게 놀고 싶은 적도 당연히 있었지만,'늘', '언제나', '모두', '함께' 이런 말들엔 숨이 막혔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자유를 중시하고 개별적이고 싶어하는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내 생각만 하는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들었다. 그리고 난 누구에게도 '진짜 친구'는 될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당연히 "항상 모두가 함께"를 부르짖는 집단에 대한 공포도 있었고.
아마도 나는 "영원히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 = 영원히 나를 버리고 상대에게 맞춰야 하는 것, 희생해야 하는 것"이라고 극단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늘 함께 있어서 진짜 친구가 되거나, 아니면 누구와도 진짜 친구가 될 수 없는 것, 이 두 가지의 경우만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다 보니 친구라는 존재는 언제나 큰 부담이었고, 언제까지 내가 잘해줄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이 항상 있었다. 쓰다 보니 3번째 "꿈에서 맛본 똥파리"에서 알게된 것과도 연결이 되는 것 같다. 친구 관계에 있어서도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됐었는데... 나는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일을 꾸역꾸역 하다가, 결국 그 많은 친구들을 다 잃고 만 거였다...
요즘 페북을 통해 연락이 끊겼던 옛 친구, 지인들과 다시 연결이 되고 있다. 앞으로 그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는이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좀 더 건강한 관계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