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에 나를 비춰보다"-(5) 모른다는 건 멋진거야

by 마하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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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인스타그램에서 '그림책 읽는 엄마' shiningkey님께서 올려주신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세계적 과학자들이 추천한 멋진 그림책'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는데,

평소 '과학'이라는 말만 들어도 슬글슬금 도망가는 스타일인지라 '이 책이 과연 나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표지 그림과 제목이 너무 맘에 들어서 일단 주문을 하고 말았다.


이 책은 저녁 무렵 어린 소녀 에바와 엄마가 함께 산책을 하면서,

에바가 엄마에게 이런저런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는 내용의 책이다.

'과학' 관련 책이라고 했으니,

이러다 달의 주기나 천체의 원리 따위를 설명하는 내용이 나오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었는데,

그것은 완전한 기우였다.


엄마가 에바에게 달이 어떻게 우리를 따라다니는 건지 묻자,

에바는 잠시 고민해보지만, 도무지 답을 알 수 없었다.

그러자 엄마가 말한다.

"잘 모르겠다고 해도 괜찮단다. 무언가를 잘 모르면, 그때가 바로 궁금해할 기회야."


며칠 전에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와르르 무너진 사건이 있었다.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다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은 잘 모른다는 걸, 아니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내게 몰려왔던 감정은 첫 번째는 민망함이었고,

두 번째는 수치심(창피하고 부끄럽고!)이었다.

나는 오직 내가 보고 들은 것밖엔 알 수가 없다.

상대가 말하지 않은 것, 보여주지 않은 것에 대해선 절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다 알고 있다고 믿었다.

어떻게 그런 무지하고, 오만한 착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런 나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섣부르다'는 단어가 떠올랐다.

국어 사전에는 '솜씨가 설고 어설프다'라고, 서투른 면을 강조하고 있는데,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이거니와,

나의 경우엔 영어 사전에서 말하는 'rash, hasty'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무분별한, 무모한, 성급한, 조급한, 경솔한, 지각 없는'

좁은 맥락에서 이해하고,

그것도 머리로만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변동이 생길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선 철저히 외면한 채,

한 번에 이해했다고,

누구보다 빨리 이해했다고,

다 이해했다고 말하고 싶어했다, 나는.


그러고나자 2차 수치심이 몰려왔다.

이건 그저 잘 몰라서 민망하고 부끄러운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 내가 알고 있었던 건 전부 다 잘못된 것이었다.

- 이렇게 된 건 다 내 잘못이다.

- 그동안 애썼던 건 다 무의미하고 쓸데없는 짓이었다.

- 아무 소용 없다. 다 필요없다.

나에게 있는 가장 위험한 상태,

극단으로 치닫는 후회와 죄책감, 그리고 수치심이 몰려온 것이다.

이전에 내가 했던 모든 좋은 것들을 한 번에 날려버리는,

모 아니면 도 식의 반응이 또 나온 것이다.

아닌 줄 알면서도,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또 어리석었던 나를 책망하고, 무지한 나를 원망하고, 실수한 나를 용서치 않는 것이다.

그때 이 책이 나에게 말했다.


"우리는 배우고 발견하기 위해 살아요. 그리고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건 아직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이지요.

모르는 것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질문할 수 있어요. 무언가를 모른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랍니다."



나는 내가 모르는 상황에 처하는 게 무섭다.

그래서 그건 다 아는 거라고 빨리 생각해버리고 싶어하는 것 같다.

사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럴수록 더 천천히 시간을 갖고 알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빨리 어떻게든 그 불안을 해소해버리고 싶어한다.

이거야말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짓이구나...



나는 남도 모르지만, 나도 모른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모른다.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을 알기 위해선, 내가 모르는 상황과 부딪혀보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애초부터 삶이란 그런 것 아니었던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완벽한 무지의 상태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지금까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삶 속에서, 참 잘도 살아왔구나 하는 깨달음이 온다.

삶이 가지고 있는 그 무시무시한 불확실성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생각을 해봤다면,

아마 나는 방 안에 처박혀서 아무 것도 하지 못했으리라.


그런데 나는 그동안 아무 것도 모르는 주제에,

잘도 그 많은 일들에 도전하고,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나곤 했었구나...

무식한 건지, 용감한 건지 모르겠지만...

어떤 의미에선,

참...

대. 단. 하. 다. 너!



여전히 나는 두렵다.

내가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두렵고,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잘못되었을까봐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른다는 건 멋진 것'라는 이 책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려고 한다.

모르니까, 잘 모르니까, 더 질문하려 한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삶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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