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그림책 "날 안아줘"를 썼던,
시모나 치라올로의 또 다른 그림책, "할머니 주름살이 좋아요"를 읽었다.
할머니의 생일날, 가족들이 다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어쩐지 좀 슬퍼 보이고, 놀란 것도 같고, 어딘가 걱정스러워 보인다'
그래서 걱정이 된 손녀가 할머니에게 왜 그런지 묻자, 할머니는 주름살 때문일 거라고 말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피로감'을 떠올렸다.
어젯밤에 세수를 하다가 오른쪽 입가에 따가움이 느껴져서 자세히 봤더니, 찢어진 것처럼 살이 터져있었다.
내가 지금 엄청나게 피곤하다는 걸 몸이 알려주는 신호였다.
산다는 건 피곤함의 연속이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만나야 할 사람도 너무 많다.
게다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당장은 필요하지 않지만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것도 많다.
살아있는 것만으로 피곤이 쌓여간다.
요새 '당독소(AGEs)'에 대해서 새로 알게 됐는데,
당독소는 우리가 음식을 먹고 대사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생성되서 누적되는 것이라고 한다.
삶의 어쩔 수 없는 피로감도 이 당독소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피로를 느끼면 왠지 기분이 나쁘다.
내가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지 못해서 삶에 제압당한 기분이고,
과도한 욕심을 부리다가 결국 감당을 못한 기분이고,
결정적으로 '내가 또 뭘 잘못 했나?'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느낌은 내가 남들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고,
에너지를 스스로 잘 관리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 같고,
약하고 부적합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싫다.
난 항상 밝고 긍정적이고 힘이 넘치고 싶은데 말이다.
그래서 그림책 속에서 또 한 번의 생일을 맞게 된,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가 왠지 슬프고, 놀란 듯이, 또 걱정스러워 보이는 건,
그동안 살아온 삶의 무게와 피로감 때문인 것처럼 느껴졌다.
주름살 사이에 켜켜이 숨어있는 피곤함들.
지금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그때 손녀가 각각의 주름살 속에 숨겨져있는 것들에 대해 묻는다.
할머니는 좋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던 옛 기억들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그 이야기들을 보면서, 내 피로를 누적시킨 원인이 됐을 법한 일들을 되돌아 보았다.
너무 많은 일을 했다.
맞다.
근데 꼭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었다.
의미가 있었다.
뿌듯했다.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났다.
맞다.
근데 꼭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가치가 있었다.
즐거웠다.
결국 나는 그 모든 일들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매 순간이 나의 최선이었다.
이 피로감은 내가 뭘 제대로 못 해내서가 아니라, 제대로 해내서이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온 증거인 것이다.
누군가는 날 걱정해서
쉬어가며 해라, 적당히 해라, 일을 줄여라,
사람 그만 만나라,고 할테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에겐 이것이 기분 좋은 피로감이라는 걸 안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매순간 몰입해서 후회 없이 살고 있다.
모처럼 맞는 휴일인 오늘은,
투표하고 와서 후회 없이 쉬는데 몰입해야겠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