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책에 나오는 공주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을 보면 이렇다. “예쁘지는 않지만 못생기지도 않았어. 착하지는 않지만 못되지도 않았어. 똑똑하지는 않지만 멍청하지도 않았지. 놀고 싶을 땐 놀고, 자고 싶을 땐 자고, 웃고 싶을 땐 웃고, 울고 싶을 땐 울었어. 좋은 건 좋다 하고, 싫은 건 싫다 했어.” 나는 이 묘사를 읽으면서 와! 공주가 정말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상태구나 하고 느꼈다. 나에게 마음보충수업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나, 독서치유 수업을 듣는 사람들이 가닿고 싶어하는 경지가 바로 이런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웃고 싶을 때 웃지 못하고, 울고 싶을 때 울지 못한다. 놀고 싶을 때도 놀지 못하고, 자고 싶을 때도 자지 못한다. 좋은 건 좋다고 말 못 하고, 싫은 것도 싫다고 말 못한다. 그래서 몸과 마음에 병이 난다. 그런데 공주는 이미 이걸 다 하고 있으니 얼마나 놀랍고, 대단하고, 건강하냐 이 말이다.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아이일 경우, 이럴 수 있는 확률은 더 높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아이가 다 그런 것도 아니기에, 이 공주의 상태는 정말 놀랍고 부러울 정도다.
하지만 임금님은 공주의 이런 모습을 보며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 ‘쟤는 도대체 누굴 닮아서 저렇지?’라고 고민하기 시작하는데, 그 말인즉슨 임금님은 공주 같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기 주체성을 갖고 자기 마음에 충실하면서 자기답게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못된다는 얘기다. 그러니 임금님 눈에는 공주가 이상해 보일 밖에 없다. 게다가 안 그래도 임금님이 보기에도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 까막까치들이 공주가 너무너무 평범하다고 난리를 치자, 그 날로 거의 앓아 누울 지경에 이른다. 귀도 얇고, 불안도 높고, 통제욕구도 강하다. 어떻게 해야 공주를 자기가 원하는 모습을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예쁘지는 않지만 못 생기지도 않은’ 공주를 ‘평범하다’고, 그건 결코 바람직한 게 아니라고 비판하는 까막까치들의 사고방식도 참 안타깝다. 까막까치들은 극단적인 이분법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예쁘거나, 못 생기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하는데, 공주는 이도저도 아니니 그건 평범한 것이고, 평범한 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우리 중에 완전히 예쁘거나 완전히 못 생긴 사람이 얼마나 되던가? 예쁜 사람도 어떨 때는 굉장히 평범하게 보일 때가 있고, 못 생긴 사람도 어떨 때는 굉장히 예뻐 보일 때도 있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인구 대다수는 예쁘지도 않고, 못생기지도 않은, 그 중간 어딘가 쯤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런 절대다수가 평범한 것이고, 극단적인 두 모습 중 하나로 이동해야 하는 것인가?
또 착하지는 않지만 못되지도 않은 게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까막까치들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착하려면 완전히 착하거나, 못되려면 완전히 못되거나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빠진 사람들이 얼마나 힘겹게 생활하는지는 나중에 너무너무 착한 공주로 변신한 이후 공주의 모습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남에게 휘둘리고, 남을 위해 사느라 생기를 잃고 말라 비틀어지고 만다. 그리고 완전히 못된 사람을 정말로 본 적이 있다면, 어중간한 바에는 차라리 그런 사람이라도 되고 싶어했던 것을 진심으로 후회하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때로는 착하고, 때로는 못 됐다. 자기 기분이 좋을 땐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착하게 굴다가, 자기가 힘들 때면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강팍해져서 주위 사람들에게 못되게 굴게 된다. 또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겐 착하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겐 좀 못되게 굴기도 하고 그런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착하지는 않지만 못되지도 않은 것이고, 공주도 원래 우리와 똑같았다.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똑똑하지는 않지만 멍청하지도 않은 것도 살펴보자.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한다. 그저 우리가 조금 더 잘 아는 어떤 분야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내가 잘 아는 분야에 대해 말할 때는 똑똑해 보이지만, 내가 하나도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말해야 할 때는 아주 멍청하게 보인다. 그게 진실이다. 정말로 완벽한 천재이거나, 완벽한 바보인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일부 똑똑하고, 일부 멍청한 것이 평범하다고 욕을 먹어야 할 이유가 되는가? 나는 까막까치들의 말이 아주 편협한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오직 특별한 것만 추구하고, 어중간한 것보다는 차라리 극단적인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좁은 소견일 뿐이다. 아, 그런 면에서 까막까치들은 극단적인 게 맞다. 자기들의 생각이 100% 맞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그들은 완전히 멍청하다. 아마 공주였다면 자신의 생각은 자신의 생각일 뿐, 그게 꼭 다 맞지는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까막까치의 말이 정말 옳은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해보지도 못한 채, 그들의 생각이 임금님 본인이 원래 막연하게 갖고 있던 불안감과 합체되면서, 결국 공주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바꾸려는 만용, 통제 욕구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생명이 줄어드는 엄청난 대가를 치루는 한이 있더라도, 공주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혹은 다른 사람들(까막까치들)이 원하는 대로 바꾸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이다. 왜? 공주를 위해서! 공주를 사랑하니까! 공주가 더 잘 되게 하려고! 아마 임금님은 공주를 위해 자신이 엄청난 희생을 했다고 착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임금님은 공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공주의 그런 성품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도 모르면서, 자기가 아는, 혹은 남이 아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바꾸려는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자기가 가진 것의 귀함은 모른 채, 남이 가진 것을 따라하려는 짓 아니겠는가!
나는 임금님이 세 번째로 빈 소원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공주가 되게 하라!”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공주를 보며, 임금님은 공주가 처음부터 이미 행복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을 거다. 자기답게 사는 것, 주체적으로 사는 것, 환경에 따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그렇게 스스로를 조율하며 살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진 존재. 마음이 원하는 대로 충실하게 응하며 사는 존재가 얼마나 귀하고 대단한 건지, 온갖 어리석은 시행착오를 다 거친 후에야 알게 된 것이다. 그 사이 임금님은 자신의 생명 에너지만 헛되이 소진해버렸다. 이 단순한 사실을 깨닫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위험한 거래를 했던 것이다.
누구나 자기만의 고유한 외모와 성품과 재능을 타고 난다. 그것은 너무도 고유해서 세상의 그 어떤 사람과도 같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서로의 눈에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왜? 전혀 다르니까.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것이니까 누가 봐도 새롭고 이상하고 신기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의미이자 가치이다. 세상 누구와도 다른 고유한 존재! 그것을 인정하고 수용하지 못하고, 이미 세상에 있는 다른 누군가의 이미지처럼 만들고 싶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헛되고 헛되고 헛된, 아무런 의미 없는 쓸데없는 노력이 될 것이다. 이미 가장 좋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보다 못한 것, 혹은 애초부터 변하는 게 불가능한 남게게 있는 어떤 것을 꿈꾸고 바라는 동안,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에너지의 낭비뿐이다. 임금님은 이번 일을 계기로 그 사실을 뼈저리게 배웠을 것이다. 공주는 공주 그 자체로 완벽하다. 그리고 그게 가장 행복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