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혼자서 표를 끊어서 미술관으로 들어온다. 그리고는 능숙하게 전시실을 돌아보더니 해가 진 다음에야 미술관에서 나가는데, 엄마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아이를 맞아 준다. 이게 정말 가능? 외국 아이라서 가능한 걸까? 아니면 특별히 이 아이라서 가능한 걸까? 이 가정은 이런 일이 한두 번 있는 게 아닌 듯한 능숙한 분위기인데, 아마도 그것은 하루 종일 끊임없이 계속해서 새롭고 놀라운 것, 재밌는 것을 발견할 줄 아는 아이의 능력 때문이리라. 이 작품은 대놓고 유명 예술 작품과 아이의 눈에만 보이는 예술 작품을 병치하는데, 이 과정이 은근히 쾌감이 있다. 유명한 예술 작품이라는 것의 권위가 무너지는 것에 대한 쾌감인지, 아니면 아이가 발견한 예술 작품이 유명 작품 못지않게 신선하고 기발하고 아름다워서인지 모를 정도로, 보는 재미가 대단하다.
아이의 눈에는 키가 큰 어른들의 모습이 커다란 조각상들보다 더 신기하다. 그들이 작품을 감상하면서 취하는 다양한 표정들을 보는 것은 더 재미있다. 멋진 풍경을 그린 작품보다, 미술관 창문을 통해 비치는 햇살 가득한 바깥의 나무와 새 풍경을 보는 것이 훨씬 더 생동감 있고 멋지고, 미술관 바닥을 물청소 하는 미화원의 동작이 더 역동적이다. 도자기의 아기자기한 그림보다, 도자기를 감상하는 덩치 큰 사내의 팔에 있는 오밀조밀한 문신이 더 흥미롭고, 꼬불꼬불 반복해서 그려놓은 선 모양보다는 창틀의 달팽이가 요리조리 기어가는 모습이 더 재미있다.
우리는 미술관에 들어가면 미술 작품들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이에게는 봐야 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주체적인 감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이는 자기 눈에 보이는 것, 혹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 아니면 자기가 생각하기에 더 멋지고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을 본다. 그런 면에서 혹자는 이 아이가 미술관 감상을 하나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과연 정말 그럴까? 이 그림책의 표지만 해도 그렇다. 아이는 햇살에 비쳐 길게 늘어진 자신의 그림자를 감상하는데, 그 자태가 미술관 안의 어떤 조각상이나 그림보다 멋지다. 무엇이 멋있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를 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지, 어느 평론가가 정해놓는 것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필터를 통해 세상을 보고 있다. 그리고 그 필터는 지구상의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따라서 자기 눈에 좋게 보이는 것, 더 재밌어 보이는 것, 의미 있어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 사실이 어른이 되어갈수록 그렇지 않게 되어버린다. 나의 기준이 아니라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가기 시작한다. ‘공부’라는 것이 각자에게 와 닿는 재미와 의미가 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학교라는 시스템에 편입되는 순간, 공부는 모두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의무가 되어버린다. 더 나아가 그것을 잘해내지 못하면 곧바로 쓸모없는 인간, 모자란 인간, 한심한 인간으로 평가된다.
모두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바로 그 사실을, 이 미술관에 대입해서 보면 그것이 얼마나 이상하고 기괴한 생각인지 바로 알 수 있다. 미술관에 들어갔다고 해서 모두가 한 줄로 서서 정해진 작품들을 열심히 감상하는 것만이 제대로 된 감상일까? 이 아이처럼 자기 멋대로 돌아다니면서 자기가 보고 싶은 걸 감상하거나, 혹은 자기가 보고 싶은 방식으로 감상하면 그것은 절대 감상이 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작품별로 유명세에 따라 수준을 정해놓고, 이걸 보고 좋다고 느낄 수 있어야만 그 사람 또한 훌륭한 감상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도대체 이런 기준은 누가 어떻게 정하는 걸까?
누가, 어떻게, 왜 정해 놓은 지도 잘 모르는 어떤 기준들을, 단지 많은 사람들이 추종한다고 해서 무조건 따라야 할 이유 같은 건 없다. 아,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서로의 기본적인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정해둔 상호 약속 같은 건 지켜야겠지. 자기 기분에 따라 남을 폭행하거나, 죽이거나, 혹은 성적으로 수치심을 주거나 하는 일은 규칙에 따라 삼가는 게 맞다. 하지만 그 외에 개별적인 취향과 호불호, 관심사, 재능 같은 것들까지 일괄적으로 무엇이 더 좋고 훌륭한지 차별을 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그림책 ‘나의 미술관’은 엄청나게 도발적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So what?(그래서 뭐?)”라고 묻는 듯한 아이의 천진한 미소가 항상 사회적 기준에 치여 나 자신을 평가하곤 했던 답답한 내 속을 시원하게 뚫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