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 남편은 침실 벽지의 꽃무늬들이 줄을 맞춰 나란히 정렬되어 그려져 있는 것을 보며 몇 시간 동안이나 정신이 팔려서 일어날 생각도 안 하고 있다. 아마도 그 큰 눈을 쉴 새 없이 굴리면서 규칙에 어긋난 부분, 완벽하게 줄이 맞지 않는 부분을 찾으려고 정신이 팔렸던 건지도 모른다. 원래 흠이나 잘못된 걸 골라내는, 잡아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집중력과 끈기가 남들보다 훨씬 더 좋기 마련이다. 집중해서 오랫동안 보지 않으면 작은 흠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런 성격적 특성은 잘만 쓰면 이들의 장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흠을 찾지 못했고, 악어 남편은 감탄해마지 않는다.
그때 악어 부인이 꽃밭에서 남편을 부른다. (다행히 악어 남편이 침대를 박차고 밖으로 나온다. 나는 안 나갈 거라고 예상했었거든) 악어 부인은 자신이 정성껏 가꾼 꽃밭에 자부심을 가지고 남편에서 자랑을 하려고 했지만, 악어 남편은 경악하고 만다. 꽃이랑 잎사귀가 엉망으로 뒤엉켜 있을 뿐 아니라, 줄이 맞는 게 하나도 없다고 말이다. 그렇게 악어 남편은 아내의 노력과 기쁨을 한 순간에 ‘엉망진창, 뒤죽박죽’으로 결론 내려버린다. 아내가 이 꽃밭의 어떤 부분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아름답게 여기는지,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오직 자기의 기준, 악어 남편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그 하나의 기준(=완벽함)에 의거해서, 잔인하게 평가를 내려버린다.
뭐, 그럴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만의 기준에 따라서 어떤 것을 좋다/싫다, 예쁘다/안 예쁘다, 멋지다/안 멋지다, 맛있다/맛없다로 구분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아내에게 조금만 더 예의를 갖추거나, 배려심을 보여줬더라면 어땠을까? 비록 내 눈엔 끔찍! 그 자체이긴 해도, 우리 아내는 이런 걸 아름답게 여기는구나 하고 신기하게, 혹은 그 자체로 그냥 인정만 해줬어도 좋았을 텐데 말이다. 가식을 떨거나, 싫은데도 좋은 척 하라는 게 아니다. 그것과는 다르다. "나는 좀 더 완벽하게 정리된 꽃밭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당신은 이런 불규칙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구려"까지만 해주면 된다. 어차피 악어 부인 입장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걸 당신도 좋아해달라고 요구할 권리는 없으니까. 어떤 면에선 꽃밭을 보여주고 싶어했던 아내의 부름에 응해, 꽃밭에 나와 준 것만으로도 고맙기도 하다. (아까도 말했듯이 난 이 악어 남편이 절대 안 나올 줄 알았기 때문에)
문제는 완벽한 것만을 사랑하는, 흠이 있는 것을 견딜 수 없는 악어 남편의 지나친 완벽주의 성향이다. 모든 성향은 그 자체로 인정받을 권리가 있고, 그것은 완벽주의 또한 마찬가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문제’라고 규정한 이유는, 우리가 사는 삶이 완벽하고는 거리가 먼, 어찌 보면 카오스에 가까운 삶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아내의 꽃밭을 보고 표현했던 그대로 삶은 ‘엉망진창, 뒤죽박죽’ 쪽에 훨씬 가깝다. (물론 더 깊이 파고 들면 우주와 자연의 원리가 얼마나 정교하고 완벽한지도 알게 될 테지만, 일단 겉에서만 봤을 땐 삶은 혼돈과 더 흡사한 게 사실이니까) 삶이 이렇듯 완벽함과 거리가 멀 때, 완벽주의를 가진 악어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완벽한 꽃무늬 벽지가 있는 자신의 침실에서만 기분이 좋고, 밖에 나오면 몹시 불쾌해지기 때문에 밖에 나오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악어 남편의 절대적인 손해이다.
완벽한 걸 좋아하는 성향 자체는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되지만, 세상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완벽주의를 고집하는 사람에겐 삶 자체가 괴로움, 고통, 두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삶을 포기하고 방에만 있을 순 없지 않는가? 삶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야 한다. 완벽하지 않은, 줄이 맞춰지지 않은, 흠이 있는 어떤 것을 보게 되더라도,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스스로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내 눈엔 별로지만, 저걸 조금만 옆으로 밀어서 줄을 맞추면 훨씬 더 아름답겠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면, 살기가 훨씬 편해질 것이다.
결국 내가 이런 얘기를 글을 통해 반복해서 하는 이유는 딱 하나이다. 좀 더 살기 편해지기 위해서다. 100년도 채 안 되는 한 번 뿐인 짧은 삶을 살면서, 맨날 괴로워하고,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하면서 산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 하는 소리다. 어떻게 해야 조금 더 마음이 편한 상태로 이 삶을 즐길 수 있을지, 나는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마음 한 번 바꿔먹으면, 시각을 조금만 달리 하면, 시야를 약간만 넓히면,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훠~얼씬 살기 편한 나를 만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