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가게 앞에 놓인 사과 한 알을 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각자 다 다른 생각을 한다. 자신의 처지, 자신의 상황, 자신의 관점, 자신의 필요에 따라 그들에게 사과는 각각 다른 의미로 보이고,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과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들이 사과에 대해서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말했을 뿐이다.
흥미로운 건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며 과연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일지 추측해보며 재미있어 하는 사과의 모습이다. 사과는 자신이 ‘하나라도 백 개인 사과’라며 약간 자랑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라는 이미지에, 내가 바라보는 ‘나’라는 이미지까지 하나를 더 추가해서 전체적인 내가 존재하는 것 같다. 나는 그 모든 이미지의 총합이기도 하고, 총합 그 이상이기도 하고, 그 모든 것이 아니기도 하다.
이쯤 되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다시 올라오지 않을 수가 없다. 적어도 사람들이 보는 내가 ‘나’가 아닌 건 확실하다. 왜냐하면 남들이 보는 나는, 그들의 사정과 관점이 너무 많이 투사되어 있다. 그들의 목적이나 사연이 나를 통해 비춰지는 것이기 때문에, 온전히 나에 대한 이야기라고만 보긴 힘들다. 그렇다고 그들이 말하는 내가 나와 전혀 다르냐? 그건 또 아니다. 그들이 보는 나의 이미지에도 나의 일부가 들어있다. 다만 전체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들은 그들의 기준으로, 그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에, 그들이 보는 나는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그들이 나의 전체를 다 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그러니 남들이 나에 대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일 때는, 딱 그 정도만 듣는 것이 필요하다. 나의 일부를 확대해서 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바라보는 ‘나’가 진짜 나인가? 이게 또 그렇지가 않다. 의외로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나 또한 지금까지 살면서 겪어본 바, 경험한 바의 나를 아는 것, 그리고 부모를 비롯해서 주변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한 내용들이 섞여서 이루어진 이미지에 불과할 뿐이다. 내 안에는 내가 알고 있는 의식적 차원뿐만 아니라,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 차원의 내가 또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미지의 ‘나’가 존재한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나, 뭘 할 수 있는지조차 아직 모르는 가능성 형태의 ‘나’가 존재한다. 앞으로 나 자신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가 무수히 남아있기 때문에, 지금 현재의 내가 ‘나’라고 확신해버리는 것은 아주 곤란하다. 내가 보는 나 역시 한계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무한대의 가능성을 지닌, 무엇이든 가능한, 한계가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 말을 하자마자 곧바로 한계들이 줄줄이 떠오르는 이 아이러니는 뭘까? 육체적(신체적) 한계, 나이의 한계, 교육의 한계, 경제적 한계, 성별의 한계, 사회적 한계... 나를 규정할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각종 한계들은 엄청나게 많다. 한 마디로 인간적인 한계? 우리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수명이 정해져 있는, 육체를 갖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리고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에,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는 차마 말하기 힘들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개발하지 못한, 잘 모르는 내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뭔가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마다 나에 대해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이걸 잘 하는구나, 의외로 별로 떨지 않는구나, 생각보다 겁이 별로 없구나, 예상 외로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등등, 나도 몰랐던 기량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고, 반대로 잘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거랑은 잘 안 맞는구나, 이런 상황을 유독 불편해하는구나, 저런 사람이랑은 잘 안 맞는구나, 나는 이런 걸 매우 번거로워하는구나 등등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알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간에 나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추가되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는 그렇게 죽을 때까지 나 자신에 대해서 계속해서 새록새록 알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지금 남이 말하는 내가 전부라고 착각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얘기다. 전혀 아니니까. 그럴 수가 없으니까.
일단은 남들이 말하는 ‘나’에 대해 정보를 모을 필요는 있다. 남들의 눈엔 내가 어떻게 비춰지는지. 물론 그들은 다 자기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라는 걸 감안한 상태에서, 혹시 반복적으로 언급이 되는 특징들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모두 다 다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눈치채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건 확실히 나의 특징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남들이 보는 게 맞을 수도 있고, 내가 보는 게 맞을 수도 있겠지만, 둘 사이의 갭이 너무 크다면 그건 한 번쯤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내가 지나치게 다르다면, 내가 의식적으로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나도 아직 잘 모르는 나를 알아가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나를 계속해서 낯선 상황, 새로운 상황에 처하게 하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런 과정들이 쌓이다 보면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는데, 그것만큼 살아가는데 힘이 되어주는 게 없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 그게 바로 세상에서 나의 자리를 찾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니까. 그래서 나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는 사람은 대책이 없다. 남의 말만 듣는 사람은 더 대책이 없다. 이 험한 세상에서 나 하나 믿고 살아가야 하는데, 그런 나에 대해 잘 모른다면 얼마나 불안할 것인가? 그래서 나에 대해 알아야 되는 것이다. 하나라도 백 개인 사과처럼 될 수 있는 다양한 나의 빛깔에 대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