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벨린다"(에이미 영 /느림보)

by 마하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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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도 못하면서 슬쩍 보기만 하고 쉽게 판단을 내려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가하면 그런 사람들의 말만 듣고 단숨에 완전히 좌절해버리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은 서로 환상의 짝궁이다. 한쪽은 자신들이 뭐든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쪽은 나 자신의 생각보다 남의 생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후자와 같은 사람들이 있기에, 전자와 같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자기 말을 더 신뢰하며 착각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후자가 자기 말을 따르기 전까지, 전자는 자기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도 모른 채 그냥 지껄이는 것뿐이지만, 후자가 자신의 말을 믿어버리는 바람에 오히려 전자의 말이 사실로 밝혀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남의 말에 의존하고, 남의 말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더 나쁘다고 얘기하고 싶다. 터진 입으로 한없이 가벼운 자기 생각을 지껄여대는 사람들은 최소한 자기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셈이니, 솔직히 그걸 가지고 뭐라 하기는 어렵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들의 생각이라는 것이 너무 근거가 없고, 즉각적이며, 경솔하고, 배려가 없다는 정도? 그렇다고 해서 잘못되었다고까지 말하긴 힘들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게 여기고, 오직 남이 나에 대해 평가하는 말에만 중요성을 두고 의존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존감이라는 것조차 갖고 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더 난감하고, 대책이 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벨린다는 발레리나가 되기 위한 오디션에 나가기 전까지는 자신의 큰 발에 대해 별로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에 큰 발이 발레를 하는데 문제가 되는 걸 알았다면, 아마 애초부터 다른 일을 생각했겠지. 하지만 큰 발로도 벨린다는 얼마든지 발레를 할 수 있었고, 발레 학원에 다니는 동안에도 그걸 문제 삼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발이 크니 착지를 할 때 훨씬 더 안정적으로 할 수 있었고, 심지어 그 큰 발 끝으로 서서 움직일 때는 더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니 발레리나의 꿈을 계속 키워올 수 있었던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벨린다의 큰 발을 보자마자 난리를 치면서, “그런 큰 발로는 절대 발레리나가 될 수 없다”는 단정적인 말을 해버리고 만다. 심사위원들이 그렇게 말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1) 발이 큰 발레리나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2) 그들의 눈에 큰 발이 보기 흉해 보였기 때문에(그들은 벨린다가 춤을 추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3) 저런 큰 발을 가지고도 발레리나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벨린다가 한심하고 어이없어서, 등등...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상태이다. 그들은 진심으로 이건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생각이 과연 옳은가? 이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게 옳은가? 아니다. 자신들이 경험해보지 않은 건 다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우리 모두 잘 안다. 지금 세상에 있는 훌륭한 발명품들은 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늘 새로운 무언가가 세상을 더 발전시키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첫 번째 이유는 이미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그들의 눈에 벨린다의 큰 발이 미학적으로 추해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취향에 불과하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호불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기분 나쁘게 느꼈다고 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이 느끼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서 이미 큰 오류가 있다. 발레 학원에서는 벨린다의 큰 발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세 번째 이유도 마찬가지. 그건 그냥 그들의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상황에서 벨린다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냥 되돌아서서 무대를 내려온 것이 너무나 아쉽다. 물론 그렇게 압도적으로 비판 받는 상황에서 당당히 자기 생각을 밝히려면 엄청난 용기와 자신감과 자존감이 필요하다는 건 안다. 그리고 설령 벨린다가 반박을 했다 하더라도 더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안다. 한 번 나쁘게 보기 시작한 사람들 눈에는 벨린다가 뭘 하더라도 여전히 우스꽝스럽게 봐줄 확률이 높으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발레리나가 되고 싶은 벨린다의 의지는 고작 그 정도였나? 남들이 “넌 안 돼!”라고 하면, ‘아, 나는 안 되는구나’라고 바로 포기해버리는? 무대 위에서 “그래도 내 춤을 한 번만 봐달라”고 말하지 못한 것도 아쉽지만, 집에 와서 슬픔에 빠져 있다가 발레를 포기해버리는 장면이 더 안타까웠다.


물론 결과적으로 벨린다는 음악이 나오자 아르바이트 하던 식당에서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춤을 추게 되었고, 그 모습에 반한 사람들이 계속 몰려왔고, 결국 그랜드 메트로폴리탄 발레단장까지 와서 보게 되었고, 그 결과 해피 엔딩을 맞게 되지만, 이건 어찌 보면 벨린다 자신의 의지로 이룬 것이 아니다. 다 남의 도움으로 이룬 것이다. 운이 좋다는 것, 사람들이 모두 그걸 바라는 이유가 뭔지 알 것 같다. 내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일이 잘 풀려서, 내가 저절로 잘 되는 것, 그걸 원하는 것이다. 벨린다는 자신의 의지로 춤추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춤췄을 뿐이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춤을 춰보라고 권유했고, 그 말을 따랐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결론이 가능하다. 의지로 용기를 낼 수 없다면, 차라리 본능에 충실하라고. 하지만 이성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본능을 따라 행동하기란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더 어렵다.


그래서 나는 이런 식의 해피 엔딩 말고, 다른 식의 해피 엔딩을 꿈꿔본다. 발레리나 심사에서는 춤도 못 춰보고 떨어졌지만, 벨린다는 또 다른 오디션에 계속 도전하는 것이다. 발레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큰 발로는 발레를 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그랜드 메트로폴리탄 단장처럼 벨린다의 춤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혹은 계속해서 발만 보고 춤도 못 춰보게 한다면, 벨린다는 어떻게든 자신이 춤추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내가 춤을 추면 당신들도 나의 재능과 가능성을 알게 될 거야’ 라는 확신과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아하! 그렇구나! 어쩌면 벨린다는 자기 춤에 대한 확신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춤을 추려면 공인 인증서가 필요한가? 내가 잘 춘다고 인정해주고, 증명해주고, 평가해주는 증명서가 필요한가 이 말이다. 발레를 하고 싶으면 발레를 하면 된다. 누가 알아주던 몰라주던 아무도 내가 춤을 못 추게 할 수 없다. 벨린다 스스로 발레를 안 하겠다 결심하고 포기했으니까 그런 거지, 아무리 큰 발이 보기 흉해도 그 누구도 벨린다가 춤을 못 추게 막을 수 없다. 그러니까 벨린다는 그냥 계속 추면 되는 거였다. 만약 벨린다가 그냥 발레를 하는 걸로 만족을 못하고, 꼭 발레리나가 되야겠다고 고집한다면야 심사위원들을 설득해서 발레단에 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겠지. 그러려면 아까 내 말처럼 어떻게든 자신을 어필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심사위원들이 지나다니는 길목 앞에서 거리 공연을 하든지, 자기 공연 모습을 녹화해서 심사위원들에게 보내든지, 편지를 써서 설득하든지, 뭐라도 했어야 한다.


나는 그래서 우연에 기대고, 남의 도움에 의해, 자기 꿈을 실현하는 벨린다의 결론이 그다지 해피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벨린다는 스스로 무엇을 했는가? 이러니 사람들이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행운, 귀인이 오기만 바라는 것이다. 아니다. 난 벨린다가 스스로 뭔가를 더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랬어야 했다. 심사위원들보다 더 많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에 의해 비로소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난 그것은 아직 온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벨린다의 자존감은 아직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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